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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20. 2023

명랑함을 잃지 않기 위한 지속가능성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6)

내 지난 조직생활의 주요 실패 요인에 대하여 한동안 꽤 곱씹었던 적이 있었다. 나는 이 경험을 실패라 단정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직 직후 무력감에 시달렸고, 물리적 공간을 포함해 그 경험의 무형 관계 자원까지 멀리하고 싶은, 너무나도 명징한 상흔이 삶의 감각 구석구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 실패한 것이었구나 하고 금방 인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아, 곧바로, 얼른, 나 자신에게 '실패' 라는 낙인을 찍고 격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인정하기 전보다 훨씬 더 깊은 무력감과 열패감에 시달렸던 것도 같다. 고요에 단계에서는 그 깊이의 층위가 왜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것인지. 꼭 늪 안으로 느리게 깊어지는 것처럼 벗어나려는 몸부림도 없는 내 몸이 바닥아래로 천천히 가라앉는 걸 내둥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내가 사회생활에 부적합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상처받았다는 걸 실패했다는 사실 보다 더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고, 그게 나약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부적합한 사람이라 연결짓고, 스스로를 돌볼 줄 몰랐던 것,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줄도 몰랐다는 걸 오랜,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달았다.(깨닫는 중이기도)


감정을 돌보아야 할 시기에도 다만 문제해결을 위해 문제여부를 판단하고 그 성질과 형태 등을 파악하려 했던 건 다시는 이런 너저분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나를 매몰시키고 싶지 않은, 나름의 발전적 고민의 연장선 같은 것이었겠지만, 그건 퍽 무용한 것이었구나 하고 이제와 씁쓸하게 웃으며 꼽씹는 중이다. 인간관계란 똥통에서 수영하는 것이란 어느 작가의 글귀를 다시 한 번 복기하며. 그래. 원래 사는 건 너저분한 것이다. 씁쓸함은 나를 더 돌보는 데 신경을 썼다면 터널 속 시간이 조금은 짧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으로 드는 것이다.  

 

하여간, 지금도 여전히 '실패'라 규정하는 그 경험에서, 그 실패의 면적을 사회생활도 아니고 직장생활도 아닌 조직생활이라고 축소해 받아들이고 있는데,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의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문제였던 것이 아닌 것으로 그 비중이 작아진 탓이 사실 크다. 나의 많은 기능을 불능으로 만들 것 같았던 지난 날의 고통이 손등에 작게 흉진 것처럼 아물어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의 괴로움이 무색하게 원래도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르는 아주 작은 흉터가 되었다. 최근 나는 정치적 풍랑이 있는 조직엔 안 맞는 것 같다는 말도 고쳐서 그냥 조직생활이라고 통칭하고 있는데, 내가 있었던 조직이 대단히 특수한 곳도 아니었다고 생각을 고쳐먹은 까닭이다. 그래. 어디든 다 그렇다. 직장생활이라는 것도 업무수행 능력과 맡은 바 책임의식 있으면 평균 이상일테고. (그렇담 나는 뭐, 과락은 결코 아니지)   


결과적으로 나에게 남겨진 숙제는, 결국 사회관계 질서 내 상하좌우 협력관계와 우애를 잘 맺어가는 것인데.. 아 여전히 이는 퍽 어려운 일이다. 이 길은 우회로 밖에 보이질 않는다. 다종다기한 타인과 자아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하게 하는 어떤 태도를 견지하는(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일거였다. 그건 똥통 속에서도 종종 유쾌함을 떠올리고 그것을 영영 잃어버리지 않는 것.(사실 .. 마흔을 넘기고 보니 뭐 그렇게 재밌는 일이 있지도 않아 참 쉽지 않지만) 그래서 나는 내 실패 경험을 진단하며 가장 주요한 과제로 일생활의 불균형해소를 꼽았다. 나는 타인의 기대를 훨씬 상회하여 충족하고 싶은 욕구가 여전히 있고 이게 과도해지면 스스로 화마 속에 뛰어드는 것과 같은 결과로 드러나기 때문에, 파동이 위험 선을 넘지 않도록 기제를 만들어놓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구덩이 속으로 매몰되지 않도록 다른 곳으로 관심을 빼는 것이기도 하고, 그보다는 건강한 일상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다. 아직 자료를 서치 하는 단계이지만 하지 않던 메모까지 해가며 개인시간을 하루 중 비중있게 담아보려고 노력중인데, 그 계획의 5분의 3정도를 겨우겨우 지켜내고 있다.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며.  


원래 다이어트 같은 걸 할 때는 주변에 알리는 거라고. 그래서 주변에 고백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근 시작한 프로젝트팀에게는 글쓰기, 산책, 홈트와 같은 개인적 시간을 꼼꼼히 사수하며 일을 병행하는 게 이번 프로젝트에 내 핵심 목표라고 고백했다. 멤버들이 멋진 계획이라고 응원해주어 뿌듯했고, 이 단편적 기분에 취해 여기저기 낯간지러운 고백중이다. 내가 애정하는 자매들이 있는 카톡방에 갑자기 요새 나의 감정을 난데없고 두서없이, 구구절절 굉장히 서툰 언어와 어색한 표현법으로 설명한다거나. 그리고 어제는 오랫동안 연락을 안했던 지난 동료에게 꿈에 너가 나왔다며 말을 건다던지.


그러니 관계들도 부지런히 복원중이다. 나의 용기라기 보다 상대의 넓은 이해와 아량으로 가능한 것임도 함께 깨달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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