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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Apr 06. 2023

낯선 동네에서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1)  

계속 이렇게 별 볼 일 없으면 어쩌지? 

올해 들어 불쑥불쑥 드는 생각이었다. 수평선 아래 가라앉아있는 것 같다가 때가 되면 위로 쑥 하고 해가 머리를 내밀듯 머리속에 불쑥 그 생각이 떠오르면, 내둥 놀다가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가만히 앉아있다가도 몸도 함께 벌떡 하고 위로 솟아올랐다. 직장생활을 접고 프리랜서로 전향한지 4년차를 경과하고 있었다. 이제는 프리랜서라는 말도 적당하지 않은, 경제적 활동이 전무한지도 벌써 8개월이 넘어선다.   

 

퇴사 후 꽤 긴 시간 혹은 지금까지도 나는, 졸라맨 허리띠를 풀어내듯이 억압적 관계와 상황에서 멀어지려 애쓰고, 사회구성원으로 다분히 져야 하는 책임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를 쓰며 지내온 것 같다. 이 애라는 것을 쓸 때는 그래도 내가 사회적 인정을 확인하고 있던 때라는 것은 이 글을 쓰면서 든 생각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이 이완의 상태를 위해 왜 이토록 애를 써야 하는지 알 수 없었는데, 그러다 나는 자아와 타자 사이 긴장관계를 균형적으로 유지하고 때론 적당히 이완하는 법조차 모르는 사람이구나를 깨달은지 얼마 되지 않았다.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마음을 돌아본 건, 간간히 들어오던 소액의 프로젝트마저 뚝 끊기고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있어본 그 다음이었다. 그것이 능동적 실업상태인 것인지 수동적 실업상태인지 스스로는 알지 못했고 다만 이상하게도 그 상태가 불안하지 않았는데, 그러고도 한참을 있다가 무기력의 단계에 다다른 것이란 걸 깨달은 건 그런 경제적 실업상태가 두어달을 넘어갈 때였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나는 부양할 자식도 부모도 없었다. 그러므로 마음 부대낄 것도 없었고 언제든 훌훌 털쳐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이렇게 붙들리지도 저렇게 흔들리지도 못하고 있는가... 남편에게 기대어 근근하게 기본생활을 연명하고 있으니 자아니 타자니 그런 시덥잖은 생각이나 하는 것인가.. 생각만 많아졌다.        

      

그렇게 열심히 끊어내고 나니 곧이어 뭐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 생각이 든 다음날로 하루 루틴처럼 거의 매일 오전내 글을 썼다. 아직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나만 보는 글을 구글문서도구에 하루 한바닥씩 써낸 것이 200자 원고지 1700장이 넘어가고 있다. 그 글을 나는 요새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언급하고 있는데, 뭐라도 하고 있다는 표시를 내고자 하는 것인지는 나 자신도 알 수 없고 다만 그 글을 설명할 때 나는 소설이라고 말하고 아주 때때로는 꿈이 소설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프리랜서도 아니고 사회적 활동이라곤 1도 없는 백수인 것이구나 라는 걸 떠올렸을 때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물론, 1700장이 넘어가고 있는 소설을 올리는 것은 아닌 일기를 규칙적으로 써보려 노오력해보며 브런치를 스리슬쩍 시작해보는 수준이지만)             


그러므로 나는 어떤 불안, 아무것도 되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을 떨쳐내기 위해 사실 별 다른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긴 여행을 계획하다가 별 것 없는 자택자산을 기반으로 장사를 할까, 귀농을 할까, 그냥 훅 이민을 가버릴까 그런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마구잡이로 하다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 '건강한 중년생활'을 위한 자기기만적 루틴을 또다시 이어나갈 힘이 생겼다. 그러니 결국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있었다. 나의 퇴사 후의 생활이란 것은 미디어에서 보는 것만큼 별스럽지도 자유롭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사건 이라면 오늘 뭐먹을까 어디로 걸을까 정도인, 꼭 은퇴한 노년의 일상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과제라면 하루하루 재미를 찾는 일 같았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경제적 활동 또는 진로찾기에 앞서 나는 무엇으로 일상의 재미를 찾을까가 더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그것을 위해 나는 무엇을 소진할 것인가, 무엇을 감행할 것인가.  


그러던 차, 얼마 되지 않아 운명처럼 남편을 따라 순천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겼다. 물론 아직은 오도이촌과 같은 간헐적 머무름이지만, 이 일상의 균열이 나에게 어떤 계기가 될지 내심 기대중이다. 3월 마지막주부터 지금까지 짧다면 짧은, 길다면 긴 2주 동안 단기 숙소의 공간을 나에게 알맞게 세팅하는데 시간을 보냈고, 엄마와 낯선 동네 곳곳을 돌며 여행을 했으며, 남도까지 내려와 사는 친구의 집도 방문했다. 

동네 밤마실중


그리고 무엇보다 짐짓 고요해보이는 낯선 동네에 들어온 조용한 이방인이고자 노력했으나 예상밖으로 요란하게 등장한 손님이 되었고, 그건 음식물 쓰레기 처리 때문이었다. 2,3층의 낮은 주택들이 밀집한 이 동네의 골목은 쓰레기봉투 하나 나와있지 않은 정갈한 상태를 유지중이었는데, 재활용을 비롯해 일반쓰레기 집하장이 따로 있기 때문이었고, 문제는 도통 음식물쓰레기 처리기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검색을 해보아도 알 수 없어 며칠 변비에 걸린 것마냥 온통 음식물쓰레기에 신경이 곤두서있었고, 내내 처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집 앞 카페에 가 이곳에서 잠시 머무르게 되었다고 인사를 나누며 음식물처리방법을 여쭈었는데, 퀼트수업공간이기도 한 그 카페에 있던 분들의 이목을 끌며 결국 이곳에 머물게된 연유까지 설명하게 되었고 그 후 내가 머문 숙소가 도시재생지역인 이 동네에서 공간 활용을 두고 꽤나 이슈가 되고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틀 후 이 공간의 1층 마당에서 마주한 동네주민으로부터 이 낯선 손님에 대한 소식이 동네에 알려졌다는 걸 확인하고는 동네살이를 위한 생활수칙 같은 걸 물어보지 못하고 있는 차였다. 다행히 음식물쓰레기통과 칩(쓰레기수거비용을 지불하는 것과 같은)을 사 밖에 내놓으면 쓰레기차가 칩과 함께 수거해간다는 사실까지는 알아 냈으나 그래서 그걸 언제 내놓아야 하는지 몰라 매일 같이 동네 집 앞 음식물쓰레기통이 나와있는 것을 살피고 있다. 그러다 어제밤에는 어디가 입구인지 알 수 없는 이 숙소 1층 곳곳을 돌며 어느 곳에 두어야 수거차량의 눈에 잘 띌까 고민고민 하다가 전봇대 아래 두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확인해보니 음식물쓰레기가 수거되지 않은 상태였다. 엄마로부터 동사무서에 찾아가 문의해보라는 핀잔을 들었음에도 이날 저녁 또다시 신중하게 장소를 골라 쓰레기통을 (칩을 꽂아) 내놓았고 내일은 좋은 소식이 있길 바라는 중이며, 이 낯선 경험으로부터 주위를 살피며 살아본지 꽤 오래되었단 생각을 오늘 드디어 하고 있다.                                 

예의주시중인 음식물쓰레기통

그나저나 별 볼 일은 뭘까. 그건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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