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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n 30. 2023

사진선물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16)

나의 결혼사진은 남편의 친구가 찍어준 것이었다. 그는 남편이 서울에 와 사귄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가까운 친구고, 둘을 보고 있자면 꼭 내가 두 사람의 연애에 끼어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래서 주변에 둘 사이를 오해하는 사람도 많았을 만큼 남편에게 막연한 친구다. 나는 막 연애를 시작하고 부산국제영화제에 놀러갔다가 달맞이고개 어느 카페에서 그를 처음 만났고 그가 달맞이고개를 배경으로 필름카메라로 찍어준 커플사진은 적어도 나에게는 그만한 결혼사진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사진은 2009년 10월쯤 찍힌 나와 남편의 가장 어린 순간이 담긴 사진이기도 하다. 그 뒤로 우리는 남이섬과 어느 수목원 등지에서 알게 모르게 자주 그의 피사체가 되었고 우린 그걸 엮어 앨범으로 만들기도 했다. 우리집 곳곳에 액자로 걸린 커플 사진들은 죄다 그가 찍어준 것이다. 그 사진들에는 막 연애를 시작한 커플의 어색함이 녹여있기도 하고, 어느덧 안정기에 접어들어 편안해진 모습도 있으며, 사진감독의 연출에 따라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한 모습도 있다. 그래서 어쩌면 결혼 전에 스튜디오에서 찍는 결혼사진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은 따로 하지 못했다. 나에겐 기억해야할 찰나와 결정적 순간들이 자연스럽게 모아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튜디오에서 잔뜩 포즈를 취하고 찍히는 것도 어색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가 우리의 결혼 소식을 듣고 결혼기념 사진을 찍어주겠다 했을 때야 나는 덜컥 부담이 되었는데 지금껏 별 생각없이 그의 피사체가 되었던 것에 대한 자각이 된 것이고, 너무나도 영광스러운 일이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기도 해서였다. 남편의 절친인 그는 영화 <조제>를 만든 김종관 감독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의 작품은 역시 <폴라로이드작동법>이다. 그의 책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프롤로그 뒤에 실린 사진은 그가 필름카메라로 찍어준 우리의 결혼식 사진으로 그와 남편은 똑같이, 필름 상의 문제로 어지럽게 배경이 겹쳐져버린 그 사진을 그날 찍은 수많은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오랜만에 결혼사진을 떠올리고 꺼내보게 된 까닭은 남편이 며칠 전 별 이벤트도 없이 받아온 선물 때문이다. 그 선물은 액자에 담긴 사진이었는데, 남편이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아온 것이다. 찾아보니 유명한 보도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Hyeres, France(1932)>이란 작품이었다. 남편이 카톡 프로필에 올린 앙리의 사진을 보고 선물로 골랐다는 말을 전해듣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보며 잔잔하게 웃었다. 남들 보여주기용 인스타그램 사진만 찍다가 오랜만에 나에게 좋은 사진이란 걸 떠올렸다. 진짜 좋은 선물에 대해서도.         


나는 내일 순천에 내려간다. 24일만이다. 하반기 시작은 순천에서.


PS. 어제의 중간보고는 떨지 않고 잘 마무으리!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 무대공포증 있다고 떠들어댄 덕분인듯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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