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간헐적 순천살이(14) - 여름보양식 찾아먹기
어느 기사에 따르면 5일장으로 전국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는 순천 아랫장이 각종 농수산물과 임축산물, 공산품, 특산품 등이 망라된 종합상설장터라면 그곳에서 동천을 넘어 순천역 앞에 있는 역전시장은 싱싱한 활해산물로 유명한 시장이라고 한다. 나는 일전에 복집 간판을 달고 그때그때 이모님 마음대로 제철음식을 내주는, 이럴거면 복집 간판은 왜 달았나 싶었던 어느 식당에서 물이 좋다는 병어조림을 먹었는데, 이때 이모님이 병어조림을 추천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병어가 좋아. 아침에 역전시장서 가져온 놈이네" 였다. 나는 이때 들은 역전시장이 당시엔 아랫장을 의미하는 줄 알았다. 그땐 시장이라면 아랫장과 그보다는 규모가 작은 또 다른 전통시장 웃장, 의류잡화 중심의 숙소 앞 중앙시장 밖에 몰랐고,그때 내 짧은 생각에 아랫장은 순천역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했다. 그리고 순천에 내려오기 전 여름 제철보양식을 찾다가 알게 된 시장이 바로 역전시장이었다.
사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남도의 여름보양식을 찾아보다가 조금 망설여졌다. 대체로 검색된 내용들에서 보여지는 것들이 하모사시미 혹은 하모샤브샤브, 소위 갯장어 요리였기 때문인데, 그건 나에겐 언제부터 어떤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장어류의 요리에 다소간의 혐오가 생기고 그래서 단 한차례도 시도해보지 않았던 식재료로 만든 음식인 까닭이었다.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고 뭐든 권유하지 않는 그가 어쩐 일인지 이번 참에 한번 시도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나직하게 말했을 때도 마음이 동하지 않다가, 그가 한동안 찾아서 보여주는, 여수에서 하모샤브샤브 먹는 백종원 아저씨 영상이나 수요미식회 여수편 같은 것들을 보면서 조금씩 어떤 장벽 같은 것이 허물어지는 기분이었는데, 어쩌면 여름보양식을 검색했을 때부터 이미 많이 허물어져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때쯤 했다. 먹방 영상을 보면서는 이것도 평양냉면 같은 것일지 모른다, 첫 문턱이 어렵지 그 경계만 넘으면 미식의 세계가 확 하고 확장되는 그런 음식일거란 생각을 불현듯 했을 때! 그리고 이번 참에 한번 시도해보자 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곳의 지형과 계절의 변화와 향과 무드를 좋아하니까. 몇 번의 검색 끝에 역전시장 안에 있는 횟집에 전화를 걸어 하모샤브샤브 1키로를 비장하게 예약한 후 남편이 부드럽고 담백한 맛이라고 덧붙였다.
사시미는 시도하지 못했고 나는 샤브샤브로 시켜 먹었는데, 살짝 데쳐 물렁해진 가시와 함께 씹어먹을 때 내가 이물감이 느껴지는 식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지만 끝내는 부드럽고 담백했다. 일본식 표현이라는 '유비끼', 서리가 내린 듯 살짝만 데쳐먹는 남편과 달리 나는 가시를 푹 익혀 먹느라 좀 오래 데쳐먹었으니 그래도 몇 번 더 먹어봐야 세꼬시를 살짝 데쳐 먹는 그 참 맛을 알게되는 것일테다.
식당의 메뉴판에는 손님들이 자주 묻는 질문에 답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수산분야의 제철식재료가 봄여름가을겨울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제철음식의 교과서 같은 이 메뉴판을 외듯 읽으면서 가을과 겨울을 기약하는 한편, 몇 계절이나 이 음식들을 더 즐길 수 있을지, 꼭 언젠가 사라질 장면처럼 눈에 박아두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못먹게 되어 아쉬운 건지.. 이 수생물들의 안녕을 걱정하는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역전횟집은 흡사 작은 수산시장 내 상차림 식당이 붙어있는 구조였다. 수족관들을 지나 식당 안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지만 나는 들어갈 때는 별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땀을 쭉 뺀 식사를 마친 후 횟값과 상차림비용을 따로 계산을 하고 수족관을 두루 살피며 나오면서야 이 식당의 구조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 횟집 사장님께서 내가 먹은 하모가 무엇인지, 아나고와의 차이 같은 것은 무엇인지, 아나고 중에서도 세꼬시용과 구이용이 따로 있다고 설명해주시며 하모는 입이 길고 이빨이 쎄서 잘 물리신다고 그만큼 힘이 쎈 놈이라고 손등의 오래된 상처를 보여주셨는데, 이 이빨 쎈 놈이 나의 첫 갯장어였구나 했다, 덕분에 땀 좀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