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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17. 2023

어쨌든, 멀티풀라이프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5)

오늘 아침 브런치의 다른 스토리들을 살펴보다가 <혼자서 하드캐리 하고 있다는 착각(출처:아싸이트)>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후루룩 글을 읽고는 '아... 난데...' 하는 씁쓸한 탄식을 내뱉고 말았다. 염탐하듯 작가의 글 몇 개를 더 읽고 조용히 구독을 누르고 나왔다. 직작생활에 대한 글을 쓰는 이 작가의 어떤 게시글은 30만 조회수가 넘었다니 다들 얼마나 공감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긴 직장생활을 안한지 4년이 넘어가는 나도 '아 공감 공감' 이러는데 오죽하겠나. 하여간 나는 손뼉치며 내 얘기라고 공감하는 이 이야기에 감복이나 재미라기 보다 결국 탄식을 하고 말았는데, 그 이유는 "각자의 경계 밖에 모호하게 남겨진 잡다구레한 일들에 희생을 자초하며 맡은 일로 자신을 소진시키면서 일을 많이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있지 말고, 그런 일은 숙련도가 부족한 후배에게 넘기고 차라리 쉬면서 고차원적인 비전을 구상하라"는 그 단호하고 명쾌한 충고에 뼈를 맞은 것도 있지만, 이런 충고에 감복하며 끄덕끄덕하기엔 내 연차나 연배가 차고 넘쳤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나오는 실수 혹은 오류라는 것이 5에서 8년차 정도에나 할 법한 것이라는 것도 어쩜 나의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옛 일처럼 떠올리며 '맞어 그땐 나도 그랬지' 라고 추억하지도 못하는 건 지금도 그때의 감각이 남아있어서 일거다. 그나저나 프리랜서인 나는 왜 그때의 감각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걸까.


나는 요즘 오전과 오후, 저녁으로 나눠 프로젝트별로 자료를 찾고 읽는 대게의 일과 중에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을 듣고, 간간히 유튜브로 영상도 보고,

공사간의 연락을 주고 받고, 출장지 가는 방법을 검색하고,

약속과 미팅 장소를 물색하고 예약이 필요하다면 예약과 공지를 하고,  

토스 미션도 하고(요새 토스는 왜 이렇게 또 할 게 많은지), 캐시워크 퀴즈도 풀고,

점심과 저녁메뉴를 고민하고, 여름장마 걱정을 하고,

요며칠 택배주문이 늘어 시도때도 없이 들이닥치는 택배들을 정리하고,

수동으로 입금처리해야 하는 공과금들을 처리하고,

여름이불로 교체하고 이불을 빨고 널고 개고 넣고,

빨래를 돌리고 널고 개고, 바닥을 닦고,  

만보를 걷고, 저녁 먹고 40분간의 홈트를 하고,

책도 읽고 개인 글쓰기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등등등.


왜인지 나는 여전히 산만하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근데, 이게 전적으로 다소간 급한 성미의 내 성질의 문제 라고만 하면 조금 억울해지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아싸이트 님'의 말을 빌리자면, 규모 작은 회사에서 1인이 할 수 있는 한 많은 양의 일을 처리하면 그 자체로 퍼포먼스가 될 수 있지만 100명이 넘어가는 조직에서는 101명의 몫을 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에는 조금 위로가 되기도 했다. 대게 30인 미만의 소위 중소규모의 단체나 기관에서 일을 해왔고 한사람의 몫 이상을 해야 현상유지가 될까말까한 정치적으로나 경영적으로나 붙임 많은 곳에서 일을 해왔기 때문이라는 나를 위한 해석을 하면서다. 그렇다 내가 있었던 직장에서는 한꺼번에 많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 하드캐리를 하는 곳이었다. 분명 그때는 착각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조직생활 중엔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던, 이 자가발전형 인정투쟁의 습관이 이토록 깊이 인이 박혀있나 싶기도 했다.(계속 남 탓을 하자면) 하여간 자는 시간 빼고 내 마음껏 운용가능한 텅 빈 시간으로 가득찬 나같은 프리랜서에게도, 아니 사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효율적인 일처리와 우선순위에 맞춘 시간배분이 무척이나 중요하고, 그래서 나름의 기준에 따라 주요하게 배치된 공무들 가운데 쪼개듯 개인적인 일거리들을 처리하고 있는데, 공사의 경계가 모호하진 않지만 다만 잊지 않고 처리해야하는 잔일거리들을 빨리 처리하고 싶은 마음의 조급으로 대체로는 평타(이상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의 결과 속에 속전속결과 다량의 일처리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한편으로 자괴감이 안드는 것도 아닌데, 그건 일종의 주인 없는 노예근성으로 현타가 올 때다. 뼈때리는 말에 진짜 명치 끝이 아플 때도. 여전히 정신없이 하루를 채우고 나야 아 나 오늘 꽤 생산적인 하루를 보냈구나 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눈 앞에서 꼭 토스 미션을 놓친 것 마냥 아까운 시간을 땅바닥에서 흘려버렸구나 하는 기분이 들고 만다. 스스로의 쓸모를 왜 고달픈 하루로 입증해내고 싶은 것인지. 이게 다 나 자신을 속이는 자기위안 같은 걸거다. 누가 쫒아오는 것도 아닌데, 누가 평가하고 있는 것도 아닌데, 잠시 미뤄나도 되는데, 급한 일도 아닌데, 뭐 하나에 푹 집중해봐도 되는데, 더불어 이젠 나에게 삶의 방식과 방법에 대하여 이렇다하게 잔소리를 하거나 조언을 해주는 권위자나 보호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현타가 올 땐 그저 맞는 것이고 어쩔 도리가 없기도 하다가도, 훌쩍 순천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올라온다. 그러고보니 나에겐 도망칠 곳이 있다. 그리고 이게 퍽 큰 위로가 된다. 누구말마따나 믿음과 같은 단단한 착각 속에 어쨌거나 도로 멀티플라이프.  

그리고, 어떤 착각에서 벗어나 재각성될 장소가 있다.(왜인지 아주 잘못 살아온 건 아니라는 작은 위안도)  


그러므로, 소도시 생활을 병행하는 지금의 시절을 언젠가 되돌아보면 나의 존재가치를 알맞게 찾아나가는 과정 중이었다고 격하게 공감하게 되는 날도 있을거다. 40대 중반으로 가고 있는 지금에도 내 멋대로 살아도 된다는 폭넓은 자유와 무엇이 되어도 안되어도 된다는 열린 결말과 가능성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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