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글루스:글쓰기연습] (2) 천명관의 소설 <고래>를 읽고
소설 <고래>의 작가 천명관은 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인터뷰에서 이 소설은 노파에서 금복, 춘희로 이어지는 여성 연대기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이 인터뷰에서 “노파는 전근대를, 금복은 근대를, 춘희는 탈근대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볼 수 있다”고도 언급했다. 작가의 이러한 언급에도 불구하고 나는, 부두, 평대, 공장 등 공간배경에 따라 총 3부로 나뉘어진 이 소설을 대게 금복의 서사로, 필연에 가까운 비극에 따라 파행되어 자연스럽게 춘희로 넘어가 끝내 탈속되고 마는 서사로 이해했다. 이 두 인물의 난데없는 비극이, 이 소설의 시작을 알리며 등장했다가 시대와 세태에 대한 원망과 그에 대한 복수를 예고한 노파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그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도록 장치하였는데, 나는 오히려 소설의 막바지에 이르러 문명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어 야생하던 춘희가 죽은 후 벽돌(제조장인)의 여왕으로 칭송받으며 세상에 회자되기 시작하는 에필로그와도 같은 이야기와 맞물리며 두 인물을 더욱 극적이고 신화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에 더해, 이 이야기는 주요 인물들의 탄생과 탄생비화로 이어지는 신화적 모티브도 차용되고 있다.
산골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를 향한 임시정박처와 같은 부둣가에 우연히 정착하게 된 금복은 춘희를 낳고 어머니에 의하여 한쪽 눈을 잃은 노파의 딸과 아주 먼훗날 갑작스럽게 재회한다. 춘희는 금복의 오래전 연인, 사랑하며 동시에 증오했던 걱정을 말도 안되게 꼭 닮았고, 시기적으로 이건 완전히 말이 안되는 것임에도 금복은 걱정의 딸이라 굳게 믿고 춘희를 멀리 한다. 금복이 갖은 고초 끝에 평대라는 마을로 이주하게 되고 그곳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세속적 성공을 이룰 때까지 그에게 원동력이 된 것은 일견 부둣가에서 보게 된 신비하고도 거대한 물고기 ‘고래’에 대한 잔상과 미지한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환상과 동경, 그리고 그 반작용처럼 춘희라는 존재를 잊기 위한 것처럼도 보인다.
춘희는 금복이 떠돌이 생활 중 마구간에서 태어나고, 언어소통이 불가한 언어장애를 갖고 있는 대신 자신이 태어나던 마구간에 매어있던 코끼리(서커스단에서 쫒겨나 쌍둥이자매와 함께 살고 있던)와 남몰래 대화를 나누거나 보통의 사람들이 미처 알지 못하는 것을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남다른 (초)능력과 남성과 같은 남다른 신체와 괴력을 갖고 태어났다. 춘희의 이 낯선 (초)능력은 지속적으로 배척되다가(심지어 자신의 엄마에게도조차) 폐허가 된 마을 평대에 홀로 살아남아 생사의 고비에 매순간 놓이게 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올 사람들을 기다리며 한가지 일(벽돌만들기)에 매진하게 하는 힘으로 발휘된다.
금복은 2부의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신체적인 남성성마저도 스스로 창조해낸 듯 보이고 그의 서사는, 딱 한번 보고 매료되었던 ‘고래’를 형상화하였고 부둣가 마을에서 매혹되어 본 이후 잊지 못해 평대 마을에 세운 ‘영화관’에서 노파의 저주로 보이는 화재로 팔백여명의 사상자를 남기는 역사상 최악의 인명피해와 함께 자신에 의해 번영을 누렸던 마을을 도저히 복구할 수 없는 유령도시로 만들며 막을 내린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화재의 방화범으로 지목된(소설에서는 노파의 저주인 것처럼 그려졌지만, 그건 수많은 우연들이 겹쳐 벌어진 사건으로 보이기도 한) 그의 딸 춘희는 결국 감옥에 수감되고(자신의 어머니의 죗값을 그 자식이 기필코 치뤄내야 하는 것과 같은) 20년이 넘는 오랜 수감기간 끝에 평대로 돌아와 벽돌공장을 찾지만 폐허가 된 마을엔 어찌 살아냈는지 도저히 규명할 수 없는 개 한 마리와 노파의 딸만이 유령(일지도)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다. 춘희는 금복이 세운 벽돌공장에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아 존재하지 않은 그리운 사람들을 꿈결처럼 무시로 만나고 그들 중 누군가가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며 아무런 목적하는 바도, 뜻하는 바도 없이 벽돌을 만들고 그의 죽음은 미지로 남겨진 채, 그로부터 먼훗날 당대 최고의 건축물을 지으려는 건축가에 의하여 그가 만든 고귀하고 도저히 여자 혼자 만들었다고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규모의 벽돌들만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벽돌에 의하여 그가(춘희) 실제했음이 증명된다.
금복의 죽음에 춘희가 깊게 연루된 것처럼 묘사되며 이전 시대가 닫히고 다음 세대인 춘희의 서사로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 처럼 보이면서도 한편 춘희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3부에 이르러 금복과 춘희의 서사가 비로소 대칭적 구조를 이루는 것 같다. 금복은 미지한 것에 대한 동경을 원동력 삼아 현실의 척박한 조건을 외면하며 그 토대 위에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고, 춘희는 과잉되었고 결국 폐허가 된 세계에서 단지 감각으로 알고 지내왔던 죽은 자들을 그리워하며 벽돌 한 장 한 장을 짓는 일에 몰입한다.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세계, 그러니까 이 소설의 저자 천명관 작가의 말에 따르면 각각 근대와 탈근대의 상징체인 두 세계는 보통 앞선 세계의 부정과 파괴로 새 시대가 열리는 방식으로 대립되는데, 고래 속의 두 세계는 대립된다기 보다 대칭되고 단순 인과관계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전근대의 노파에서 마지막 산업화 초입의 에필로그와도 같은 스토리까지 그 모든 세계와 시간이 다음으로 넘어가며 이어지고 순환되는 것처럼 그려지는 것 같다. 그건 천명관 작가가 다소 성차별적 발언일지 모르겠다고 직접 사족까지 달며 설명한 “남성들보다 영적인 존재, 밝혀지지 않은 마이너리티하고 신비스러운 존재”로써의 여성에 대한 작가의 단단한 오해와 오류로 만들어진, 세상에 없을 것 같은 이질적 요소들로 수집된 여성사사의, 부정할 수 없는 힘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한편, 벽돌장인이자 벽돌의 여왕으로 칭송된 춘희의 행적을 추적하던 대원들에 의하여 세상 밖으로 드러날 것만 같았던 두 인물의 이야기는 노파의 딸이 키우던 벌에 대원 한 명이 쏘여 사망하게 되면서 세상 밖으로 드러나지 못하고 춘희 죽음도 끝내 미스테리로 남는데, 그리하여 그녀들의 서사는 끝이 아니라 여전히 다음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부두, 평대, 공장 그리고 다음의 장소 어디에선가 치열하게. 전혀 다른 이야기로 살고 있을 누군가의 이야기로. 초능력자들만을 위한 야만의 시대에 작별을 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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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이미지 : 문학동네 <고래>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