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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l 08. 2023

비가 오면 유독 신나보이는 것들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15)

비가 오면 왜인지 처량하게 보이는 풍경들이 먼저 보였다. 물을 튀기며 제 갈길 빠르게 지나쳐 가는 8차선 대로의 차량행진이라던지. 세종문화회관 벤치 책읽는 모습으로 비를 흠씬 맞으며 앉아있는 사람모형같은. 그리고 또. 이면도로 건물 귀퉁이 옆으로 쓰러져 삐져나가려는 내용물을 간신히 품고 있던 쓰레기봉투더미와 그 위에 사람들이 버려놓은 커피일회용품 같은. 짙은 검회색 전봇대에 스티커처럼 붙어있던 전단지와 그 옆을 무표정한 얼굴로 아니 그보다는 조금 짜증스런 표정으로 서둘러 지나가던 어떤 낯선 사람과 그 마음 공감하며 지켜보던 나와 같던 누군가 라던지. 몸에 찰싹붙은 젖은 상의를 입고 지하철 에어콘바람에 덜덜 떨던, 샌들 밖으로 젖은 발이 보이던, 안경에 묻은 물기를 연신 닦아내던, 젖은 우산들을 티나지 않게 신경쓰던, 그 모습 역시 꼭 나같던 어떤 동승자들과 비슷한 마음으로 서있었을 몇몇 이들 등등 비가 오면 모든 무심함이 여기저기서 불시에 떠올랐다. 꾸질한 내 마음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이. 그래서 눈 앞의 풍경들이 죄다 처량맞아 보였는데, 물론 그건 다 내 마음 때문일 거였다.   

  

어제는 비가 오면 유독 신이 나 보이는 것들이 보였다.  

사람이 드물어진 동천변 어느 잔디밭에 비를 흠뻑 맞고 있던 이름 모를 새는 내가 죽도봉을 올라갔다 내려올 때까지도 같은 자리에 내내 앉아 비를 맞고 있었다. (두번째 봤을 때는 이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라도 하자고 할뻔. 무엇보다 그 새의 명칭을 알고 싶었다) 눈을 검뻑 거리고 가만히 서있는 것을 한참 쳐다봤는데, 그 얼굴이 간만에 빗님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고 어쩐지 내가 반신욕할 때의 나른함 같은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죽도봉을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는, 산책로에 나와있는 주먹만한 두꺼비 같은 양서류과 척추동물을 보았다. 별 경계심이 없이 걷던 중 눈 앞에 주먹만한 게 튀어올라 봤더니 커다란 두꺼비 한마리(로 보이는. 정확히는 알 수 없음)가 나를 피해 나무밑으로 숨어들고 있었다.(내가 본 중 가장 큰 것이었다) 간만의 나들이를 방해받았는지 나무뿌리에 등을 보이고 숨어 씩씩 대는 것처럼 연신 등을 부풀리며 웅크려있었다. 하수구 아래 자란 잡초는 어느 새 무성해져 하수구 밖으로 삐져나오려 하고. 몸보신 2탄으로 점심 때 갔던 대숲골농원 닭구이집 밖 풍경 에서는 대나무숲이 멀리서 흔들거리며 눈이 부신 초록빛을 뿜어대고, 풍경에 취해 점심을 먹고 나와 들어선 대나무숲속에서는 장엄한 의식을 치루듯 짙검은 녹색을 한 장대한 것들이 떼로 우뚝 섰다.       


일감을 잔뜩 들고 내려오는 통에 순천에서도 허리가 끊어져라 앉아있지만, 우중에도 산책을 잊지 않고 있고, 우중산책의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비가 오면 더욱 좋아보이는 풍경들을 마주하며. 그리고 산책 전 기분좋도록 맛있는 점심식사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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