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two> #지형①
S시의 끝자락 유폐된 욕망의 땅, 소유주는 있으나 주인은 없는 공터, 오랫동안 쓸모를 잃은 이면의 공간, 감추고 싶은 오욕의 서사가 있는 그러나 잊히지 않는 대지, 뒤로는 아무도 오르지 않는 둔덕을 등지고 앞으론 콘트리트 덮힌 복개천을 끼고 들어선 음지진 터, 음울한 정치사와 나란히 풍랑 속에 반세기를 통과해 드디어 망령처럼 쇠락해버린 국가기간시설이 마지막 위용을 떨치던 성역의 장소, 담장이 높아지고 담장 밖으로 소문이 무성히 자라날수록 지역주민들로부터 더욱 이격되었던 미지의 부지.
이곳으로 낯선 사람들이 불규칙하게 모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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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70여년전만해도 G시에 속했다. 주민들의 선호에 따라 S시가 확장되면서 S시의 출장소가 되었다가 분리 독립해 구로 승격된 E구는 40년대말이 되어서야 최종 S시로 편입되었다. 편입 이후 E구는 S시에서 녹지비율이 가장 높은 구가 되었다. E구는 G시와 S시를 경계짓는 산맥으로부터 파생된 산줄기들로 둘러싸인 분지와 구릉지 형태의 땅이 많았다. 지면과 맞닿아 융기된 산의 경사로를 따라 촘촘히 다가구주택이 들어서고 벌거벗겨진 산의 비탈면을 배경으로 분지마다 타워크레인이 설치되었다. 산을 등지고 평지에 고층 아파트들이 산등성이 모양을 따라 들어섰다. 산을 등진 동네에는 신혼부부와 독립한 자식을 둔 노부부들이 많이 살았고 산 위에 지어진 집에는 오랜 원주민들이 살았다. 이 구를 가로지르던 실개천이 덮이고 그 위로 남북을 잇는 4차선 도로가 모로 놓였다. 도시기능에 장벽이 되었던 산을 뚫고 터널이 생겼다. G시에 사는 사람들이 터널을 넘어 S시로 출퇴근을 했다.
이 단지는 터널입구를 바라보고 오른쪽에 위치해있다. 터널의 왼쪽, 도로변을 따라 늘어선 상가에는 등산객을 상대로 한 음식점과 스포츠웨어판매점이 즐비했다. 허리척추전문병원는 단지의 대각선 코너에 위치해있다. 상가의 이면도로에는 근린생활주택들이 무계획적으로 난립했다. 한 집 건너 음식점이 한 집 건너 술집이 있고 그 위로 주거시설과 사무실이 섞여있다. 이곳에는 1인 가구가 많이 살았다. 이들은 낮에 시내로 출근을 했다가 밤이 되면 술 취한 행인들을 지나 자신의 동굴로 피신했고 주말에는 등산객들에 섞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 단지가 본격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였다. 두 면은 도로에 접해있고 아무도 오르지 않는 버려진 낮은 산을 뒤로 낀 이 넓다란 터는 3만평의 굴곡 하나 없는 평지로 폐쇄형 단지를 조성 하기 좋은 조건이다. S시로 소유주가 변경되기 전까지 중앙부처인 보건복지부 소유의 부지였던 이 단지에는 보건의료 관련 국책기관들이 처음 자리를 잡았다. 질병위기관리와 예방을 관할하는 의료보건 정책총괄 기구와 더불어 이들과 수직적 협력관계를 맺는 생명정보, 줄기세포 등 분야별 연구기관들이 자리한데 이어 신재생에너지, 생명공학 관련 정책연구기관들이 차례로 들어섰다. 주민기피시설에 해당하는 국가기관들이 S시의 외진 경계부로 죄다 모여든 것이었다. 연수원, 구내식당, 테니스장, 야외주차장, 창고형 실험실 등 각종 업무시설과 직원들을 위한 복지편의시설까지 갖춘 명실공이 복합행정타운으로 완성된 것은 80년 중반에 들어서고였다. 도로측 두면으로 사람 키를 훌쩍 넘는 담장이 섰고 모든 출입은 철저하게 관리되었다. 단지로 출입이 허가된 사람들은 교통편이 나쁘고 외지다고 투덜대면서도 좀처럼 단지 근처로 이사 오는 사람은 없었다. 도시가 확장되며 90년대 초에는 시내를 관통하는 지하철이 이 단지 앞까지 연장 개통되었지만 주변 집값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지역상인들은 이곳에 출입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단지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이 단지의 베일이 차츰 벗겨지게 된 때는 2000년대로 들어와서였다. 한창 국가 불균형 발전 해소 방안의 하나로 공공기관의 지역이전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기업 유치와 세제혜택, 규제완화 등의 시장자율에 맞긴 정책적 효과가 생각만큼 발휘되지 않자 극약처방의 하나로 나온 것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중앙부처와 그 산하 기관들이 타 지역으로 이전할 때 이 단지의 터줏대감과도 같았던 기관들도 하나둘씩 이 단지를 뜨기 시작했다. 수입은 예전만 못했지만 지역상인들은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단지 안이 꽉 찼을 때에도 호황이랄 것 없던 이 지역의 상인들은 단지사람들이 사라진 후에도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들은 단지가 비어가자 점진적으로 등산객들을 위한 상품으로 바꿔 팔기 시작했다.
담장 안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이 줄어들수록 단지 내부와 관련된 소문들이 장마철 잡초처럼 날로 무성해졌다. 상투적 이미지들이 접목된 소문의 내용은 꽤나 구체적이어서 가만히 듣고 있다보면 진짜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소문의 진상이라는 것은 연수동 두개층을 털어 정부 고위공직자들만 이용하는 객실과 연회장을 별도로 지었다는데서부터 출발했다. 흡사 영화 세트장인가 싶을 정도로 그 호화스러움이 말로 다 못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디테일이 덧붙어졌다. 야외마당의 테니스장은 실제 헬기착륙장이고 VIP 전용 객실에는 천연대리석을 사방으로 두른 사우나 시설을 별도로 겸비하고 있다는가 하면, 연회라도 한번 열릴라 치면 시내 5성급 호텔 주방장들이 죄다 동원되고 연회장은 하도 장대하여 소실점 끝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6미터 천고에 질나래비처럼 걸린 샹들리에가 바닥에 비쳐 장관을 이룬다는 둥 꽤 그럴듯 하게 묘사된 설명들이 말맛을 더했다. VIP가 사우나 시설에서 미끄러진 후로 대리석을 죄다 뜯어내고 뜯어낸 그 자리에 편백나무를 둘러 핀란드식 사우나 시설로 개비했는데 그 유지관리비용이 한 개 동비 예산과 맞먹을 정도 라는 등 이야기는 퍼질수록 진화해갔다. 소문을 옮겨나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들딸들이 저 단지로 출퇴근하게 되는 것을 한평생의 꿈으로 여기며 살았다는 것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단지 내 주요 시설들의 이전이 종결된 건 2012년이 되어서였다. 평범한 사람들의 창조력이 한껏 발휘되던 소문들이 제기능을 하지 못할 무렵이었다. 어느 덧 비어진 공간은 날로 피폐해졌고 담장 밖으로도 금방 표가 났다. 사시사철 가지런히 정돈되던 담장 안 초목들은 산발한 머리처럼 삐죽삐죽 자라 담장 밖을 넘었다. 출입구를 삼엄히 지키던 경비인력도 눈에 띄게 줄었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버려진 인형처럼 음산한 기운을 내뿜었다. 그래서 이곳은 공포영화나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의 촬영지로 각광받았다. 대형버스와 트레일러들이 한참 이곳을 드나들 때에는 단지 깊숙히 비밀스런 임무를 수행하는 동물실험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비밀스럽지 않게 동네를 퍼져나갔다. 그리고 유전자 조작과 바이러스 실험으로 죽어나간 수십만 마리 동물들의 원혼이 떠돈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금방 사라졌다. 집값 떨어지는 소리라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앞다퉈 쉬쉬거렸기 때문이었다. 그 후 한참동안 이 단지는 동면의 상태로 멈췄다. 한동안 지역사람들은 이곳을 모르는 척 지냈다. 부지 소유권이 S시로 넘어간 뒤 단지의 활용계획이 세워지다 엎어지다를 반복했다. 이때까지도 지역사람들은 이 단지에 이렇다할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동네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건 시장이 바뀌고 낯선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고부터였다. S시로부터 의뢰를 받은 용역회사 직원들이 지역 수요조사를 한다며 시장 상인회부터 주민위원회까지 조직된 지역단체들을 만나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네분위기는 침잠된 것들이 죄다 일어 오르는 것처럼 금방 혼탁해졌다. 여럿의 이해를 하나의 갈래로 머리 땋듯 정돈할 책임자가 보이지 않는 동안 이전과는 양적으로 다른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는 지역상인들의 오랜 염원과 교통과 쇼핑몰 등 생활기반시설 확충이 우선이라는 이주한 지역주민들의 요구와 같은 지역사회의 희망들이 제각각 분출되었다.
그러다 지역사람들이 일순간 냉담해진 건 보궐선거로 시장에 당선되고 1년반만에 재선에 성공한 신임 시장이 재임 100일을 맞아 진행한 기자회견이 있은 후부터였다. 신임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 단지의 쓰임을 나라의 보건의료를 책임지던 국가기간시설에서 지역과 상생하는 로컬형 산업단지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 그는 “E구는 딱 한 보 앞선 전진산업의 발원지로써 전세계인들이 찾아와 새로운 도시 모형을 벤치마킹해가는 도시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포부도 밝혔다.
지역의 이해당사자들은 난해한 단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이 문장의 속뜻을 기막히게 알아챘다. 그것은 호텔도 대형쇼핑몰도 도로도 철도도 공원도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커버사진: Unsplash의engin akyurt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2부(two)에 속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