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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13. 2023

새 것을 놓기 위한 빈자리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3)

그 카톡방의 한 언니는 한동안 자기집을 뒤집어 놓았다. 사직을 하고 한 달은 국내여행을 다녔고 그러고 삼개월 동안은 집꾸미기에 전념을 다하는 것 같았다. 30평 빌라에 세식구가 사는 그 집에는 물건이 많았다. 언니는 몇날 며칠을 안입는 옷, 시기가 지난 장난감,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오래된 가구와 장식품, 쓰지 않는 잡동사니들을 골라 내다버렸다고 했다. 그래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맥시멀리스트 언니의 집은 언제나 물건으로 가득 차보이긴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집에 가보면 거실과 현관 사이 간살형태의 가벽이 세워져 있었고, 나는 우드간살을 보면서 "센스있는 초이스"라고 감탄을 보였다. 그리고 또 얼마 뒤엔 3인용 소파와 장식장 등의 새가구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고, 그때는 "소파 너무 크지 않아서 좋아. 여백이 느껴져"라고 했지만 그리고 또 얼마 뒤엔 거실 한 벽을 메우는 수납력 좋아보이는 새TV다이와 새테이블이 소파 앞으로 놓여져 있었다. 그렇게 가구배치 마저 완전히 달라져 보였을 때는 "언니 몸살 나겠어. 무슨 집안일도 일처럼 해~"라고 말했고 언니는 내 말에 아랑곳없이 이제 방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살살 하라는 걱정반, 진짜 언니 지금 괜찮은거냐고 안부를 묻는 것 반으로 한 말이었지만 사실 언니가 그래야 이 시기를 지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한편으로 나처럼 무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인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나도 집안 분위기를 바꿔볼까 했지만 나야말로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고 몇 달 언니는 더이상 집꾸미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사직 1년이 넘어가고 있는 현재 시점 언니는 자기계발서를 필사중이다. 한국사회 노동력과 생산 가능 인구에서 한시도 벗어나지 않기 위한 언니의 노력, 그건 간혹 내 자신이 퍽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과 닮았으나 전혀 다른 방식의 문제해결력이었다.


나는 마지막 퇴사 이후 3년 동안, 코로나19가 득세하는 와중에도, 내가 대다수의 시간을 머무는 집 내부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지냈다. 이 집에 이사올 때 손을 보고 오기도 했고 그때 들인 몇가지 새가구들이 여전히 새 것을 뽐내고 있기도 해서였는데, 엄밀히는 변화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했고 경제적 빈곤함과 귀찮음 때문이 컸다. 누군가 걱정되어 주는 일을 수동적으로 받아 하고 일거리가 없으면 대게의 멍때리는 시간과 생명유지(반려식물 포함)를 위한 청결 및 영양보충에 매진하는 것만도 버거웠던 때였다.(고 하기엔 생명유지 이상 건강을 위한 운동도 꾸준히 한편이구나)


그러나 요즘 간간히 유튜브로 원룸 등을 셀프 인테리어 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을 보며 공간 변화를 상상해보고 있는 차다. (TV가 없는 순천생활 후 서울생활에서의 변화라면 유튜브 시청 시간이 는 것이고 확연하게 TV를 잘 키지 않는 것이다) 불현듯 그러고 싶어져서인데 이 역시 당장 시도해볼 엄두가 나는 것은 아니었으나, 어제 하필 내가 매일 사용하는 드롱기 커피메이커의 유리저그가 깨지는 바람에 새로운 커피메이커를 온라인으로 구매하게 되었고, 그 김에 유심히 봐두었던 제빵용 오븐기를 지르며 급하게 부엌을 정리하게 된 것이었다. 부엌 공간의 필요없는 것들과 오븐 놓을 자리에 있던 전자렌지 등을 바깥으로 옮기고 정리하며 새 것을 놓을 빈자리를 둘러보니 뿌듯해졌다. 지금은 거실과 서재를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다.(상상의 빈곤을 자주 느끼고.. 역시 유튜브선생님을 자주 만나야할 것 같다)


요즘은 작은 변화에도 주위가 자주 환기된다. 터널의 끝이 목전에 와있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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