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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23. 2023

땅의 끝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7)

"왜 땅끝마을이라고 했을까. 너무 멀어보이잖아"


그 시작부터 당췌 엄두가 나질 않는 말이었다. 이 좁은 땅에서 땅끝이라니. 땅끝.

이건 꼭 대륙전체로 볼 때 그 끝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범지구적 멘트같았다. 말을 더이상 이을 수 없도록 모든 단절을 의미하는 것과 같은 이 '끝'이라는 말이 왜 감히 가늠하지 못할 크기와, 인간의 의지로 상상하기 어려운 넓이로 연장되는 말 같이 느껴지는 것인지, 아마도 그 말은 '땅'이란 면의 전체에 해당하는 묵직한 단어가 그 앞에 붙어있어서인지도 몰랐다. 땅의 끝.  


Ttangkkeut 이라고 표기된, 이 고유명사와도 같은 두어절의 한 단어가 떡하니 적힌 표지판을 지나갈 땐 나도 모르게 침이 꼴깍하고 넘어갔다. 바다로 이어져 파도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하는 울퉁불퉁한 지형의 경계 위, 출장지가 아니라면 굳이, 아니 감히 와볼 상상조차 못했을 이 곳, 이 땅끝마을에 개인의 목적으로 온다면 과연 어떤 사유에서 일까를 상상하면서였다. 애써 들여다보지 않던 깊은 우울의 저 밑바닥까지 샅샅이 훑어보는 것처럼 꼭 그건 태초의 나의 민낯을 보는 일과도 같은 것이란 불온한 상상이었다.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몰아버리는 능동적 절망의 순간 끝내 끝에 도달해 수면 아래 켜켜히 이어진 터가 아닌 대지의 표면을 굳이 상상하게 될 때, 아마도 그건 죽고 싶다기 보다 몹시 살고 싶은 마음으로 그렇게 의지적으로 찾아와야 볼 수 있는 곳, 그곳이 이곳 아닐까 하는 그런 불온한 상상. 그래서 그저 드넓은 땅 한가운데 불쑥 나타난 표지판을 무심히 넘고는 그렇게 계속 논과 밭이 이어지는 광대한 풍경 가운데서도 나는 꼭 매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의 터널을 통과하는 것 같은,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열지 말아야할 문을 계속 여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심드렁하게 폐교를 둘러보던 군청 주무관이 꼭 주문을 외듯 말하는, 이곳은 온통 순례길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다는 그 형용모순의 말처럼, 이곳은 뭐든 나의 통제 가능 범위에서 내 의지적으로 살고 싶은 소시민성의 나를 계속 허우적대게 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나는 땅끝 해안도로 라는 표지판을 본 뒤부터 계속 이곳을 빠져나가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도시 기능이 멈춘 너른 땅을 수없이 지나치며 지방소멸의 문제를 안은 그 어떤 지역보다 더욱 소멸의 위기를 체감하는 순간순간에도 한편으로 마른 모래흙에 이끼처럼 달라붙어 꽃을 피우던 갯나팔꽃처럼 영영 소멸되지 않을 살아있는 땅이라는 기분도 동시에 느끼는 혼돈. 최후의 보루처럼 우뚝 서있는 교회 철탑과 이주노동자와 낚시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이마트24 편의점의 간판과 2018년까지 학생을 받았다는 어느 폐교의 잡초로 무성한 그러나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던 꽃밭의 운동장을 힘차게 걷고 있던 동네 주민으로부터 느꼈던 절망의 기분인지 희망의 기분인지 알 수 없었던 감정.


우뚝 솟은 도시는 통속적으로 말해 한창 총성 없는 전쟁 중인데 왜 전쟁 후 폐허와 같은 모습은 이 너른 땅 위인 것인지. 이건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혼돈의 상태로 빠지는 기분이 되는 곳이었다. 나같이 범상한 인간에겐 도저히 도달하기 어려운 아우라로 감당키 어려우면 얼른 이곳으로부터 멀리 도망가라고 호통을 치는 곳 같았다. 그곳 땅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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