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간헐적 순천살이(13)
평일이면 유동인구가 크게 주는 동천과 옥천변에 어제는 왠일로 사람이 많았다. 이곳에 오고난 후 평일낮시간 천변에 이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걸 본 건 어제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계절이 하필 폭염주의보로 경보가 울리는 여름 한낮이라 조금 낯설었지만, 가장 더운 시간대에 맞춰 에어콘 바람이 아닌 그늘막 아래 시원한 곳을 찾아 자연스레 모여든 주민들일거라 짐작했다. 특히 노인분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어제 주민들이 더위를 피해 모여든 동천가에 서서 처음으로 동천의 이쪽 끝에서 저쪽끝까지를 생각해보았다. 남쪽 끝으로는 예상대로 순천만습지가 있고, 북쪽 끝으로는 이 천이 발원했다는 호남정맥 중 하나인 계족산이 있다. 나는 아이들이 뛰어들어 물놀이를 하는 동네하천인 옥천을 걷다가 폭이 넓어지는 동천에 접어들때 한번쯤 순천만까지 걸어가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이곳에서 약 10키로쯤 걸으면 순천만습지가 나오고 거기서 5키로쯤 더 가면 낙조로 유명한 와온해변이 있는데, 와온해변은 간헐적 순천살이를 하면서 꼭 한번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나는, 운전을 할 줄 몰라 가능하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걸어서 가볼까 계획중이고, 이는 가을의 중턱 어느 때쯤으로 기약하고 있다. 북쪽 끝으로 있는 계족산을 가볼 엄두는 상상으로도 내지 못했다. 전라남도에서 가장 산이 많다는 순천에서도 가장 높은 산에 해당하는 모후산(919m)은 몇 개의 등산코스를 살펴보다 마음을 단단히 접어둔 상태다. 나는 일전에 순천시의 중앙부에 솟아있다는 조계산(884m)을 송광사에서 선암사로 넘어가며 산행을 했고, 정말이지 이 정도로 힘든 줄 알았으면 애초에 탈 생각도 하지 않았을거라고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 바 있다. 송광사에서는 더덕구이를 먹었고, 내가 좋아하는 박찬욱 감독에 <헤어질결심>에 나온 북 앞에 서서 여러컷의 인생사진을 남겼으며, 선암사는 해가 질 무렵 도착해 제대로 주변을 살피지 못했지만 버스정류장 앞 매점에 앉아 난로 주변에 모여들어 화투게임을 하는 그곳 주민들과 섞여 1시간 가까이 버스를 기다렸던 시간은 그대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이곳에서 산행을 할 생각은 들지 않지만(태백산맥보다 작다는 의미로 소맥산맥이라는 명칭이 붙었다지만, 험준하기로나 높이라도 소백산맥이 태백산맥 못지 않다고. 이곳의 산들이 만만히 볼 산들이 없다고 다시 한 번 강조중), 탁트인 동천을 거닐 때면 어김없이 이곳의 끝과 끝을 확장하여 상상할 것 같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하고, 호남정맥에서 발원하여 순천시의 중심지에 흐르며 작은 동네천들과 합류하여 남류하며 순천평야를 이룬다는, 동천은 오늘 같은 날이면 꼭 심장이 펌프질 하는 것처럼 빠르게 불고 흘러 주변을 비옥하게 할 것이고, 범람의 위험으로 오늘은 아쉽게도 그 길을 따라 걷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니 다시 한번 그곳의 끝과 끝으로 마음과 생각이 확장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