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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Sep 13. 2023

불혹에도 자주 쫄리지만 위안이라면    

[일기] 그리고 서울생활 (24) 

나에겐 거절의(능동과 수동 모두에 있어서 그렇지만 본 문장에서는 수동적 의미로) 경험이 별로 없다. 거절될 상황에 놓이는 걸 극도로 싫어했고 그렇기 때문에 당락 여부로 성패가 결정되는 시도와 도전을 많이 해오지 않은 편이다. 내 능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을 안 해온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도 어느 정도 가능성이 예견되는 일을 찾아해온 편이었다. 그렇다고 실패에 따른 좌절이 없었느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이미 결론난 것 같던 미성년의 시기는 논외로 하더라도, 성인 이후 떠밀려 경험하게 된 실패와 좌절의 사례는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숱하게 많았다. 대학 진학은 두 번의 고배 끝에 성공했지만, 없다고 배웠으나 엄연하게 존재하는 소위 계급질서를 뛰어넘을 성과는 아니었고 엄마의 기대를 정확하게 어긋나버린 결과였으며, 연쇄반응처럼 대게의 사회생활은 곧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작은(간혹 되게 이상한) 회사들을 전전하며 경험한, 그러니까 내 청춘의 기억은 서글픈 을(병..정...)의 서사로 점철되어 있다. 마지막 사회생활 기억은 이 판의 끝판왕과 같은, 진영 내 권력투쟁과 네거티브 전쟁에 따른 공멸의 경험이니 40대 이전 생애주기상으로 가장 찬란하게 빛났어야할 나의 청년기는 연쇄실패범 81년생 아무개라 명명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시기에는, 도전과 실패의 경험들이 흩어진 별처럼 내 인생이란 밤하늘에 그마저도 찬란한 부분으로 수놓아져 있는 게 아니라 실패의 블랙홀 그 자체처럼 실패한 인생이라 누군가 낙인을 찍어놓은 것만 같았다. 비극적으로 보이는 상황에 빠져있다 보면 연달아 실패가 깔대기처럼 나에게만 축적되고 있는 것 같고 그렇게 착각의 물고가 트이고 나면 쉽게 빠져 나오기 어려운 감정의 늪에 허우적대기 일쑤라, 청춘의 시절은 온통 열패감으로 가득차 내 머리 위로 불행의 구름이 내내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소란스럽기만 했던 청년기는 카오스의 자체 붕괴와 함께 인생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그 뒤엔 갑작스런 화이트아웃과 긴 적막이 찾아왔다. 적막 속에서는, 바람이 문제더냐 흔들린 내가 문제지와 같은 자책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자체적으로는 인생의 1장이 닫히고 새로이 2장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 이 몇 년의 시간은, 실상 비자발적 상외일테지만 실패한 인생이 어딨나 무탈한 게 최고지 라는 정신승리인지 나이가 들어 자연스런 초탈인지 알 수 없는 마인드 리셋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로 여전히 진행중이다. 그러니 언제나 그렇듯 준비없이 어수선하게 40대를 맞은 것이다. 그러니까 섣부르게 인생 2장이라고 명명한 이 한때는 불현듯 이보다 더한 건 이제 없겠지, 생애 실패의 총량을 다 채웠단 생각을 하면서 어물쩍 시작되었고, 어쩐지 은퇴한 노년의 생활처럼 줄곧 지리멸렬하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한 것 같은 평온의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분노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어떤 관계로부터 뚝 떨어져 지내온 고립의 결과다. 고립의 시간도 관성처럼 이어져 커뮤니티에서 이격된 시간만큼 손에 꼽을 만큼의 인간관계들이 소담하게 남았다. 2년전부터는 홀로 노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작심삼일 보다는 긴 시간의 의지로 일상의 소소한 시도 같은 것들을 해오는 중이다. 내가 노력한 만큼의 적당한 보상과 성취감을 때때로 영감삼아 일상의 리뉴얼을 도모해보는 것 정도의, 고성능의 미세현미경으로 들여다보지 않은 잘 눈치 채기 어려운 나만의 인생 실험같은 것이다. 실현가능한 목표를 정하고 가능한 일상의 실천을 꾸준히 하며 작은 성취를 얻고 이에 만족해보는 시간 같은 것인데, 중소기업 초봉 수준의 경제소득 유지와 더불어 몸무게 유지를 위한 홈트 및 산책, 요리해서 밥 해먹기 등의 일생활균형을 도모하면서 독서와 글쓰기와 같은 취미생활도 잊지 않는 것이다. 

고요하고 무탈하게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건전한 생활을 영위하는 와중 대체로 만족스럽다가도 간헐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상존했고 이 인생 2장에서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수시로 점검하게 되었는데, 그때 시작한 것이 브런치였다. 글쓰는 행위의 느슨하지만 사회적 맥락을 찾아보고자 한 일이었다. 단절을 끊고 외부의 세계와의 커뮤니케이션 필요성에 따른 시도였으나 브런치 외에 당장 떠오른 수단이 없었고 방법도 알지 못했다. 소속이 있을 땐 어렵지 않던 것이 뭐든 가능한 프리랜서가 된 이후부터는 내 관심사를 찾는 일도, 나의 분수에 맞는 사회적 관계맺음도 쉽지 않았다. 


올해 상반기를 지나면서는 드디어 조바심 나기 시작했고 이제쯤 다시 사회관계망 안으로 재진입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사회적 구속력을 찾고 소셜의 역할을 확인해야될 때라는 신호 같은 것. 마음은 급했지만 지금까지 해오던 관성을 버리고 다른 관계와 다른 영역, 새로운 분야를 찾아나서면서 내 현 역량을 체크하고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야할지 알아챌 수 있는 기회 혹은 힌트 그것도 아니면 그냥 막 떠오르는 영감 같은 것이 나에게는 좀처럼 떠오르지도 찾아오지도 않았다. 결국 2,30대에 해봤어야할 맨땅의 해딩과 같은 좌충우돌의 시도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경험해보아야 되는 것인가 싶어 얼마 전엔 오랜만에 욕심을 부려 한번의 고배를 마신, 불가능성이 더 높은 일에 재도전을 했고 그 결과를 기다리면서는 내 손을 떠난 일의 결과를 기다리는 것의 무력감을 다시 한번 경험하는 중이다. 도전하지 않은 만 못한 상태가 될까 전전긍긍하며 고지의 일정이 점점 다가올수록 원치 않는 결과를 얻더라도 나에게 남는 의미를 스스로 찾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 의식도 함께 고조되고 있다. 이번 실패는 아무렇지 않을 자신이 없는 탓이다. 

실패에 있어서는 맷집은 당췌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당락의 결과는 왜 매순간 긴장되고 적응이 되지 않는지, 거절 당하는 경험은 왜 그렇게 계속 싫은지, 인생 끝나는 거 아니고 다시 하면 되는데 왜 자꾸 나약한 생각만 드는 것인지, 결과를 통보받는 순간의 충격을 완충하기 위해 모의라도 하듯 실제 나는 며칠 앓기도 했다. 실패의 예방접종을 맞듯이. 


불혹에도 자주 쫄리지만 하나 위안이라면, 며칠 앓은 뒤엔 일상을 지탱해오던 건강한 나의 루틴들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몰지 않게 하는 장벽이 되어줄거라 믿는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다. 여전히 늘지 않은 솜씨로 요리를 하여 몸이 땡기는 것들을 해먹고, 해서 뭐하나 싶지만 홈트와 산책도 꾸준히 한다.(다행히 날씨가 도와준다) 도전과 실패라는 것도 결국 밥을 해먹고 산책을 하고 글쓰기를 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최면을 걸면서. 난 광활한 밤하늘이고 실패하더라도 그건 고작 작은 별 하나다. 밤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이렇게 스스로를 단도리 하면서.                   

내가 만든 요즘 나의 점심메뉴 : 간단한 오코노미야끼와 양념치킨, 키토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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