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삽니다>
어른의 욕심이 섞이지 않은 아이가 하나도 없는 곳이다.
쏟아지는 학원들과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 독기를 품은 친구들이 가득한 동네였다. 대치동은 늘 없던 욕심도 부추기는 동네였다. 형편이 넉넉하든 그렇지 않든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면 욕심을 버릴 환경을 만들어주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별종이었다. 날이면 날마다 열리는 고입, 대입 설명회에 가 한아름씩 자료를 안고, 입시에 빠삭한 아줌마와 세 시간 네 시간 카페에 앉아 수학 성적을 이야기하는 엄마들 사이에서 우리 엄마는 늘 재미난 이야깃거리였다.
엄마는 일을 했다. 내 기억하는 모든 순간 엄마는 직장인이었다. 여섯 살 터울의 동생을 가졌을 때도 엄마는 일을 했다. 엄만 엄마의 일을 하느라 바빴다. 나에겐 그게 당연했다. 엄마가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오늘 회사에서 상대한 진상 또라이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모두가 가정통신문에 엄마의 직업을 주부로 써내는 게 이상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던 때가 있었지만, 가끔씩 엄마가 집에서 쉬는 날이 되면 뛸 듯이 좋았지만, 엄마는 당연히 일을 해야 했다. 그건 엄마의 자부심이었다. 난 그게 좋았다. 엄마는 엄마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난 주로 집에 혼자 있었다. 아빠는 내가 아침에 눈을 뜨기도 전에 회사에 갔다. 엄마도 회사에 다녔는데 아빠보다 출근시간이 조금 늦다는 이유로 나와 내 동생의 아침은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아침에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나는 학교로, 동생은 유치원으로, 엄마는 회사로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가 올 때까지 집에서 혼자 냉장고를 열었다가 닫았다가 드라마를 보고 게임을 하고 학원에 안 간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들의 학원 스케줄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언제 누구를 불러내서 놀 수 있는지 아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게 좋게 보일 리 없었다. 겨우 학원에서 돌아온 딸이 책가방을 던져놓고 나가 노는 게 마음에 들 리 없었다. 허구한 날 불러내는 애가 공부도 못하는 애라니! 걔네 엄마는 관심이 없는 건가 코빼기도 안 보이고.
그래서 그랬나 보다. 그래서 그런 말을 했나 보다.
소리 엄마, 소리가 그렇게 관리 안 되는 애랑 놀게 내버려 두지 마.
나는 몰랐다. 내가 학원을 몇 개 안 다니고, 친구들을 좋아하고, 엄마가 일을 한다고 해서 ‘관리 안 되는 아이’가 되어있을 줄은. 교육 때문에 이 동네에 왔으니 이왕이면 공부 잘하는 친구, 이왕이면 학원도 잘 알고 입시도 잘 아는 그런 엄마를 둔 친구가 있기를 바란 모양이다. 유감스럽게도 난 소리에게 그런 친구가 되지 못했다. 아니, 누구에게도 그런 친구가 되지 못했다. 난 늘 학원을 몇 개 안 다니고, 학원을 잘 아는 친구를 따라다녔으면 따라다녔지 정보를 주는 사람은 못 되었다.
우리 엄마가 없는 학부모 모임에서 내 이름이 나왔을 때, 내가 기피해야 할 친구로 아줌마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알았을 때 엄마는 갈등했을 것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내게 방해가 되고 있을까 봐 걱정했을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관리 잘 된 아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쎄, 결과적으로 엄마의 걱정은 기우였다. 좋은 대학에 아이를 입학시키는 게 이 모든 것의 이유라면, 최소한 난 잘 다니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걸 대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엄마는 내가 나의 친구를 미워하지 않도록 지금까지 이제껏 그 이야기를 내게 해주지 않았다. 소리와 난 더 이상 친구가 아니고, 소리의 엄마에게 얼토당토않은 조언을 했던 그 아줌마를 마지막으로 본 건 고등학생 때이다. 내가 사랑하는 이 동네가 끔찍할 때가 있다면 바로 이런 순간이었다. 우리가 그런 시선을 견뎠다는 걸 알았을 때.
워킹맘은 엄마의 선택이었다. 그건 우리 가족의 선택이기도 했다. 우리가 각자의 인생에서 행복하고 각자의 영역에서 인정받는 게 우리의 선택이었다. 이 동네에서는 아직 우리가 별종 일지 몰라도 우린 그 길을 택했다. 앞으로도 그 선택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단지 우리 가족이 이 사회와 공존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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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치동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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