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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09. 2023

무진으로부터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1)  

평일 오후 3시 10분 서울행 일반버스. 순천에서 서울로 가는 가장 저렴한 교통수단. 옆 칸은 비어진 채다. 앞뒤좌우 그 어느 방향으로도 프리미엄이나 우등의 좌석넓이에는 비할 바 안되지만 이동시간에 차이가 없고 빈 옆좌석까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 혼자갈 때는 언제나 이것을 이용한다. 고된 시간 뒤의 지친 귀경이 아닌 것도 이 버스를 택하는 이유 중 하나다. 그나저나 옆칸이 비어가는 이유는 순천행에 동행자가 다른 일정으로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다른 승객들이 반 이상 비어가는 버스에 옆자리 동승자가 있는 좌석을 굳이 선택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홀로 앉은 차 안 4시간에 가까운 이동시간 동안 나는 대게 차장 밖으로 시선이 팔린다. 잠도 오지 않고 책도 읽지 않으며 음악선별과 간간히 오는 문자에 회신하는 것 외에 핸드폰도 잘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다. 그 시각 모래먼지가 섞여 뿌연 물때 낀 차장 너머 나에게서 한없이 멀어지는 하늘끝과 맞닿은 녹음 짙은 너른 숲 그리고 두더지팡팡게임의 그 두더지처럼 대중없이 여기저기로 튀어 오르는 산이 왼쪽 방향으로 느리게 한참을 흘러간다. 녹음과 녹음 사이, 시야의 정중앙으로 좁아지는 실개천은 근처 논밭에 물을 댈 준비를 하고 괴괴하게 고여있다. 저녁으로 이슥해지는 한적한 농촌의 풍경이 구식 영상기기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중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은 비온 뒤 고인물까지 더해 풍성하게 차오른 논 물 위로 누런 낙조가 풍년의 황금물결 처럼 예사롭게 일렁이는 장면이다. 텅 빈 논 가운데 세워진 비닐하우스 표면 위도 노랗게 일렁거린다. 그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히익 이쁘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차창 밖 풍경에 온 정신이 팔렸다가 눈깜짝할 새인 것처럼 만남의광장 표지판이 눈에 들어와 보이고 엘지전자빌딩과 관악산 사이로 해가 느리게 사라지며 산의 몸체는 온통 검은데 산등성이 위로 따뜻한 노란 빛의 파장이 활활거리며 산란할 무렵 그 검은 산 너머에서 꼭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가서 그런 마음으로 살그라”

 

눈 앞 변함없이 우뚝선 것들에 감탄하며 시시각각 홀연히 색을 바꾸는 미세한 변화에 마음 살랑거리며 내 발 아래 딛고선 그곳을 부정하지 않고 낙천의 태도로 불굴의 마음을 다지고 비로소 얻은 낙관의 시야로 내가 세운 작은 세계에 가만히 서서 온기 어린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볼 줄 아는. 그런 마음으로, 살아라. 그런 마음으로.


그건 아마도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방학기간 오로지 일방의 돌봄을 한없이 수행했던 시골할머니의 그 집과 동네에서 말초신경만 곤두세우고 보내던 시간 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지만 사실 나에게 남겨졌을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사실 나의 기억 속 내내 치매를 앓고 있던, 살아계신 동안에도 꼭 정지상태로 수렴되고 있는 것 같아 보였던 그녀는 어쩌면 가족을 흔드는 축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엄밀히는 나는 미처 알 기회조차 갖지 못한 경험, 그러므로 나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며 갈망해왔던 어떤 세계와 감동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순간 나는 병 중 어떻게 매번 그렇게 단정히 머리를 쪽지고 계셨는지 알 수 없는 나의 친할머니를 떠올리고 있다.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다정한 모습으로. 어린 아이처럼 해사하게 놀다 돌아가는 순간으로 기억을 각색하고.


그런 매음으로, 살그라. 그런 맴으로. 느요크 자취생 유터븐지 뭐 시긴지 그랑거 보덜 말고.(영어공부하느라 보는건데요) 영어공부는 뭐더러 한다냐.(...)


아니 그건 나의 상상 속 상징의 존재가 보내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실제하는 어떤 풍경으로부터, 축적된 기억으로부터 온 것일거다.              


최근까지도 나를 뒤흔들던 과거 그곳의 시간보다 이곳의 시간이 더 길어져 이제 잔잔한 파동으로 남은 기억을 안고 불현듯 그곳으로 돌아가 웅크린 어깨로 숨어들던 청소년기의 일원공원에 서서 웅장하게 자란 나무들을 올려다보며 20여년이란 세월을 가늠해보던 마음으로, 순천의 구시가지들을 걷던 중 맞닥트린 공원마다 300년? 500년쯤? 되어야 이만해지려나 이런 생각하던 순간과.

빗 속 별 수 없이 시내를 걷다가 우산을 들어 물이 똑똑 떨어지는 살 끝을 올려다보면 낮은 지붕위로 하늘 이라기 보다 탁한 구름 아래 짙은 녹색의 산이 운무를 뿜어대며 어디선가 불쑥 산신령이 튀어나올 것 같은 진귀한 풍경에 맥없이 멈춰서 좌우를 둘러보던 시간과.   

동네 한가운데 한뼘 높이만큼 솟아있는 십자가 아래 낮게 임하고 있는 작은 땅의 사람들에게 기꺼이 심중의 평화를 염원하는 하얀 성모마리아를 우러르며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과.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파실려면 복지리집이라는 간판과 메뉴판은 왜 붙여놨을까 싶은 식당에서 제철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한상 차려내온 밥상에다 방앗잎을 좋아한다는 서울손님에게 방앗잎과 홍합을 다져넣은 전까지 부쳐내오는 어느 사장님의 품과. 방앗잎 향과. 풍미와.

우리 숙소 앞 정원은 누가 가꾸나 걱정만 하던 그 날 아침 노란조끼 맞춰입은 어르신들이 벽돌도보길에 쭈그려앉아 내 눈엔 보이지도 않는 잡초들을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열중하며 정리하던 걸 목격하고는 꼭 이유를 알게 된 것만 같았던 그 단정한 골목으로부터. 이 천혜와 같은 자연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살아가는, 그리하여 온마을 사람들이 구경오는 동네의, 도통 마주치기 어려웠던 그곳 주민들의 자부심으로부터. 순천의 시민활동가로 청춘을 보내고 있는, 자식을 낳아도 꼭 이 동네에서 키우겠다는 당찬 포부가 담긴 청년활동가의 가볍지 않았던 책으로부터.           


그런 마음으로, 살아라. 그런 마음으로.


어쩌면 나에게만 있을 가상공간 그 곳, 무진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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