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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26. 2023

따뜻한 말 들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8)

나의 30대, 그 시절의 나를 지탱하는 힘이 무엇이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이죽임과 시니컬함이었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 당시 둘째가라면 서러운, 시니컬의 대명사에 이죽임대마왕이었다. 주변 환경의 근본적 변화, 조직의 혁신, 사회적 진일보 등과는 무관한, 역설적으로 이건 일종의 마음삭힘용 또는 개인 사색과 명상을 위한 몸부림 같은 것이었고 당시 나에게 꽤나 유용했다. 열 번은 이죽이고나야 조금의 평정이 찾아왔으니 당시엔 이만한 극약처방이 없었다. 다시 앞의 앞의 문장으로 돌아가 반복해 설명한다면, 그러니까, 그건 내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내 힘으로 무엇도, 단 한 점도 변화하지 않을 것이란 무화적 상태에 대한 반작용같은 것이었고, 반대로 뭐 하나 바꿔내지 않으면 살아내기 힘든, 평화의 과정이 그리 평화적이지 않다고 믿는 나같은 비관론자에게 그리하여 절망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쓰이는 것이기도 했다. 하여간 덕분에, 적어도 그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고 견디는 힘이 된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중이다.           


그 시절 나의 주변엔 나만큼이나 둘째가라고 하면 서러운 무림의 고수들이 이 분야에 있어서만은 치열히 나와 경쟁했다. 그들은 내가 "에라이" 하면 "어쭈쭈" 하고, "참내" 라면 "체"라는 통쾌한 코웃음으로 응수하는 당시 나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친구들이었다. 돌아보면 유일하게 유쾌한 시간이었고, 너무나도 엄격하고 무례하고 독하고 잔인한 나의 모습만 동동 떠서 기억되는, 그래서 그 시절의 나를 지워버리고 싶기도 한 그런 양가적 감정이 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40대를 전후로 얼마간 관성적으로 알바를 했고 그 뒤 또 얼마간은 일도 거부하며 지낼 때는 소위 전우애가 불탔던 이 친구들과도 멀리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아마 하지 않아야 할 말까지 마구 쏟아내던 내 모습을 떠올리기 싫어서 였을 테지만 사실 정확히는 무엇을 멀리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고 거리를 두었던 것이고, 그래서 이건 어떤 무의식의 발로같은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이상하게 거절당하는 느낌을 받는 예민한 친구들이 때로 자신을 거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섭섭한 티를 냈고 이에 대하여 설명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구구절절해질 뿐 간결히 설명치 못하는 것을 보며 나 스스로도 이 거부반응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걸 알았다. 그저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대로. 다행스럽게도 영문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널리 이해해주는 분위기로 덕분에 여전히 교류하고 있다.  


최근에는 어느 지자체의 문학관 연구 프로젝트 사업 참여 제안이 있었다. 이 제안을 수락하게 된 배경에는 경제적 사정과 시간의 지남과 주제에 대한 관심 등 다양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무엇에 앞서 다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고, 요새 글을 쓰고 있는 통에 문학관이라는 말이 후루룩 나를 땡기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바람처럼 실제 리프레시가 되기도 하는데, 간헐적 순천살이로도 해소되지 않던, 여러 지역을 다니며 주어진 과제와 책임을 다해 의지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다양하게 생동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까닭이 클 거다. 그리고 예전에는 믿지 않았던 문장과 이야기의 힘 같은 걸 느끼기도 하면서 돌연 알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의 거부반응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인지. 어떤 작고 소소한 정성에 감화하면서. 문장의 힘이란 하고 감복하면서. 조사까지 애써서 발화된 문장과 말 한마디가 얼마나 깊게 상대에게 가닿는 것인지 깨달으며. 언젠가는 무심하게 지나쳤을 문장과 말에 반응하면서다. 그건 질기고 길게 꾸준히 그리고 단단한, 그 어떤 부드러운 의지 같기도 하다. 허투로 내뱉지 않고 꾹꾹 의지를 담은 한마디를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력한 '사랑'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일까. 사랑이라니.. 쩝. 하여간 나는 어느 문학관 전시에서 문장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서는 작고 소소하게 따뜻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이런 퍽 소중함 감정이라니 하며 변화란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저 각자의 마음일거다 그 변화라 느끼는 것은. 아마도 충실하게 누군가 싸준 굿즈에 마음이 더욱 좋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하여간 굿즈에 새겨진 문장까지 다 좋았다.    


그러니 그건 스스로도 나 참 별루다 했던 그것. 나를 불구덩이 속에서 꺼내놓고서도 여전히 그 불구덩이 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관성적으로 살기를 거부하는 마음. 이제 더이상 이죽임과 냉소의 힘으로 살고 싶지 않다고 거절하는 마음. 그러지 않기로 나를 강제로 멈추고 싶었던 마음. 같은 것이었다. 아마도 내가 멀리하고자 한 것이란. 나도 따뜻하고 이쁜 말 들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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