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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Apr 09. 2023

20세기 로봇처럼 걷고 있다    

[일기] 간헐절 순천살이 (2)

엊그저께는 금요일 예능프로그램 <나혼자산다>를 라이브로 보겠다는 일념으로 MBC 온에어 페이지에서 2천원을 주고 1일권을 사서 보았다. 물론 평소같으면 하지 않는 짓이다. 나는 넷플릭스 외 다른 OTT를 구독할 생각이 없었고 심지어는 넷플릭스도 잘 보지 않는 편에 속한다. 넷플 구독은 사실 유행따라 구독하는 측면이 없지 않고 자주 구독료가 아깝단 생각을 하며 심지어 넷플 자체 제작 콘텐츠를 선호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구독료를 기꺼이 내고 있는 까닭은 시댁과 친정 양쪽으로 네 가족이 계정공유중이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나혼자산다>를 다 보지 못한 채 잠이 들었지만 종일권을 2천원이나 주고 산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그리고 간혹 한번씩 보고 싶은 것을 낱개로 사볼 것인가, 티빙 이용료를 끊을 것인가를 두고 고심중이다. 넷플릭스로는 보고싶은 예능을 볼 수 없다는 이유가 크지만, 최강야구를 볼 수 있는 것에 위안이 되는지 티빙의 정기 이용권을 끊어보는 것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날 낮에는 아랫장 5일장을 구경하다 붕어빵이 먹고 싶었고 이를 사먹기 위해 지갑을 뒤지다가 현금도 현금카드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곧바로 시장 주변을 돌아보다가 멀리 농협 건물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눈 앞 편의점에 들어가 CD기에서 신용카드를 꽂고 현금서비스를 받았는데 수수료 1천원에 이자가 12.7% 라는 경고메시지에도 불구하고 3만원을 뽑아 돌아와서 한 개만 달라는 말에 5초간 말이 없다가 천원에 3개라고 말하는 아주 심드렁한 아주머니께 3개를 달라고 하고 받아들고 붕어빵을 한 입 물고서야 이 붕어빵을 먹기 위해 배보다 배꼽이 큰 일을 감행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마 붕어빵이 이런 도전을 감행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면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붕어빵맛은 기대 보다 못했기 때문에 붕어빵을 먹으면서는 수수료와 이자에 더해 신용도까지 하락될 수 있다는 것까지 연달아 떠올리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붕어빵 반죽은 초록색, 쑥향이 진하게 배어있었고 그 작은 다행스런 일 가운데 불행이라면 팥이 정말이지 코딱지만큼만 들어있었던 것이며 바짝 구워지지 않은 탓에 금세 눅눅해져 버린 것이었다. 아까운 마음에, (아깝다는 기분은 붕어빵 보다 수수료와 이자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꾸역꾸역 두 개까지는 먹었지만 배도 몹시도 불렀기 때문에 그리고 다음 먹거리도 있고 하여 한 개는 저녁에 먹으려고 남겨두었고 그 마지막 한 개의 붕어빵은 저녁에는 더욱 눅눅해졌고 먹고 싶은 마음이 영 생기지 않아 결국 버렸다.  

붕어빵을 한 입 베어물고 돌아서서는 두릅튀김 앞에서 한동안 고민을 했는데 그건 사실 점심을 먹고 온 탓이었고, 왜 시장에 오면서 밥을 먹고 온 것일까 하고 잠깐 후회를 했지만 오일장과 무관한 시장 앞 떡볶이집 간판을 보고 다음에는 밥을 먹고 오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그러다 다시 현금서비스 받은 수수료와 이자를 생각 하며, 결국 두릅튀김을 먹기로 했다. 다음에는 저 집에서 떡볶이를 먹어야지 그 생각을 하며 포장마차 비닐 장막을 걷고 들어가 "저.. 제가 혼잔데 두릅튀김은 어떻게 해요?"라고 물으니 아랑곳 없이 돌아온 답이란 것이 "한접시에 만원"이었고 그 말에 쭈뼛거리는 걸 앙깔지게 쳐다보던 아주머니께서 "오천원 어치 줘?" 라고 되물어주셨는데 그 말이 황송하여 웃으며 "네!" 라고 씩씩하게 말하고 뒤이어 "먹다가 포장해가도 되나요?" 라고 신나서 물어봤고 "그건 알아서 하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 네" 그리고 허허허 인지 헤헤헤 인지 하여간 그 사이 어디쯤에서 거짓 웃음으로 무안함을 달래고 들어와 앉아 두릅튀김을 받아들었고 두릅튀김은 고유한 두릅의 맛은 덜했으나, 아 두릅은 초장 맛이었나 싶었으며, 그래도 바삭한 두릅의 식감이 색달랐고 특히 곁들여주신 간장이 맛있었으며, 무엇보다 처음 온 티 팍팍 내는 혼자온 손님이 어색해보였는지 홀에서 서빙을 담당하는 아주머니의 살뜰한 보살핌 속이었는지 어쩐지, 조금씩 이 낯선 동네에 적응해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이상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두릅튀김 반만 먹고 나머지는 아주머니께 싸달라고 하여 집에 와서 나머지 반을 저녁으로 먹었다. 아주머니가 비닐 두 겹으로 정성스럽게 싸주신 덕인지 두릅튀김은 저녁까지 바삭했다.      

지난주 골치를 썩혔던 음식물쓰레기는, 순청시청 홈페이지에서 음식물쓰레기가 아니라 음식물폐기물로 검색해야 알 수 있는 처리방법 안내를 확인한 후 수거업체에 별도로 연락을 드려 내가 묵는 쉐어하우스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안내대로 금요일 일몰 후 내놓아 토요일 수거해 가는 차량에 회수된 것을 토요일 아침 눈뜨자마자 잠옷바람에 확인하고 나서는 체증이 내려간 것 같았는데, 꼭 드디어 전입신고를 마친 것과 같은, 느낌이 든 것이었다.고 짐작하고 있다.  

토요일 아침에 전날 밤 통에 꽂아둔 칩(돈 내고 사는)이 없어진 걸 확인중. 이 동네는 화목토를 음식물폐기물을 수거해 간다고 한다.

순천에 머문지 오늘로 딱 1주일, 나는 왼다리와 왼팔이, 오른다리와 오른팔이 쌍을 이뤄 올라가는 구식의, 20세기 로보트처럼 걸음걸이조차 어색하게 온통 낯선사람이라는 것을 티내며 동네를 배회중이다. 몸은 긴장되어 있는지 평소보다 일찍 잠에서 깨고 쉴 틈 없이 아침저녁으로 바닥을 닦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와중에 시장에 들러 끼니거리를 사오고 만보씩 걷는 산책도 잊지 않고 있지만 어딘지 나사 하나 빠진 사람처럼 삐그덕 거리고 부러 비효율을 자처하는 일이 시간 중 태반인 채로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서울에선 온통 주위로 신경을 빼앗기고 분산된 주의를 한줄기로 모아 내 안으로 집중하지 못했는데, 이곳에선 나에게 온종일 몰입해야 하는 고립된 조건이 있고 텅 빈 시간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곳은 도시 전체가 나만의 작업실 같기도 하지만 아직은 한 개의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아홉개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방황을 하고 있는 중이다.


다음주면 서울로 올라가고 4월 마지막주에 다시 내려올 계획인데 그때는 조금더 자연스러워지길 기대해본다.

(왼쪽) 순천버스터미널 옆 공공부지 조형물에 앉아봄 (오른쪽) 옥천과 동천이 만나는 길목, 온갖 곤충과 동물 모양으로 조경수들을 깎아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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