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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15. 2023

가까운 미래를 조망해보는 감각기관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4)

다음의 순천일정은 잠정 5월 27일부터 6월 7일까지로 잡았다. 채 2주가 되지 않는 12일간의 일정으로 두번째 순천 방문의 체류 기간과 같은 숫자다.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다음의 순천일정을 짜왔고, 지난 8일 순천에서 돌아오고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왜인지 특히 더 아쉬운 마음으로(요며칠 날씨 또한 화사하므로 더더욱) 남편을 닥달하여 다음의 순천일정을 미리 잡은 것인데, 그의 미확정 서울 일정을 체크하느라 다소 늦어진 것이었다. 때마침 나에게도 우연치고는 기막히다 싶은, 전북과 전남 등지의 일거리가 생겨 남편 일정만이 아니라 나의 일정까지 두루 체크해야 했고, 결과적으로 원만한 합의에 이르러 결정된 것이다. 새로 생긴 두가지 일거리는 지인의 제안으로 하게 된 것이고, 유휴부지 활용을 위한 연구 프로젝트들로, 하나는 새로 짓는 것이고 하나는 폐교를 활용한 모델로 재조정하는 것이며, 연구의 기초가 될 사례지 탐방일정으로 의뢰지 외에도 6,7월에는 제주, 충북 등을 두루 다니게 될 것이지만 대게는 서울과 순천을 거점으로 전주와 해남을 오가게 될 예정이다. 이 와중에 이쯤되면 장롱면허를 탈피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탑리더의 심심한 조언이 있었다. 아마도 순천에서 해남까지의 이동 때문일거고 나는 지난 순천방문 때 순천에서 전주로 2량짜리 열차를 타고 이동했던 선행경험 때문인지 근거 없는 자신으로 꽤 충만해진 나의 감으로는 해남도 어렵지 않을 것이란 기대와 더불어 그건 그때가 생각해보지머 하며 미리 걱정하는 일을 살그머니 미뤄두고 있는 중이다.  


그러고보니 향후 3~4개월간의 활동을 조망해보는 일이 퍽 오랜만이란 생각이 든다. 간헐적 순천살이라는 변수가 보태진 까닭일테다. 눈 앞의 먹고살거리도 막막하면서 까마득히 먼 미래의 노후 걱정까지 미리 끌고와 불안을 자초하는 일은 요새 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당장 내일의 계획과 기대가 크게 없는 생활도 다소 지루한 것이었다. 오늘의 마음상태는 어떤지, 평화로운지 혹여 우울한 건 아닌지, 나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를 주변에 두고 있지는 않은지 등을 점검하던 감각의 순간들, 어쩐지 더욱 좁은 공간 안으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시간일 거였다. 주변의 동료과 친구, 가족의 배려로, 때때로 등떠민 여행 중으로 간신히 타인의 시간과 연결되어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나에게로만 온전히 꽂혀있던 시야를 일부 거둬 나를 둘러싼 바깥을 조망하는 감각기관으로 일깨운다.


돌아보면 나는 종종 무언가를 타진할 때 아쉬울 것이 없다는 취지로 미련이 없다는 말을 꽤 자주 했던 것 같다. 그건 파국의 결말까지 염두를 해두고 있다는 선전포고 같은 것이며 협상의 상대자를 사실상 위협하기 위해 배수의 진 같은 것을 치는 것이기도 한데, 이건 내가 끼어있는 협상과 조율의 관계를 이기고 지고의 게임처럼 생각하기 때문일 거였다. 두루 고려해야할 조건과 상황과 변수가 있다는 건 때로 삶의 원동력이 되고 나에게 정직해지는 것이며 나만큼이나 상대에게도 고려해야할 조건과 상황과 변수를 알아채고 존중해줄 수 있어야 비로소 대화테이블에 앉을 자격이 생기는 것일거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데 이제 슬슬 좀 굴러볼 때가 되었을라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사막 한가운데 돌들도 서로를 향해 다가가려고 노력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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