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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Sep 09. 2023

형편없는 중간정산서를 받아들고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23) - 프리랜서 3년차의 회고  

남편이 9일간의 긴 출장을 마치고 어제 늦은 저녁 집으로 돌아왔다. 한층 야윈 몰골에 시커먼 얼굴을 한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반갑다기 보다 안도감이 들었는데 홀로 지내는 동안 느낀 고립감 때문이었다. 

 

나는 그가 없는 사이 근육통을 동반한 몸살감기를 앓았고 지난 주말 엄마집에 잠시 들려 점심을 먹고 며칠 전 친구의 초대로 프리즈아트페어에 한차례 다녀온 것을 빼고는 대게의 시간을 두문불출하며 지내오고 있었다.(매일의 산책을 빼먹진 않았지만) 남편이 출장을 떠나는 날부터 약 이삼일 동안 어깨를 흠씬 두들겨 맞은 것 같이 아픈 덕에 일시적 독거 상태로 요양했고그 뒤 며칠은 주변 코로나 확진 소식에 신중해지는 것이었으며, 그리고 또 얼마 동안은 그 생활의 관성에 따라 칩거가 장기화된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는 칩거생활은 SNS로 간간히 친구들의 소식도 듣고묻고 지인들과 카톡 등으로 연락을 주고 받지만 대면 교류가 없는 상태가 꽤 긴 시간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2~3개월의 단기 프로젝트로 고강도 업무강도에 시달렸다가 오랜만에 찾아온 텅 빈 관계와 고요함이 며칠동안 꽤 달콤했는데, 홀가분한 자극도 지속력도 모두 예전같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오기 이삼일 전부터는 약간의 고립감에 시달리며, 폭주하던 기차가 갑자기 멈춰선 후의 공허함이겠거니 했다. 그무렵 나는 다시 찾아온 휴지기를 잘 보내볼 심산으로 아는 선배가 기획하여 추석 전후 개시 예정인 나라별 패키지 여행 목록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크루즈 여행부터 예술기행과 내가 좋아하는 트래킹 여행 기획이 두루 목록화된 대화창에서 마음에 키워드들을 골라 서치해보다가 관두었는데, 프리랜서 생활 3년차에 접어들며 이미 충분히 부유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고보니 여행이 고프지 않았다. 간헐적 순천살이까지 더해 충분히 유람하는 기분으로 프리랜서 3년차를 보내고 있던 차였다. 그렇게 싱겁게 여행계획을 접고 글쓰기 합평모임에라도 참여해볼까 싶어 SNS 등에서 관련 내용을 검색해보기도 했고 언제든 대화판이 열린 지인들을 만나 수다라도 떨어볼까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좀처럼 이 비연결의 상태가 상쇄될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전 나와 비슷한 시기 프리랜서가 되었고 곧 다시 회사생활을 시작하는 친구와 통화하면서 나의 고립감의 근원이 조금은 또렷한 감각으로 다가온 것 같다. 다음주 출근을 앞두고 마지막 백수생활을 찬란히 불사르고 있는 친구와 약속을 잡으며 그의 목소리에서 전에 없던 활력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좋은 시절 다 갔다는 친구의 말에 정녕 섭섭했던 사람은 나였던 것 같았고, 역시나 친구는 오랜만 느끼는 긴장감에 꽤 설레이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느끼는 고립감이라 함은, 홀로 뚝 떨어져 나만의 작은 세계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끼거나 혹은 단지 삶이 무료하다거나 외로운, 그런 현재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 같진 않다. 여전히 하루하루의 글쓰기를 지속하며 끝내 아무것도 남지 않아더라도 다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갖고 그것만으로도 썩 삶의 재미가 되는, 그러니까 더 늦기 전에 삶의 에너지원의 하나쯤은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여전히 찾지 못한 것이고,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었을 때 성적표처럼 받게 될 미래에 대한 선제적 위기의식 또는 조바심 같은 것이 다시 발동을 하는 걸테다.   

2021년 직장을 그만둔 이후 꽉채운 삼년에 다다르는 동안 경제적으로 다소간의 부담을 내려놓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내 마음이 움직이는 것들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내고 있는데, 손에 받아든 중간정산결과가 왠지 초라한 것 같아 요며칠 조금 우울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달리던 기차를 멈추고 단지 관성대로 살지 않겠다는 마음만 있을뿐, 그래서 어떻게 어디로 갈지조차 못 정한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이 요글래 자주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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