<대치동 삽니다>
우린 다른 교복을 입었지만 늘 함께였다.
다른 중학교에 배정받은 걸 아쉬워할 틈도 없이 방과 후 일상은 차유와 나 둘이었다. 서로의 집에서 학원 숙제를 하고, 앉아서 숙제를 하고 있기엔 흥을 주체할 수 없던 날엔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췄다. 춤은 주로 내가 췄지만. 숙제를 해가지 못한 날엔 강의실 밖에서 한 시간씩 서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숙제를 해가고 못해가고, 선생님에게 혼이 나고 안 나고, 전교 등수가 떨어지고 오르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밤 10시,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갈 무렵 비가 오기 시작하면 우린 신발을 벗고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걸었다. 머리가 다 젖고 교복이 다 젖고 가방이, 책이 다 젖어도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우리가 빗속에서 웃고, 같은 반 잘생긴 남학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내일을 기대하는 것. 그런 게 중요한 것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쓴 자작시를 차유에게 보여줬던 날 우리는 아파트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었다. 머릿속에서 떠오른 말들이 글이 되는 게 신기하고 또 그게 나름 감동적인 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글이 꿈이 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우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장르도 분명치 않은 글을 그렇게나 써나가기 시작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더 이상 같은 학원에 다니지 않게 된 후에도 가끔씩 문자로 시나 수필을 주고받았다. 글을 쓰는 사람이 있다는 건 모두 같은 교과서를 공부하고 같은 문제집을 파고드는 생활에서 숨 쉴 구멍 같은 것이었다. 나중엔 1년 넘게 얼굴을 볼 수 없어지기도 했지만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드라마를 쓸 거야. 배우들의 입에서 내가 쓴 대사가 나온다고 생각해봐, 그것만큼 멋진 일이 또 어디 있겠어.”
“나는 그냥 글을 써. 정체를 알 수 없는 글들.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그냥 써. 난 그게 재밌어.”
우리는 각자가 있는 곳에서 남몰래 꿈을 꿨다.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을 ‘작가’로 적을 수는 없었기에 보여주기용 장래희망을 하나 세워두고서. 작가는 우리의 꿈이었지만 대입은 우리의 전부였다. 입시에 실패하면 우린 설자리를 잃었다. 아무도 무엇도 앗아가지 않아도 모든 걸 빼앗기는 것이었다.
오랜만에 차유를 만났다. 대학에 들어간 우리가 다시 만났다.
“꿈을 꾸고 있어?”
묻고 싶었지만 묻지 못했다. 우리는 또 다른 장래희망을 앞에 세워두고 달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전엔 입시, 지금은 취준. 서로 다른 목적지로, 다른 방법으로. 우린 또다시 책이 가득 든 가방을 들고 거리를 오갔다. 우린 더 이상 우산 없이 빗속을 걷지 못할 것이다. 책이 젖으면 아주 곤란하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차유를 만나고 돌아오던 길에 나는 우리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 이야기하던 그 그네로 갔다. 입시지옥에서 겨우 도망쳐 나온 우리가 다른 지옥을 온 힘을 다해 도망치고 있는 우리가 슬펐다. 우리는 글쟁이라고, 언젠가 세상에 끝내주게 재밌는 글을 내놓을 거라고 웃었던 그네에 앉아있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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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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