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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조 Sep 24. 2023

한 달만에 방문 그리고 순천외곽으로

[일기] 간헐적 순천살이 (20)

순천에서 서울로 올라온다는 의미의 '서울행'이 캘린더에 마지막으로 지난 8월 20일이라고 표기되어 있었다. 엊그제(22일 금요일) 내려왔으니 한 달만이다. 추석연휴를 가족들과 순천에서 보내기로 하여 어쩌다보니 조금 늦어진 '순천행'이었다. 또다시 버라이어티한 가족여행을 앞두고 어제는 남편과 조금 멀리 나가보기로 했다. 운전을 못해 기동력이 떨어지는 우리는 매번 너른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남편이 지역분께 소개받은 정육식당을 점심메뉴로 정하고 그 김에 순천에서 북단에 위치해 구례와 접해있는 황전면의 괴목이라는 지역에 다녀왔다. 34번 버스를 타고 순천시내를 벗어날수록 괴괴한 적막의 밀도가 깊어졌다. 버스 안 좌석은 그래도 가득 찼는데, 대체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고 버스운전기사 아저씨가 살뜰히 살피는 매우 느리고 운행구간이 긴 버스였다. 이 버스를 타고 몇개의 쇠락한 마을과 폐역(운행이 중지된 전라선)들을 지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철길을 달리는 녹슨 2량짜리 무궁화호와 그보다 길고 빠르게 지나가는 SRT 열차 한대를 본 것 같다. 괴목삼거리에 내릴 때는 목적지가 같았던 할머니의, 최소 3인이 이고 짊어져야할 짐보따리들을 남편과 함께 내렸다.


느티나무 아홉그루가 있었다는 지명 유래에 따라 괴목은 느티나무'괴'에 나무 '목'을 쓰며, 이곳이 속한 황전면에서 번화한 축에 속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남편에게 이 지역을 소개지켜준 분은 황전면에서 인접한 월등면에서 사셨고 그곳에서 부모님이 크게 슈퍼를 운영하셨다고 했다. 월등면은 복숭아로 유명한 곳으로 현재도 친인척분 중 누군가가 복숭아 농사를 하고 계셔서 남편의 지인분은 복숭아철이 되면 박스로 받아다먹는다고 하여 나의 부러움을 샀다. 순천시내에서 이곳으로 향하며 보았던 몇 개의 폐역과 마찬가지로 괴목역 역시 여객선 운행이 중지된 역이었다. 다른 전라선 역들에 비해 가장 최근에 운행을 중단한 곳이라곤 하나 그때가 2010년이니 꽤 오랫동안 통행의 제한이 따랐던 곳인 테가 났다. 한때 인근면까지 통틀어 가장 번화했다는 괴목삼거리는 요란한 간판만 치장되었을뿐이었는데, 가까이 가게내부를 들여다보니 슈퍼며, 식당이며, 잡화점이며, 곡물집 등이 여전히 운영중이어서 문닫힌 놀이공원마냥 스산한 기운이 감돌진 않았다. 그래도 여전히 오일장이 열린다는 걸 보니 인근 지역주민들이 여전히 찾는 곳인 모양이었다. 하필 오일장이 열리지 않은 날에 가서 그런지 부산해야할 이 지역의 하나뿐이 없는 시내는 한산한 편이었고 그나마 괴목시장 앞 국밥집 안과 밖으로만 방문객들이 조금 북적거렸다. 인근 지역 주민 외 알 길 없는 이 쇠락한 도시가 난데없이 대중의 주목을 받은 적도 있으니 백종원의 삼대천왕인지에 괴목시장 옆 형제정육식당이라는 곳이 소개되면서다. 이곳엔 유달리 정육식당이 많았고, 괴목시장은 나무장이라고 별도 표기되어 있을 만큼 나무공예를 특화한 곳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국밥과 고기를 먹으러 일부러 찾는 곳이었다.


우리는 남편이 지역분에게 소개받은 다른 정육식당에 갔고, 다른 곳보다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다른 국밥집에 비하여 식당내부는 한산했다. 그곳은(다른 곳을 안가봐 모르겠지만) 꼭 숙성한 회를 그 자리에서 잘라 내주는 것처럼 바로바로 썰어주시는 식당이었다. 우리는 삼겹살 2인분과 순대국밥 하나를 시켜 나눠먹었고 이곳의 특이점이라면 국밥에 잼피를 넣어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왜인지 가공되지 않은 잼피가루를 본 것 같았고 레몬그라스처럼 향긋한 향이 났다. 삼겹살은 정형해 냉장보관된지 얼마 안된 것인지 색이 평소 보던 것보다 더 붉고, 조직이 단단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다시 순천시내로 돌아갈 때는 한정거장 걸어 괴목역 정거장에서 33번 버스를 탔고, 부러 괴목을 찾아 소고기를 떼고 돌아간다는 할머니와 함께 탔다. 이 이야기는 이미 버스에 승차해 있던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걸 엿들어 안 내용이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엔 좀 졸았다.

괴목의 정육식당 중 하나인 <돼지가든>, 한쪽은 작은 정육점 주방같이 세팅되어 있었다. 잼피가루는 초록빛을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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