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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Aug 19. 2023

안전한 도시가 수고한 나에게 주는 위로란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18)

간헐적 순천살이를 시작하고 얼마 안돼 이곳에서 멀지 않은 두 지역에서 진행되는 단기프로젝트를 제안받았고, 이 두 프로젝트를 하겠다 결심한데는 주머니 사정이 가장 큰 이유였을 테지만 모름지기 지역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반감되어진 탓도 꽤 컸을 것으로 짐작한다. 두 지역 모두 컨설팅 작업으로 뭐 얼마나 자주 오갈 일이 있을까 싶었지만, J시만 댓번을 오고갔으니 그래도 적지 않은 지역행이었고 순천발 J시행은 이번으로 두번째였다. 어제는 J시 프로젝트의 결과보고회가 있어 J시행을 감행한 것이었다. 8월 순천행 일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던 주요 일정 중 하나이기도 했다. 순천에서 J시로 떠날 땐 약간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드디어 이 날이 왔구나 그저 홀가분한 마음이 컸는데, 결과보고회를 마치고는 새삼 '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괴감으로 순천행 기차에 앉아서 꽤 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곡성쯤 와서는 돈벌이 수단을 바꿔야할까 그런 생각도 했던 듯. 작성해간 보고서의 내용이 무엇인지 도통 알려고도 하지 않는 '갑'님과 이해관계자들을 앉혀놓고 열과 성을 다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가장 객체인 나는 또 이렇게 애달복달하며 설명을 하고 있나. 뭐 대략 이런 비슷한 생각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업지시서상 의뢰과업의 제목과 결과보고서상의 제목이 일치하지 않아 없는 내용이라고 우기는 '갑'님에게 자 그게 이것이고 제목을 그 명칭대로 고치겠다 했을 땐, 그게 뭐 어렵나 제목을 바꾸면 되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잘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짐짓 가장된 거리를 만들어 준공일까지 뭔가를 요청할지도 모르겠다는 가까운 미래의 며칠이 눈 앞에 선하게 그려지며 도통 끝이 난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든 것이다. 그렇지만 또 어쩌겠나 요청하시면 해야지 이런 패배감 비슷한 게 불쑥 올라오다 말다를 반복했으니 순천으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는 기운이 빠져 1시간 내내 들고온 책도 핸드폰도 펴지 않고 그저 멍을 때리게 되었다.


그리고, 꽤 피곤했음에도 조금 걷고 싶은 마음에 순천역에서 동천변의 장대공원까지 정신없이 걷다가 매번 걷던 동천을 마주했을 때는 왜인지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제야 장대공원 버스정류장에 앉아 저녁 7시까지 넘도록 훤한, 아니 그보다는 뿌연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꼭 내가 집에 갈때까지 어둠을 멀리 물리치듯 사위가 온통 어스름한 것이었다. 한산해진 퇴근길의 찻길, 간간히 지나가는 차들과 차량의 소음도 적당히 적막감만을 상쇄해주는 것이 딱 이날의 날 위한 것 같았다. 돌아왔구나. 내가 안전하게 생각하는 곳으로. 그러다 승객이 나 하나뿐인 시내버스를 타고 천천히 뒷자리로 걸어갈 때까지 출발하지 않고 기다려준 버스아저씨의 안전운행으로도 이내 도달한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렸을 때는 그 잠깐 사이 어둠이 조금 내려앉고 있었는데, 그렇게 순천집 앞 옥천을 보고서는 사는 게 그렇지 뭐,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라고 뭐 별 수 있나 하는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몇몇에게 카톡으로 안부를 묻고 꽤 오랜만에 누군가와 긴 통화를 했고, 늦게 숙소로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의 일화를 전한,다기 보다 신나게 뒷담화를 깐 뒤, 좋아하는 예능을 보다 말다, 그보다는 주말에는 뭐하지 또 뭐먹지를 가지고 한참을 이야기 했다는데, 오늘 점심을 먹고선 내일은 광양에 가서 광양불고기를 먹자 했으니 어제의 계획대로 된 일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내일 서울로 돌아간다. 다음에 올 땐 바람이 솔솔 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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