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빈조 Mar 08. 2023

근사한 날

[일기] 2023년 여성의날

그러고보니 오늘은 3.8여성의날이었다. 나는 사실 점심이 한참 지나고서야 이날을 자각했다. 어느 카톡 대화방 예상치 못한 응원의 문구를 마주하고서였다. 나는 한참 그것을 읽고 보다가 낯선 감정으로 어색한 답신을 남기고, 환대와 존중과 배려와 관심 그리고 애정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하는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꽤나 멀어져있다는 자각을 했다. 그러니까 이날은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나의 주요 커뮤니티 안에서 꽤 중요한 날로 다뤄지는 날 중 하나였고 그리하여 이날을 기점으로 몇날전부터 관련 행사 소식들이 무심결에 들려오던 곳으로부터 아득히 멀어진 기분이 든 것이었다. 나는 이날이 되면 강남역의 신당역의 텔레그램방의 어느 상사와 함께 타고 있던 차 안의 그녀가 나일 수 있다는 감각 속에 하루를 보내고, 헬조선이라고 염세하고 마는 더 많은 날 중에도 하루쯤은 아이들이, 장애인들이, 여성들이, 성적소수자들이 반정립이 아닌 정립된 자존을 평화 속에 유지하는 날을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나는, 피해자가 엄연하게 살아있음에도 국익과 실용이라는 명분으로 극일의 정신승리가 가능한 인물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작용하고, 혐오와 차별의 언어가 일상적 언어로 지배되는 와중에 이성과 지성의 비평언어가 사라진 곳에서 여전히 더 많은 날 헬조선이라고 염세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환대와 존중과 배려와 관심 그리고 애정 따위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 상상하지 못하는 현실주의자이자 비관론자에서 한치의 이동이 없는 완고한 태도를 유지중이다. (어쩌면 더더욱 비관론으로 이동했을수도) 


그러나, 관심과 배려와 존중과 애정을 근간으로한 나의 사회적 배후지로부터 멀어져 이기만 남은 얇팍한 자아를 부여잡고서야 나는, 그냥 닥치고 낙관, 무턱대고 희망 이란 걸 품어보는 하루 그리고 그날을 기념하고 기리는 행위가 꽤 근사한 시간을 나에게도 선사해왔다는 걸 그리고 나머지의 염세적 나날을 그럭저럭 살게 한다는 걸 처음으로 깨닫고 있다. 그러므로 내년에는 좀더 근사해볼테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가 없는 기혼자의 아이가 있는 여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