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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Apr 29. 2023

명산물이 없는 게 아니다, 그것은 방앗잎이다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3)

한 달을 3분의 2와 1로 나눠 서울과 순천을 오가는 간헐적 순천살이, 그 두번째 순천방문. 엊그제 순천에 도착해 5월 둘째주에 다시 서울로 복귀할 예정인 이번 방문에서 이 도시는 확실히 나에게 첫번째 보다 훨씬 안전한 느낌을 준다. 설었던 풍경이 두번째만에 반갑고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반경이 딱히 넓어진 것은 아니지만 다만 버벅댐 없이 도시를 활보 중인데, 첫번째와 달라진 변화라면 매일 계획한 것들을 어그러트리고 계획에 없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에겐 낯설음이 줄어든 증거 중 하나로 느껴지는 변화인데, 그 계획에 없던 일을 하는 일 하나가 맛집 탐방과 안 먹어본 음식을 먹는 일이다. 왜 남도까지 와서 맛집 탐방을 계획에 넣지 않았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저 낯선 환경에 적응한다는 생각뿐이었던 것으로 갈음해본다.    


하여간 계획에 따라 이번 순천행에는 집에서 안쓰는 프라이팬이 따라내려왔다. 내가 묵고 있는 구시가지의 숙소는 세간살이가 없이 인덕션과 전자렌지와 같은 주방설비만 있어 집에서 안쓰는 것들 중 이곳에서 쓸 것들을 옮겨오는 중이고, 지난번 그릇들에 이어 이번에 딸려온 것은 프라이팬이었다. 이번에 와서는 시장에서 제철의 식재료를 사다가 숙소에서 간단하게 해먹을 작정으로 쓱에서 몇가지 가공식품까지 주문해둔 것이었고, 오늘로 3일차.. 아직까지 해먹은 끼니는 없고 그러므로 이 프라이팬은 괜스레 힘만 쓰고 그 먼길을 가져온 꼴이 되었다. 이곳에는 메인디쉬는 말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고명까지 완벽한 맛집이 주변에 널린 까닭이고, 곧 있을 연휴를 맞아 식당 문을 열어 젖혀두고 대목을 맞을 준비로 분주한 식당마다 이미 손님들로 가득하고, 제철 한정 메뉴가 개시되었다는 광고판이 붙은 식당을 지나칠 때면 왠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탓이다. 그렇게 주술에라도 걸린 듯 들어가 먹은 메뉴 중 하나가 중앙시장 근처 식당 모정쌈밥의 정어리쌈밥이었다.(안타깝게도 먹느라 정신이 팔려 내 핸드폰 속에 음식사진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입춘대길 이라고 써붙여 놓은 대문 앞을 지나치는 것처럼 복을 기원하는 심정으로 '정어리쌈밥 개시'라는 말에 이끌려 식당에 들어왔지만 식탁에 앉아서도 꽤 깊은 고민을 했다. 메뉴선정에 대한 고민이었고, 이인분 이상만 주문이 가능해 하나씩 시킬 수 없었던 까닭이다. 나는 대게 먹던 것, 알만한 재료로 만든 것들을 주로 먹는 편이라 (음악도 좋아하는 1곡만 1시간 동안 주구장창 반복재생해 듣기도 하는..) 고등어와 숯불돼지라는 낯익은 메뉴들과 정어리 사이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에잇 정어리쌈밥 두개요" 하고서, 맞은 편에 앉은 남편에게 "근데 정어리가 뭐야? 멸치 같은 건가?" 라고 물어보고도 몇 번을 번복할까 말까를 살짝 고민했다.


숙소에 돌아와 찾아보니, 정어리쌈밥은 (좀 비약된 내용이긴 하지만) 어떤 기사에 순천만정원박람회의 성공비결 중 하나로 꼽힌 남도음식의 대표적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내가 3미 중 하나로 꼽는 도다리쑥국과 함께 정어리 쌈밥이 남도의 봄철 별미로 꼽힌다는 걸 이 기사를 보고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거기다 이날 반찬으로 나온 미나리김치와 정어리찌개 같기도 한 조림(쌈밥은 이 조림을 쌈에 밥과 함께 싸먹게 되어 있었고, 국물이 자작해 꽤 자주 국물을 흘리게 되기도 했다) 안에 들어있던 고사리가 또한 봄 나물이란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불혹을 넘은 나이인데.. 세상에 모르는게 얼마나 많은 건가 생각하다.. 잠시 멍해지기도) 정확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20~50년 주기로 어획량이 폭증했다 사라지기도 한다는 정어리는, 만화 <식객>에서도 멸치와 혼용되어 사용되는 것을 두고 학계 언쟁이 있었다고 다룰 만큼 희소가치가 있는 식재료이지만 내가 정어리쌈밥에서 사실 정어리 라는 주재료 보다 먼저 반응한 건 방앗잎이었다.


난, 그것이 산초가루라 생각했다. 꼭 정제된 조미료 처럼 강한 향과 맛 때문이었다. 나는 한 숟가락 떠먹고 마주 앉은 남편에게 유일하게 아는 맛을 아는 척 하느라 "오 산초가루 들어갔네. 되게 이국적인 맛이나" 라고 말했고, 그건 낯선 맛에 대한 방어적 표현이었는데 이어 국물을 떠먹은 남편이 "아 이건 방앗잎이야"라고 무안하지 않게 정정해주었다. 그리고 어릴 때 자주 먹던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리고 한참을 말 없이 게걸스럽게 먹는 나를 보며 "원래 더 많이 넣어주는데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해서 요새는 좀 덜 넣어주나보다"는 남편의 말인지 놀라움인지가 굉장히 섭섭하게 들릴 정도로, 향 나는 풀을 좋아하는 나에게 방앗잎 향이 가득한 정어리쌈밥은 먹으면 먹을수록 중독되는 맛이었다. 방앗잎 덕분이었다. 그렇게 정어리와 함께 검색해본 방앗잎은 영어식 표기로 코리아 민트, 조선왕조실록에 전라도 토산물이라고 되어 있다고 하니, 방앗잎이 들어간 정어리쌈밥은 정말이지 전라도 봄철 별미의 정수였다고 할 수 있었다. 이 모두는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안 사실이다.  


그렇게 정어리쌈밥을 먹고 배가 꺼질 때서야 이날의 점심메뉴가 특별하게 기억되었는데, 왜 그것이 그토록 특별했는지는 적확하게 깨달을 수 없지만, 먹고 나서 이것 저것 정성껏 찾아보았고 그보다는 지금 이 계절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경험한 것 같은 느낌 같은 것이라 짐작한다. 그리고 하루살이처럼 오늘과 내일의 순천살이만을 고민하다가 여름과 가을, 겨울까지 이런 발견이 계속되기를 처음으로 바랄 수 있었다. 이게 다 방앗잎 때문이다. "그러므로 순천에는 명산물이 없는게 아니다. 그것은 방앗잎이다!"                               


그렇게 결국 남도 맛집 탐방으로 변질된 이번 방문의 3일째 지금까지 시도한 것들은

시청 근처의 순광식당 낙지탕탕이 비빔밥과 중앙시장 근처의 모정쌈밥 정어리쌈밥, 도화정 로스오리불고기였다. 그 사이사이 옥천점빵의 조청스콘과 조훈모 제과점의 슈크림빵들이 끼어들어있다. 그리고 앞으로 남도한정식과 콩국수와 연입밥과 토마토커리 등의 일정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 모두가 아닐 수도 있다. 아우. 기대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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