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19)
이번 순천방문과 지나간 것들 사이 차이점을 굳이 꼽자면 아마도 관광객 무드에서 조금 벗어난 데 있을 것 같다. 나의 그곳 생활은 서울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싸들고간 일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던 탓인 듯 싶다. 그곳에서도 먹고사니즘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이 고민했고 때때로 한탄했으며 일생활 균형을 맞추려 억척스럽게 애쓰며 아쉬운대로 틈틈히 지역 안의 문화생활거리를 찾아 실행하기도 했으니 어쩌면 공간적 모드전환에 완전히 실패한 것이고, 한편으론 간헐적이나마 이곳에서의 '살이'도 조금씩 적응되는 걸 거였다.
광복절에는 숙소 근처 CGV에서 <오펜하이머>를 보았고 살 것이 없더라도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아랫장은 반드시 들리는 곳이 되었으며 지난 일요일에는 (광양불고기를 먹으러 가는 것이 본일정이긴 했지만) 버스로 40여분 거리에 있는 광양 전남도립미술관에서 <이건희컬렉션>도 보았다. 늦은 시각에 끝나는대다가 차가 없는 우린 결국 포기하고 말았지만 토요일에는 <제1회 남도영화제>의 10월 개최를 앞두고 사전영화제가 정원박람회 오천그린광장에서 있다는 소식을 듣고 갈까 말까 꽤 긴 시간 고민하기도 했다.
포털메인에 떠있는 무참한 소식들에 조금 무감해지고 대신 <남도영화제> 관련 소식을 찾아보다 지역방송의 부정적 기사에 대하여는 남편과 한참 이야기하기도 했으며, 산책 중 정원박람회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만들어진다는 쓰레기처리장과 관련된 어느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 현수막을 보다가는 자원순환이라는 대안적 방식의 실험이 아직 진행중이라면, 이 정책을 수립하며 주민을 설득하는 과정은 조금더 복잡할 필요가 있는 것 아닌가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 나누었던듯 싶다.
그리고, 처음으로 귀촌에 대하여 생각해보았는데, 그러니까 사실 처음이라고 볼 수 없는, 언젠가는 막연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만 하고 있던 귀촌은 언제나 그것의 때가 아직 오지 않은 것이었다. 아마도 20대 혹은 30대의 어느 날 한창 밥벌이에 충실할 때, 은퇴 후의 목가적 생활을 연상, 버티는 힘을 재생산하며 생겼을, 그 먼미래의 어느 '때'는 중앙에서 잘 자리잡아 영영 오지 않아도 될 '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나의 첫 생각이란 것은 실행으로 옮기기 직전의 것이라기 보다 기존의 관념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의 첫이며, 서울생활의 대척에서의 그것이 아니라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처음 생각해보게 된 것이다. 도피처가 아닌 곳으로써의 귀촌을 생각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