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two> #지형②
M 국장은 창의테크밸리 내 사람들에게 문짱으로 불렸다. 이 단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그는 그렇게 불려졌다. 창의테크밸리의 성공과 다음세대를 위한 산업 생태계 조성을 주 과업으로 신설된 S시 창의혁신국의 총괄책임자이자 3급의 유기계약직인 ‘어쩌다’ 공무원. 신임시장의 재임 후 단행된 최초의 시민사회단체 출신 고위급 인사. 이 모든 수식어 한가운데 문짱이 있었다. 그는 최근까지 소셜벤처,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등을 지원하는 공익재단의 상임이사직을 맡았으나 일반시민들이 관심 있는 이슈를 직접 취재하고 기사로 작성해 올리는 온라인 미디어 기업의 공동창업자로 여전히 더 많이 알려져있다. 문짱은 이때부터 불려진 그의 별칭이다. 전문 저널리스트를 양성해 뉴스를 생산하던 시대에서 누구나 뉴스를 만들어 공유하는 시대로의 전환을 선언한 이 뉴스플랫폼은 당시 꽤나 획기적인 모델로 회자되었고 문짱은 여기저기 불려나가 사업모델을 소개할 일이 많았다. 그러나 그 기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그는 사업이 가파른 성장세를 타기 시작할 때 창업파트너와 갈라서 다른 길로 들어섰다. 이와 관련하여 문짱이 공동사업체를 자신의 입신에 활용하는 걸 창업파트너가 못마땅하게 여겨 결국 쫒겨나왔다는 설도 있었고 두 사람의 운영 철학이 첨예하게 갈라져 결국 제 발로 회사를 나왔다는 설도 있었지만 문짱이 사직의 변과 관련해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다. 그렇게 그가 자신이 설립에 관여했던 조직을 떠나 다른 일을 모색할 때 그에게 다른 길을 제안한 사람들이 바로 승곤과 같은 그의 운동권 선배들이었다. 승곤과 문짱은 운동노선이 분파되던 시기 제3의 길을 걸으며 가까워진 사이다. 문짱은 그 뒤로 선배들과 함께 수십개의 시민사회단체를 설립하고 그 중 몇 개는 이곳저곳에서 돈을 끌어와 민간재단과 같은 안정적 운영 구조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다. 시민사회의 대표적 인물들이 제도정치 안으로 편입되어 가는 와중에도 그는 변화될 세계의 대안 모델을 만들어가는 일, 소위 현장에서 소 키우는 일을 꾸준히 해온 인물로 평가받았다. 몇몇 이들은 승곤과 같은 선배들이 그가 만든 성공모델을 등에 엎고 제도영역으로 진출하는 덕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그의 차례라고 말하는 사람도 종종 있었다. 꼭 그 말은 다음번엔 자신이 차례라는 듯도 들렸고 그 말을 듣고 정말 순서라도 있는 것처럼 기대에 부푼 사람이 있을지 몰랐다. 하여간 문짱은 자타가 공인하는 신임시장과 승곤의 계보를 잇는 시민사회 리더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그러므로 문짱의 S시행은 이 바닥의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예견된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에게 그는 전형성에서 벗어난,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그가 공직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래로 4개의 과와 11개팀 총 51명의 조직원을 거느리고 표면적으로는 폭넓은 권한을 가진 고위공직자가 된 뒤에도 그는 힘의 관계에 대해 조금도 조심성이 없었고 여전히 조직의 관성에 알러지 같은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었다. 허례가 없고 소탈해보였고 동시에 언제나 조금 화난 표정이었지만 오십 평생 누구에게도 지적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사회적 관계에 늘 무신경했다. 그가 3급 공무원이 된 뒤에도 변함없는 주위의 사람들은 그를 대게 한결같이 낯설어하면서도 그와 안면이 있는 몇몇 이들을 쫓아 그를 지칭할 때 조심스럽게 그의 별칭을 사용해 불렀다. 물론 공무원들은 그를 국장님이라고 꼬박 호칭했지만 자신들이 관리 감독하는 용역업체의 직원들이 자신의 상사를 별칭으로 부르는 것까지야 그들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많은 이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하는 특이한 상사였다. 공무원 사회에서 그는 튀는 사람이고 편치 않은 사람일테지만 그들은 그저 그를 두고 보는 것 같았다. 곱지 않은 시선으로 팔짱을 끼고 어디 두고 보자 이런 것도 아니고 그저 관망하듯 시간이 약 이라는 식이었다. 그러므로 결과에 따라서 그는 범상치 않은 인물로 혹은 역시나 부적합 사람으로도 평가될 수 있었다. 소셜섹터에서도 그와 일해본 사람들 중 그를 꽤 독특한 어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문짱의 스타일. 그래서 사람들은 그의 업무처리방식이나 사회적 태도에 대하여 ‘스타일’이란 단어를 붙였다. 장점과 단점이 뒤섞여 좋다고도 안좋다고도 즉각적인 평가를 내리기 어렵고 무엇으로도 규정하기 난해할 때 쓰는 단어를 사람들은 문짱에게도 썼다. S시에 입성한 최초의 시민사회 인사가 된 결정적 배경에도 바로 그런 그의 독특한 ‘스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라고들 짐작했다. 사회적 문제를 구조적으로 사고하고 이에 대항하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며 조직적 관성을 거스르고라도 도전적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 그의 지난 경력이 증명하듯 그는 새로이 조직을 만들어 초기 성장을 촉진하는데 특화된 인물로 인정받았다.
심지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거대한 과제들을 거뜬하게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불가침 영역에 다다라 손에 닿은 성서를 결국 꺼내든 어린 복사 마냥 호기심을 부력 삼은 그는 홀로 퍽 가벼워보였다. 큰 일 날 일도 별 일 아닌 것 같이 관대해졌다. 의무와 책임으로 움직이는 열 사람이 재미와 즐거움으로 기꺼이 노동을 감수하는 한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걸 굳게 믿는 사람 같이 거침이 없었다. 재미와 즐거움을 쫓아 그는 한동안 관련된 정보를 자신에게로 수렴시키는데 집중했다. 이 곳의 변화를 예감한 사람들은 이 변화의 시작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숟가락 얹을 기회를 엿보고 있는 때였고 정보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문짱에게로 모여들었다. 이 바닥의 내노라 하는 기획자들이 갖가지 아이디어를 들고와 자신의 특기를 뽐냈다. 문짱의 입에서 네덜란드, 캐나다, 영국 등을 비롯하여 J시와 Z시까지 국내외 사례들이 두루 언급되었다. 그러면서도 기존의 사례들과 기시감이 드는 페이퍼에는 시대에 뒤쳐졌다는 거침 없는 평가를 매겼다. 그들 중 여럿은 총괄책임자라는 사람이 특별한 비전도 없이 아이디어나 갈취 하고 있다고 뒤에서 흉을 보았지만 그 여럿 중 또 여럿은 페이퍼를 수정하여 그를 다시 찾았다. 혁신 비즈니스 생태계, 미래교육 혁신 지구, 청년들을 위한 일생활타운과 같은 말들이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두서 없이 짜깁기되어 참고자료로 소셜섹터의 관계자들에게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러한 문짱의 의지와 관계 없이 행정업무는 방침과 단계별 사업계획과 단위사업별 세부실행계획과 품의라는 문서에 기초해 진행되는 것이었다. 어떤 주체가 무엇을 어떻게 그래서 얼마의 예산을 사용할 것인지가 매번 요구되었다. 문짱의 구상을 행정문서로 옮겨 구현될 기반을 닦는 일이 51명의 공무원들의 몫이었지만 이들에게 문짱의 언어는 김이 서린 불투명한 안경을 낀 것처럼 모호함으로 아른거렸을 것이고 모호함을 무슨 덕목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상사가 당최 어떤 방침서에 근거해 업무를 진행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거였다. 그들은 문짱 이전의 전임 국장이 당대 핫한 명사들을 죄다 붙인 ‘창의테크밸리’를 주제로 만들어놓은 방침서 제목 가장 앞에 ‘가칭’을 붙여 이를 근거로 행정문서를 만들고 각종 용역공모와 회의 추진을 위한 결제 문서를 만들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어느 덧 가칭을 빼고 불렀고 때때로 ‘창의밸리’ 라거나 ‘창밸’ 이라고 입맛에 맞게 줄여 불렀다. 결국 이 단지는 내내 창의테크밸리 라고 불렸는데, 이 대명사는 단적인 불협을 지독히도 명징하게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커버사진: Unsplash의Zoltan Fekeshazy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