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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l 02. 2023

순천의 묘미, 아랫장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12) 

순천 아랫장. 순천에 내려올 때마다 매번 들렸던 곳인데 보통 나는 이곳에 사과나 감자 같은 식재료를 사러간다. 사실 이런 식재료는 무겁기도 해서 숙소에서 가까운 중앙시장을 가도 되지만 굳이 오일장을 찾는 이유는, 지역에 이만한 이벤트가 없기도 해서다. 적막감이 좋아 부러 고립감을 자처해 오는 곳이 순천이라지만 슬슬 무료해진다 싶을 때면 나도 모르게 오일장이 기다려진다. 이번 순천방문 때는 내려온지 얼마되지 않아 오일장(아랫장은 2일과 7일에 열린다)이 열리는 것이라 고민을 하다가 점심식사도 해결할 겸하여 오늘 점심 무렵 아랫장을 찾았다. 또 내가 갈 때는 매번 평일이었는데, 주말에 열리는 오일장은 어떨지 궁금하기도 했고 역시 일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도 많고, 왜인지 장도 더 넓어진 것 같았으며 말린 고추나 마늘단 등 새로운 상품도 더 보이는 것 같았다. 야외에 설치된 간이무대에서는 간단한 행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이 무더위에 행사장 간이 천막에 모여앉은 사람들이나 근처 파라솔에 서서 장단에 맞춰 흥을 돋우는 어르신들을 보며 한국사람들은 참 흥도 많지 라는 생각을 했고 나도 왜인지 더 신이나 돌아다녔다.  

 

점심은 서울에서부터 정성스레 찾아놓았던 순천에서 먹을 여름음식들 중 오일장 먹거리장터에 있는 '아랫장구포국수'에서 메밀국수를 먹는 것이었는데, 주문을 넣기 전까지 이곳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순꼬비(꼬막비빔)를 먹을지 판메밀을 먹을지를 두고 한참 고민하였고 나는 결국 판메밀을 시켰다. 순꼬비는 다음을 기약. 판메밀을 시킨 건 서울에서 찾아먹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이곳이라고 다를 바 없는, 서울에서 먹던 맛과 흡사한 메밀국수 맛이었고, 다만 메밀국수를 후루룩 먹으면서는 꽤 오래전 서울에서 엄마를 쫒아 찾아다니며 줄서 먹던 몇군데 단골집이 떠올랐고, 왜 요샌 그곳을 찾지 않는지에 대해서 잠깐 생각했다. 단골집들이 문을 닫아서 인가 하고 떠올려보다가 요새는 사진찍어 이쁠 것들만 찾아다니며 먹거나 평양냉면처럼 고급음식을 찾아먹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사실관계를 따지기 어려운 것들이 이유로 떠올랐다. 요즘은 먹는 것도 비일상적인 행위인 것 같기도 하고, 외식자체가 이벤트 같기도 한지라, 오늘의 외식은 그와 다르게 정말 오랜만에 끼니나 떼우려 심상히 먹는 것 같다는 그런 말이 되나 싶은 생각을 하다가 돌아보니 그 메밀집에서 메밀국수 사진을 찍는 사람은 또 나뿐이기도 한, 그래서 메밀국수를 먹고 나와서는 한참을 "일상적이다"라는 낯선 말을 더듬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남편이 아랫장에서 유명한 국밥집에 가면, 맛도 맛이지만 할머니들이 혼자 와서 심상하게 먹고 가는 풍경이 낯설면서 인상적이었다는 말도 설핏 떠올렸다.          

 

저번 방문 때 팔기 시작한 우무가 들어간 냉콩물은 폭염날씨라 그런지 오일장을 다니는 관광객 같은 사람들이 죄다 한잔씩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저번엔 훅 땡겨 먹지 않았던 것을 보니 덜 더웠던 모양이었다. 오늘은 나도 그 대열에 동참해 한잔 사 맛을 보았다. 우무가 들어간 냉콩물은 꼭 공차 밀크티에 펄이 들어간 것 같은 비주얼로, 맛은 당연히 훨씬 더 묵직하다. 그래서 골까지 시원해진다기 보다 든든해진다는 느낌을 받는 맛이다.(나는 점심 먹기 전 오일장 입구에서 사먹은 것이다) 그래도 몇 입 먹고 나니 더위는 금새 가셨다. 주인아저씨께서 설탕을 넣어먹을 건지 물어보셨고 나는 "네 조금만 넣어주세요" 했음에도 작은 플라스틱 국자로 한스푼 가득 넣어주시길래 "더 조금만 넣어주셔도 되는데" 했지만 아저씨 말이 원래에 비하면 3분의 1도 넣지 않은 것이라고. 아저씨 말대로 냉콩물은 설탕 맛이 거의 나지 않긴 했다. 역시 뭐든 주인아저씨 제조대로 먹어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거다.(두유엔 도대체 얼마만큼의 설탕이 들어가는 걸까) 

        

어제는 이곳에 내려와 저녁부터 읽기 시작한 로우프레스의 간행물 <고을-순천편>에서, 관련 정보 없이 사진으로만 보았던 "옥자"라는 식당을 검색하다 결국 찾지 못해 궁금했는데, 오늘은 우연히 수산물들이 모여있는 코너에 갔다가 사진에서 보았던 그곳을 발견했다. 그곳을 보고는 너무 반가워 원래 이런 부탁을 잘 하지 않는데 실례를 무릎쓰고 사진 한장 찍어도 될까요 손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할머니들이 앉아계신 모습으로 사진을 한 컷 찍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이 식당에 관련한 정보를 찾긴 어려웠고 2013년 6월 전남지역 방송에 한번 출연하신 기록만 나왔다. 다음에 가면 메뉴가 무엇일지도 여쭤봐야 겠다고 생각중이다.   


이제 대략 어디에 어떤 물품들이 있을지 대략 파악이 되었지만 신기하게도 못보고 지나쳤던 것들을 새로 발견하게 되는 묘미가 꽤 솔찮하다. 오늘은 옥자레스토랑이었고, 수산물시장과 잡화코너 사이에 있던 도넛트럭도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곳에서는 막 튀겨놓은 설탕 묻힌 찹쌀도넛와 팥도넛을 사먹었다. 그리고 한창 수박철이었고. 1만원에서 1만2천원까지, 서울보다 7~8천원 싼 가격에 놀랐고, 하나쯤 사먹고 싶게 4~5천원짜리 작은 수박이 있어서 꽤 골라보는 재미도 있었던 제철과일 쇼핑이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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