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빈조 Mar 21. 2023

전성기

[성장일기] 3월의 히아신스 

지난 7일 화훼직판장에서 사온 히아신스 모종은 다음날 화분에 옮겨진 후 꼬박 일주일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더니 어느덧 만발했고 2주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 다소 웃자라 맥아리가 없어진 길쭉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나는 이 꽃의 모종을 살 때 작은 플라스틱 팻말에 프린트된 이미지만 보았을 뿐이고, 무엇보다 두 개에 이천원인지 천원인지 지금은 기억조차 가물한 부담없는 가격에 홀랑 구매를 결정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중 하나는 현재 엄마의 집에서 자라고 있다. 그 뒤로도 나는 히아신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보는 등의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냥 막연하게 '봄' 이라는 한 철 내 피워내는 꽃이겠거니 기대했다. 그 화훼직판장에서도, 대형슈퍼마켓의 이벤트 코너처럼 마련된, 가장 입구쪽 계산대 근처 가판대에 봄맞이 상품처럼 진열되어 있었던 모종이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줄기가 자라나며 줄기 속 꽃망울이 움트는 히아신스의 성장을 퍽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흙을 눌러가며 수분이 충분한지 체크하며. 


내가 집에 식물을 들인지는 4년쯤 되었고 비교적 키우기 쉽다는 식물들만 골라키웠지만 여지껏 우리집에 살아남은 식물이라면 몬스테라와 싱고니움 정도이다. 규칙적으로 물만 주면 사계절 연신 초록빛을 뿜어내는 나의 반려식물들과 다른 싱그런 노란빛을 띄울 이 꽃화분을 들인 후 오랜만에 기분이 들떴고 한편 제대로 자라지 못할까 걱정되었으며 그래서 매일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들여다보고 흙의 표면을 눌러보는 정도. 그러니까 나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때까지 이 꽃에 대한 정보를 여전히 찾아보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내가 이 꽃에 대하여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한 건, 화분으로 옮겨 심은지 약 일주일이 막 지났을 시점, 전날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히아신스가 하루 아침에 옆으로 구부러진 모양을 하고선 그날 아침이었다. 

난 이 기울어진 모양을 보고 한참 낙담했다. 왜인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까닭이었다. 그래서 찾아본 검색페이지에선 역시나 꽃이 지기 시작할 때 고개를 떨군다고 되어있었다. 왜 벌써? 이 꽃의 생명력이 고작 일주일이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 화훼직판장에는 이와 관련한 경고의 메세지 하나쯤은 모종과 함께 있었어야 옳았다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이 꽃 앞에서 꽤 한참동안 낙담과 실망의 감정을 오갔다. 그리고 왜 이 짧은 생에 앞에 이토록 낙담을 하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보다 결국 최근 나의 상태에 대한 것으로 금방 생각이 옮겨갔다. 


나는, 나의 전성기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사주상 삼십대까지 지지리 고생만 하다가 40대부터 슬슬 풀리기 시작하더니 50대가 되어, 꽃으로 따지자면 만개하는 팔자라는 것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인데, 그 사주풀이에 따르면 나의 전성기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이었다. (아 아니.. 거진 10년 정도가 남았구나.. 난 매번 얼마 안 남았다고 위안을 삼는다) 전성기가 뭐 별거냐 하다가도 그래 뭐 지금도 나쁘지 않잖아 하다가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되는 그 놈의 전성기라는 것이 이렇게 짧고 황망하게 끝을 맺는 것이라니 왜인지 30년 고생한 보람이 없는 것 같이 허망한 마음이 이 노란빛을 띈 생명 앞에서 들고 마는 것이었다. 나는 그만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그리고 다시 이것저것을 검색해보다가 나는, 이 꽃이 머리가 무거워져도 기울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태양신 아폴로가 사랑한 히아킨토스 라는 소년의 이름을 딴 꽃명이라는 서사도 알게 되었다.(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폴로의 사랑을 받았던 히아킨토스 라는 소년이 주변의 질투로 역풍을 맞아 죽게 되는 다소 슬픈 결말로 끝을 맺는데, 왜인지 이 꽃의 짧은 생애와 닮았다는 생각도 하였다) 하여간 우리집의 히아신스는 그로부터도 다시 일주일이 지난 현재 다소 웃자라 왜인지 왜소한 모양을 하고 있으나 다시 위로 길쭉하게 솟아나 피사에 사탑처럼 조금 기운 모습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우리집에 온지 2주가 넘어서까지 이 꽃은 지지 않았고 근처만 가면 여전히 강렬한 꽃향기를 품어내고 있는 중이다. 


예상 밖으로 꽃이 기운 뒤 나는 이 꽃이 지는 형상을 미리 본 것처럼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이 꽃의 아름다운 시절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그런 마음. 하루종일 바라보고 있을 수 없고 하루 중 순간순간 혹은 일주일 중 틈틈이 이 꽃을 지나다 보는 것만으로는 뭔가 섭섭했다. 그래서 나는 그대로 화분 속에 두면 내년 봄에 한번더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하여 찾아보았다. 그리고 히아신스가 꽃을 다시 피우기 위해 꽤 긴 시간 정성을 들어야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는 탄식인지 콧방귀인지가 푸식하고 나왔다. 과연 내가 이 과정을 잘 거칠 수 있을까, 그러나 기필코 내년에도 꽃을 볼거야 하는 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들었던 탓이다. 히아신스는 알뿌리가 있는 구근 식물로, 튤립과 같은 구근 식물들은 수경재배로도 키울 수 있지만, 나는 구근이 보이게 흙에 심어 키웠음으로(물론 당시 정보를 찾아보지 않았으므로 그냥 모종을 옮겨심은 것이었다) 잎이 완전히 시들고 나면 구근을 캐서 서늘한 그늘에 말린 구근이 완전히 건조가 되면 양파망 같은 곳에 넣어 어둡고 시원한 곳, 냉장고 같은 곳에 넣어두어 보관하였다가 1월에 다시 심거나 수경재배해 다시 꽃을 피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년에 한번 더 히아신스를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꽃이 아주 찰나의 강렬한 색과 향의 시간을 위해 꽤 복잡한 생애주기를 거친다는 생각을 여전히 한다. 자연의 섭리에 맞게 겨우내 뿌리를 감싸고 있는 구근을 저온의 상태로 건조하다가 다시 심어 끝내 한철 꽃을 피워내는 것이다. 이 히아신스라는 꽃은. 그러니 못내 아쉽다. 조금만 더 오랫동안, 딱 한 계절이라도 온전히 이 싱그러운 색채로 만발할 수 있다면. 왜 이토록 화려한 시절은 찰나 같은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다. 


이 꽃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 속에 내 무의식의 욕망이 그대로 투영된 탓일거다. 꼭 전 생애가 인생의 절정을 향해 수렴되는 것과 같은 드라마적 전개가 한 인간의 생과 꼭 닮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전근대적 인생관 같은 것 말이다. 식물에 입장에 서서 온통 성장의 과정으로, 살아내는 과정으로 생동하는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다.       

왼쪽은 히아신스와 같은 구근식물인 "튤립", 오늘 드디어 꽃망울이 올라와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내 발이 문제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