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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May 28. 2023

익스트림의 순천행, 중꺽마!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9)

오늘로 예정되었던 세 번째 순천행을 내일로 미뤘다. 이에 맞춰 서울행도 6월 8일로 하루 순연해 계획하고 있다. 애당초는 토요일에 가려던 계획이었으나 늦은 티케팅으로 마땅한 교통편을 찾지 못해 틀어지고 일요일에 가야겠다 마음먹고도 결국 내일로 미뤄진 것이다. 비 탓이라고 생각한, 어쩐지 이번 순천행이 선뜻 나서지지 않는 이유가 뭔가 잔뜩 숙제를 안고가는 기분이 들어서 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건 오늘 아침 아빠의 전화를 받고서였다. 현충일 그 즈음 연휴를 맞아 어릴 적부터 쭉 따로 살아와 이제사 무덤해진 부모님과 얼마전 돈 사고를 가족에게 들킨 남동생까지 사연 많은 식구들을 줄줄이 순천으로 초대를 한 것이었다. 거기다 두 개의 프로젝트 와중에 개인적 글쓰기를 소홀치 않겠다는 일념으로 덜컥 친구와 릴레이 글쓰기를 하기로 하였고 그 1차 드래프트 점검일이 순천 일정의 후반부에 잡혀있기 때문이다. 이 모두는 내가 벌인 일이고 아마도 다 지나고 나면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하나 두 개쯤으로 꼽을 만큼 뿌듯해할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의 목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쫄리는 모양이었다. 올해는 그냥 좀 담담히 지나가도 되었으련만 강력한 추억 하나쯤은 꼭 남겼어야 되었는가 보다.(아.. 사는 게 지루했나..) 가족과 여행을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관계가 끈끈한 친언니네 그리고 내가 몹시도 애정하는 그녀의 아들이자 나의 하나뿐인 조카(이젠 고등학생이 되어 아는 척도 하지 않지만)와 함께한 여행이거나 엄마, 언니 조합의 모녀 여행이 보통이었으니, 이건 정말이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고, 주변을 둘러봐도 잘 없는 전개였다. 미혼의 남동생과 기혼의 누나, 따로 산지 오래된 부모님 조합이라니. 아. 아무리 생각해도 표본이 없는 일이다.


특히, 나와 연년생으로 유년시절에는 엄마를 가운데 둔 경쟁자였고, 일찍 가부장제의 문제를 깨달은 나보다 6살 많은 언니와 연합하여 보이지 않는 전선 너머 적진(?)에서 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을 남동생과는 언젠가부터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휴전상태로 화해 없는 서먹한 관계라 좀처럼 상상력이 동원되지 않는 여행이다. 굴곡의 가족사를 가진 원가족의 구성원들이 이제 좀 다들 살만 하다 싶을 때 날벼락 같이 사고를 친 남동생에게 모두가, 원망없이 그간의 빚을 갚는 것처럼 물심양면으로 마음을 보탠 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었을지도 몰랐다. 하여간, 톡을 보내도 한 자로만 대답하는 것으로 나의 친구들에게 알려진(몇시에 오니? 하면 7 이라고만 보낸다던가 하는), 말수도 없고 관계맺음도 할 줄 모르는, 남동생을 나는 내내 사회생활 부적응자인 것처럼 대했던 것도 부정하지 못하겠다. 모든 게 암호 같기만 한 그 놈이 그렇게 된 덴 첫 사회생활이었을 누나들과의 관계 실패 때문이라고 단정했고 어느 날 그 녀석의 책꽂이에 꽂혀있던 여성을 증오한 남성들이란 소설책을 보고 난 후엔 심증이 확증으로 굳혀졌다. 그가 우여곡절 속에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아는 형이랑 동업을 하고 다시 튼실한 중견기업에 들어가는 과정 동안 내내 나는 엄마에게 "걔가 그래서 회사생활을 잘 하는거야?"를 묻곤 했고, 엄마가 전화를 해 본론을 말하기 전부터 꼭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부풀려 감탄사를 내뱉을 때마다 엄하게도 나는 자주 그 놈이 사고를 쳤나보다 라고 짐작하기도 했다. 꼭 물가에 내놓은 어린 아이 같았다. 내가 낳은 자식도, 책임질 생각도 없으면서.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 남동생이 이제 나와 다른 세계의 성인으로 존중해야 한다고 깨달은 건, 그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가 아니라, 사업을 대차게 말아먹고 돈 사고를 친 것이 가족에게 알려진 뒤였다. 아. 얘는 나보다 대범하게, 내가 책임질 수 없을만큼 큰 사고도 칠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알게 된 후였다고 볼 수 있다.


내 우려, 그러니까 내 느낌에, 각자의 성질머리에서 제각각 각축하던 네 사람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평화를 담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의 우려와 달리 엄마와 아빠, 언니, 형부, 우리 남편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문제해결에 알아서 참여하는 것을 확인하고 지난 40여년 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안도감이 들었는데, 아마도 그리하여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위로를 하자는 생각이 앞섰을 것이었다. 내 예상범위를 넘는 사건을 담지한, 지금까지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 도전적 과제를 자진한 이유란 것은.


그러니 얼마전 봤던 포스터 한 장이 머리 속에 스치는 것이다. 중요한 건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는 전설과도 같은 명언이 실린 포스터 한 장이었다. 갑자기 바뀐 지역 축제를 잘 치뤄내야 하는 어느 스타트업 대표의 고군분투를 담은 영화라는데, 어쩜 내 상황같은지. 내 마음은 자주 꺾일 것이고 그래도 그저 하는 것이다! 그래 나는 이제부터 스타트업 대표다! 고객님들 모시고 익스트림 페스티벌을 한 바탕 치뤄내는 것이다! 사진관에 가서 가족사진도 찍고, 맛집에 가서 줄서서 밥도 먹고, 정원박람회도 가고, 사진찍어 이쁘게 나왔는지 확인도 서로 하고. 남들 하는 것처럼.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성공할거다 이 일은. 아자!!!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ㄷ ㄷ ㄷ)  


[포스터 출처] 제작 : (주)비리프, 실버라이닝스튜디오/배급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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