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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Jun 25. 2023

공포에 대해 말하기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15) 

나에게는 오랜기간 나를 괴롭혀온 고질적인 질환이 있으니 하나가 주사바늘공포증이고 또 하나는 무대공포증 같은 것이다. 주사바늘공포증이 발발한 건 아마도 학교에 들어가기 전 초등학교 고학년에 속하는 언니와 단둘이 뇌염모기주사를 맞으러 갔다가 두려움에 떠는 나때문에 곤욕스러운 상황이 생겼고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한 언니가 덜덜 떨며 지켜보는 가운데 여러 병원 관계자에게 붙잡혀 강제로 주사를 맞고 난 뒤부터로 짐작하고 있다. 그렇게 짐작하는 건 그 이전의 관련 기억은 없고 그것이 나에게 가장 강렬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매년 학교에서 주사를 맞을 때마다 벌벌 떨었는데 또래친구들 앞에서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한 덕분인지 단순 주사를 맞는 것에 대한 공포증은 많이 호전되었지만 코로나19와 같이 불가피하게 주사 맞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여전히 나는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분들께 갑자기 아기 같은 목소리로 "살살 놔주세요. 제가 공포증이 있어서요" 같은 멘트를 꼭 하곤 한다. 그러나 그보다 문제는 체혈인데, 채혈을 앞두고는 며칠동안 두근거림에 잠을 설치거나 스트레스로 소변에서 피가 섞여나오는 경험을 한 적도 있으며 채혈 후 어지러움증은 당연히 동반되는 것이고 한번은 기절을 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은 20대 후반 무렵에 있었고 그야말로 기절로 눈을 떴을 땐 내가 양쪽으로 두 남성에게 어깨걸이를 하고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누워서 채혈하겠다고 요청하는 편이다. 요즘은 이런 센서티브가 유별나지 않은지 건강검진과 같은 채혈하는 장소에는 때때로 "채혈 후 어지러움 등이 있으신 분은 별도 요청을 해달라"는 안내문을 목격하기도 하니 조금은 편하게 원하는 요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몇 번의 채혈 경험은 나쁘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주사바늘공포증은 그 자체의 공포를 없앤다기 보다 긴장을 줄여나가는 방법들이 있는 편이었다. 소위 무대공포증은 스스로 긴장을 통제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나에게 이 공포증은 회의 등과 같은 형식적 자리에서 공식적 발언을 할 때 떨림이나 얼굴 붉어짐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증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서울시 산하 기관에서 일할 때였다. 워낙 그때는 모두가 돌아가며 말하는 회의 자리가 많았고 공무원이나 관계된 이해관계그룹 안에서 의견을 피력해야할 자리가 많아 거의 매일 꾸준히 이런 일이 있었는데, 그래도 다행인 건 이런 회의자리에서는 처음 말을 꺼내고 얼마 지나고 나면 어느 정도 평정심을 찾을 수 있었고 그 뒤부터는 수월해졌다. 발제나 토론과 같이 청중이 있는 자리에서 말을 해야할 때는 긴장이 지속되고 평정심을 찾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린다. 청중들의 반응을 살피다 영영 평정심이 되돌아 오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어 이럴 땐 당췌 어떻게 발제를 하고 나왔는지 알 수 없을 지경으로 두서 없이 말을 던지듯 하고 끝나버린 경우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긴장을 전혀 하지 않고 농담도 하고 분위기를 꽤 주도하며 발표를 할 때도 간혹 있는데, 이런 경우들을 되돌아 떠올려보면 그것들의 공통점이 그다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이는 정말 나 스스로도 원인을 알기 어렵고 그 극복의 방법도 당췌 찾기 어려운 것이다. 다만, 나의 저 깊은 심연 무의식의 공포같은 것으로 자리잡은 것으로 보여지니 나는 한때 최면치료라도 받아봐야할까 심히 고민해본 적도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내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 외에 별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중이다.        


그리고, 최근 다시 프로젝트를 하며 다시 회의시 목소리 떨림같은 것을 느낀다. 호흡이 빨라지고 숨이 가쁜 채로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 이번주 목요일에 있는 중간보고 발표를 내가 하기로 하면서 어제부터는 다시 한번 과연 내가 떨지 않고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과 또 한편 조금씩 호전되고 있다는 희망과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기대 같은 것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한창때에 비하면 호흡은 정상대로 금방 돌아오는 편이고 그 시간만 지나면 말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으니 이번엔 다를 거라고 믿고 있는 중이다. (아,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심리적 요인이라기 보다, 숙련도가 떨어져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어쨌든 이건 자꾸 부딪혀보며 극복해야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편이고 이번엔 정말 떨쳐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크기도 하다. 


점점 나아지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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