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소설 - 대자연 ④
덜컥하고 등 뒤에서 문이 닫히고 낯익은 냄새가 수인의 후각을 덮쳐왔다. 질고 마르기를 오랜시간 반복한 후 드디어 바짝 말라버린 흙냄새. 아니면 풀을 잔뜩 머금은 도배지 냄새 같기도 했다. 서울 외곽 열댓평 남짓한 미진의 빌라에 들어서면 풍겨오던 친숙한 냄새였다. 은은하지만 강력하고 확고한 정체성이 묻어나 꼭 미진에게 안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냄새. 어느 샌가 익숙해져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그것이었다. 수인은 긴장했던 어깨가 축하고 늘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수인은 한동안 그 냄새의 발원지가 미진의 작은 서재방의 두 면과 거실 한쪽면을 가득 매우고 있는 책장의 책무더기에서 풍겨오는 것일거라 짐작했다. 미진의 초대를 받아 그의 공간을 처음 방문했을 때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은은하게 밀려오던 고유한 집냄새, 거기에 더해 거실 벽면 규격에 맞춰 꽉 들어찬 책장과 그곳에 빼곡하게 들어찬 책들이 시각을 사로잡았는데, 이러한 오감에 의거하여 수인은 이 냄새가 책냄새라 확신했다. 그리고 현관과 직선으로 마주보고 있는 화장실 안쪽 깊숙한 곳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도록 늦은 오후 지는 해의 붉은 볕이 거실 커튼을 투과해 부엌 깊이 까지 치달아 서향의 공간 전체를 은은한 붉은 빛으로 물들어놓은 그 무드에 압도된 듯 수인은 미진의 깊은 속 내부로 바로 동기화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후각과 시각, 공감각의 동시적 반응으로 부지불식간에 압도되어 수인은 그렇게 미진의 공간으로 초대되었다.
한편, 뒤죽박죽 꽂혀있는 서재방의 그것들과 달리 거실의 책들은 책장 끝에 맞춰 제법 가지런하게 꽂혀 있었는데 수인은 매번 미진의 집에 올 때마다 그가 부엌에서 무언가를 준비하는 동안 뒷짐을 지고 서서 거실의 그것들을 들여다보곤 했다. 책들의 위치가 매번 뒤바뀌어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하며 몇 개의 책들은 제목을 작은 소리 내 읽어보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애써 책의 위치나 제목을 기억해두는 것도 아니었다. 어쩌다 책장 가까이 코를 가져다대면 나무껍질 냄새가 났고, 똥손이라 식물을 키우지 못한다는 미진이 식물 대신 나무를 키우고 있는 것이라 수인은 종종 생각했다. 미진의 일관된 취향으로 선별되어 꽂혀있는 책들은 대체로 인문, 사회과학 서적들이었고, 수인이 알만하다 싶은 책은 신영복 선생의 수필집이나 유서 깊은 출판사의 간행물 정도 였다. 언젠가 미진이 부엌에서 그 모습을 힐끗 보다 금서였던 책도 있다며 세상이 좋아진 것인지 이제 그런 걸 버젓이 거실 책장에 꽂아 두기도 한다고 구시렁거렸다.
수인이 미진을 처음 본 건, 집근처 지역 생협 매장에서였다. 다른 건 몰라도 두부, 우유, 계란 만은 일반 마트에서 사지 말라는 엄마의 당부에 따라 수인이 이 주에 한 번 꼴로 찾는 매장이었다. 수인은 따로 조합 가입을 하지 않고 엄마의 회원번호를 공유해 이용하고 있었고 영영 조합원은 못 되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이유는 계란 값이 대형마트의 그것에 비해 배 이상 비쌌기 때문이었다. 수인은 이곳에서 장을 볼 때 마다 15구짜리 계란포장재를 주물럭 대며 비싼 가격에 놀라 다음번엔 그냥 싼 마트 계란을 사먹고 말겠다고 무시로 생각했고 우유나 두부를 살때는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아 15~20% 할인된 가격에 파는 걸 부러 찾아 샀다. 그러면서 생활협동조합이라는 곳이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에 이토록 반해서야 쓰겠느냐고 속으로 이죽이곤 했던 것이다. 수인과 미진이 첫 대면의 순간은 엄마의 다급한 요청으로 1인당 400그램씩 3봉지로 제한된 고춧가루 구매를 위해 생협 매장을 찾은 날이었다. 이날 고춧가루는 전면부 창측으로 바닥에 깔린 목재 위에 낮게 진열되어 있었고 오전 시간을 내어 찾은 수인의 눈에도 왜인지 지금 집어들지 않으면 안 될 것 처럼 매대 바닥이 훤히 드러나도록 재고가 얼마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5월에도 김치를 담그나. 수인은 이 고춧가루 파동의 매커니즘에 대해 잠깐 생각했고, 오픈런에 성공한 사람처럼 400그램이라고 봉지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고 엄마의 지령대로 고춧가루 3봉지를 장바구니에 얼른 집어 담고는 다른 날과 다름 없이 매장의 바깥쪽 동선을 빙둘러 유제품이 진열된 냉장고 쪽으로 가 우유와 두부의 포장재를 기웃거리며 살폈다. 예상대로 오전이라서 그런지 할인된 상품이 없는 걸 확인하고 볼 일 없다는 듯 지나쳐 냉동고에서 얼음식혜 하나를 장바구니에 추가한 후 그대로 계산대로 가 장바구니를 올려놓았을 때 계산대 너머 직원이 매뉴얼처럼 번호 먼저 눌러주세요 하고 말을 건냈다. 수인이 직원의 요청에 따라 자연스럽게 엄마의 전화번호를 키보드에 꾹꾹 누르고 있을 때 이 매장을 방문한 이후 처음으로 매뉴얼과 다른 이야기를 건네 들었고 그것도 다 이 고춧가루에 관한 것이었다.
“어유. 요즘 난리예요. 오늘 잘 나오신거예요. 저 물량 끝나고 나면 언제 들어올지 기약 없었을 걸요”
순간 수인은 직원의 연이은 말에 무어라 답을 해야할지 몰라 막막해졌다. 자신에겐 이와 관련된 매뉴얼이 없었다. 상대의 비상한 언행에 조응할 수 있을 만큼 관련된 정보도 없었고 저간의 정황에도 무지한 상태였다. 지금의 이 파동이 자신과 무관하게 여겨지는데다 이 고춧가루의 쓰임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세상물정 모르고 살며 세상이 유독 나에게만 왜 더없이 따뜻한 것인지 단 한번의 질문도 품어보지 않은, 빠짝 마른 새하얀 벽지에 세트로 맞춘 책상과 침대가 배치된 자신만의 방을 가진 친구를 보면서 저렇게 한번만 살아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자신을 대신해 여전히 맹렬하게 먹고사느즘에 매몰되어 사는 엄마에게 의탁해 강팍해지고 있는 현실에 비켜설 수 있는 자신이 지금 이순간 비정하게 느껴지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제가 운이 좋았네요”
수인은 둘러대 듯 말했지만 문득 그것은 진심에 가까운 말처럼 들렸고 말과 말 사이 정적을 메우는 바코드 찍는 소리만 삑삑 공허히 울리는 것을 무심하게 듣게 되었다. 상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리고 뭔가 잘못된 듯 포스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계산대 너머 직원이 건넨 말에 수인은 순간 아차 하는 감각을 느꼈다. 전산상 해당 조합원 명의로 제한된 물품의 구매이력이 있어 더이상의 구매가 어렵다는 직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엄마의 회원번호를 자신이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었다. 직원의 차분하고 친절한 설명에도 수인은 그만 귀까지 빨개져 어찌할 줄 모르고, 아 잠시만요를 반복하다 계산대 여기저기에 부려 놓은 물품들을 정리할 새 없이 매장 밖으로 나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고 속절없이 울컥 하고 짜증이 올라오는 걸 누르느라 온 힘을 써야했다.
매장 앞에 선 수인이 짜증 섞인 얼굴로 수화기 너머 엄마의 말을 간신히 듣고 있는데, 상대의 난감함에 아랑곳 없이 절인배추 10키로를 주문해둔 걸 어쩌냐, 고춧가루 수급이 이렇게 안 될 줄 누가 알았겠냐느니, 그게 그렇게 전산에 찍혀있드냐, 사람이 다른데 그래도 팔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혼잣말 같은 것이었다. 이 참에 너도 조합원에 가입하라는 엄마의 말에는 수인도 어쩔 도리 없이 팩하고 쏘아붙이고 말았는데, 무슨 조합을 그렇게 쉽게 가입하느냐, 꼴랑 가족 셋이 먹는데 김장하느라 고생하지 말고 그냥 사먹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전화 통화를 끊고 수인은 곧바로 마지막 문장은 내뱉지 말 걸 같은 후회 비슷한 걸 했고 영 풀리지 않는 속을 끓이며 그 놈의 고춧가루가 눈에 밟혀 쉬이 매장 앞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언제부터 통화를 듣고 있었는지 알 길 없는 누군가 “저기요”라고 조심스럽게 수인을 부른 것이었다. 주변에 사람이 있을 것이라 예상을 하지 못한 수인이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세월에 저항하듯 머리를 파랗게 염색한 중년의 여성이 매장 앞 어닝의 색인지 색이 들어간 안경을 낀 것인지 온통 분홍색 렌즈 너머 짙은 쌍까풀진 커다란 눈망울로 상대를 꿰뚫듯 수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진이었다. 수인은 순간 숨기고 싶은 뭔가를 들킨 사람처럼 흠칫 뒤로 물러나다 멈춰 서, 당황했는지 마음처럼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입모양으로만 저요 하고 가슴에 손을 얹고 물었다. 그때 미진이 굳은 얼굴에 살짝 입꼬리만을 올리며 말했다.
“이 나이 먹도록 철이 안들어서 여직 시골 사는 고모가 담가주는 김치 먹고 살아요. 안 그렇게 보이겠지만 입맛은 또 까탈스러서 다른 김치는 못 먹거든요”
난데없는 전개였고 상대도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할지 영 감을 못잡은 눈치였다. 둘은 모두 서로의 인기척에 당황해하는 중이었고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팽팽해진 공기의 흐름을 바꿔보고자 자신을 한층 낮추며 상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걸 수인도 모를 수 없었다. 호의를 호의로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상대를 보면서도 수인은 아까보다 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우두커니 선 꼴이었다.
“저는 고춧가루 살 일 없어서요. 제 회원번호로 사시는 것 어때요? 이럴 때 상부상조 하라고 이런 데 다니는 거니까 부담 갖지 않으셔도 되요”
딸 둘만 덜렁 데리고 맨 몸으로 이혼한 젊은 엄마와 그 젊은 엄마의 짐짝처럼 스스로를 여기며 살아온 언니, 짐이란 짐은 다 이고 짊어진 것처럼 이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 안달인 채로 사춘기를 보냈지만 정작 그 자체로 두 사람의 짐이고 말았던 수인까지 여자 셋이 살면서 남에 가까운 먼 친척에서부터 말하기 좋아하는 동네이웃들에게까지 이만하면 퍽 괜찮은 축이라 종종 그들의 자존을 확인하게 하는 비교대상군으로써 동정인지 멸시인지를 자주 마주하며 살아왔지만, 그렇다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도움을 청해본 일도, 청하지 않은 도움을 받아본 기억은 더더욱 뇌리에 남아있지 않는 영 딴세상의 일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그 모든 아는 이들로부터 자신을 떼어놓고자 애썼고 그건 자의와 타의 모든 면에서 퍽 간편한 일이었다. 그런데 상부상조라니. 현세에서 사라진 유물 처럼 교과서에서나 보던 말 같았다. 시골 사는 고모에게서 김치를 먹는 그리하여 김치를 담구지 않아 많은 양의 고춧가루가 필요 없다는 상대가 막상 본론을 꺼냈을 때 여전히 갈피를 못잡고 선 수인은 명치끝에서부터 불쑥 반발심이 목구멍 너머로 올라오는 걸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억누르고 있었다. 도움을 주겠다 자청한 이가 눈 앞에 나선 이상 이에 대한 반감이 드러날수록 자신만 더 초라해진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좋다 싫다의 양단간의 것이었고, 협소해진 운신의 폭 안에서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란 실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었다. 난 필요한 것이 있고 상대는 그것을 나에게 주고 심리적 편익을 얻는 것이다. 세상이 자신에게 종종 가혹하다는 생각을 이따금씩 해왔을 뿐, 자기연민에 빠져 살지 않았다는 것은 수인이 자신에 대하여 자랑처럼 여긴 것이었다. 불우했지만 그 경험 속에서 알게 된 것이라면, 자신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는 요령같은 것을 체득하는 거였다. 기꺼이 받자. 기꺼이.
“.. 그래도 될까요?”
견고할 것만 같던 빗장이 풀리고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제안이 받아들여지자 분홍빛 띈 렌즈 안쪽의 쌍꺼풀 진 커다란 눈이 껌뻑 거렸다. 무안당할지 몰라 긴장한 듯 포개고 있던 상대의 양 손이 풀리며 그 중 왼손이 쑥 수인 쪽으로 향해 오더니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는 듯 손짓했다. 수인이 고개를 끄덕이고 두사람이 매장 안으로 들어설 때 도로록 하며 매장의 자동문이 열렸고 상대가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돌아서 말했다.
“나는 미진이에요. 전미진”
삽입된 사진은 여행 중 찍었던 사진들로, 대체로 특정 기간 한 지역에 머물며 오가던 여행자의 마음으로 찍었던 사진들을 삽입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