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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n 18. 2023

"그럽시다. 그냥 넘어가지 맙시다"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13)  - 조용히 다녀온 2023국제도서전

국제도서전 방문 3일을 앞두고 약 3주전 사전예매를 함께했던 친구와 갑작스럽게 통화를 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어느 지자체 문학관 설치에 관한 용역프로젝트를 함께 하고 있는 연구진 중 한 명으로 통화의 목적은 국제도서전을 가느냐 마느냐에 관한 것이었다. 짧은 목적성 대화를 메신저로 나누는 것을 즐기는 그 친구가 직접 전화까지 하였으니 나는 예삿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예상대로 최근 불거진 국제도서전 관련 뉴스를 보고 연락을 한 것이었다. 나 역시 기자회견을 주최했던 단체의 뉴스레터와 인친들의 게시글 등으로 소식을 접하고 있던 것이었다.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 (리스트업) 사건에 연루되었던 인사가 국제도서전의 홍보위원이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행사장에 방문한 VIP 경호원이 이에 항의하는 시인을 과잉진압했다는 소식은 정말 기암할 소식이긴 했다. 결과적으로 그 친구와 나는, 다수의 침묵이 섞인 통화 끝에 현재 하고 있는 용역업무 등을 핑계로 조용히, 소문내지 말고 다녀오는 것으로 합의를 봤고, 내 첫 국제도서전 방문은 불편한 마음을 안고 17일 토요일 그렇게 강행되었다.


나는 출판산업을 잘 알지 못하므로, 누군가처럼 일목요연하게 이 도서전에 대한 후기를 적을 순 없을 것 같다. 출판산업이 그렇게 다양하게 파생되어 있는지 몰랐던 것을 알게된 것과 그래서 한번쯤 나도 한번 독립출판물을 기획해봐? 라는 생각을 정말 한번쯤 했다는 것과 출판시장의 불황에도 불구하고 행사장의 방문객이 이리도 많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게 놀랬다는 점만은 또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왜 이것이 "국제"행사인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비인간, 인간을 넘어 인간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의 난해함과 그 하위키워드로 큐레이팅된 단어들, 꽤 생태적이고 다소 마이너리티한 주제어들에 반한 이 행사 운영주체들의 면면이 왜 이런 것인지에 대하여 자주 아연했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김멜라 작가의 토크프로그램이 진행된다는 배너를 보고 현장대기줄에 20분을 서있다 들어간 워크숍룸에서 왜인지 휴식하는 기분으로 앉아, 김멜라 작가 외 6명의 작가들, 도시괴담을 주제로 8명의 작가가 쓴 단편집에 관한 7명의 작가 토크프로그램에서, 그보다 조우리 작가의 말에 홀랑 위안을 받았다. 단편집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중 마지막 작품 '모르는 척하면서'는 주요인물인 세정이 회사의 누군가 몰래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정황을 발견한 미연과 그 외 혜영과 소진 등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 것인데, 그동안 알고도 모르는 척 하며 이 일상의 불가항력적인 공포를 줄여나가기 위한 각자의 노오력을 서로에게서 발견하며 이제 더이상 그냥 넘어가지 말자는 용기를 내기 시작한다. 이날 토크프로그램에서 조우리 작가는 이 부분을 언급하며 최근 국제도서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들을 접하고도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우리는 알고도 모르는 척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더이상 그냥 넘어가지 말자는 용기도 가져봤으면 한다고, 그래서 우리들의 축제를 더 잘 지켜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왜인지 불편한 마음으로 애써 무관심하게 꼭 주변인처럼 둘러보던 나의 마음을 훔쳐보는 것 같아 조금 찔리면서 동시에 묘한 위로를 받은 것도 같다. 그리고 덜컥. 단편집도 사버렸다.


그래. 더이상 그냥 넘어가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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