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 - one> #아는여자 ③
“저기 저.. 나인? 저.. 민지 엄마예요”
몇 번의 시도 끝에 성공한 착신이었음에도 여전히 상대는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한 듯 헤매고 있었다. 서로를 닉네임으로 호칭하는 이곳 사내 문화를 존중한다 하더라도 그 문화 밖의 그녀가 딸의 직장동료를 이름도 알지 못한 채 닉네임으로 호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거였다. 시 담당공무원은 실제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지느냐는 식으로 공공연하게 딴지를 걸었고 어느 협력업체의 담당자는 협의할 내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닉네임 또는 성과 직책을 번갈아 불러 쓰곤 했다. 그녀에게는 그런 선택지도 없었다. 더군다나 그녀는 자신을 누군가의 엄마로 소개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아보였다. 민지의 말에 따르면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도 단 한번 우산을 들고 학교 앞으로 나와 본 적 없는 그런, 일반적이지 않은 엄마였으므로.
상대의 부름에 바로 응하지 못하고 있는 건 사실 나인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관등성명 후 아무런 말이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수화기를 들고 한참을 말이 없는 꼴이 되었다. 나인이 상대의 부름에 선뜻 화답을 하지 못한 건 어떤 차가운 직감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나인은 무엇에 앞서 그 한기를 지워 보려 무던히 애를 쓰고 있는 중이었다. 흩어져있던 수 가지의 증좌들이 퍼즐조각처럼 들어 맞아 파국이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는 것 같았다. 치밀하고 능동적인 상상에 더해 온 몸의 촉수들이 유일의 결말로 치닫는 중이었다. 머리위로 먹구름이 잔뜩 낀 것처럼 온통 어둠 속에 갇힌 것 같다. 나인은 꼭 털어 내면 떨쳐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머리를 흔들어댔다. 그것도 모자라 머릿속으로 자신을 꼬집어 뜯고 쥐어박았다. 그렇게 자기부정을 거듭할수록 반드시 그렇게 되어 질 일처럼 왜 확신은 더욱 밀려 드는 것인지. 나인은 머리를 흔들고 쥐어박고 꼬집어 뜯고 불어난 확신을 마주하는 짓을 하고 또 했다. 드디어 그건 확신이었다. 찬 기운이 몸 내부로 혈관을 타고 퍼져 흘렀다. 머리에서 진동인지 소름인지가 전율처럼 오르는 걸 느끼고는 눈앞이 잠시 하얘졌다. 나인은 눈을 감고 오른손으로 미간을 눌렀다.
민지는 랄라의 조언을 받고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었다. 랄라는 지인들에게 물어 소개받은 병원 정보를 민지에게 전달했다. 민지가 실제로 그 병원에 다니는지는 랄라도 나인도 알려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병원 이름과 추천받은 의사 이름, 연락가능한 전화번호와 특징까지 꼼꼼히 적힌 메모지의 끝모서리를 만지작 거리며 한동안 내려다봤다는 것만은 알았다.
“저는 전 직장에서 리더십 바뀌고 조직개편될 때 6개월 정도 상담 받은 적 있어요. 여기 다들 그런 경험 있을 거에요. 이 바닥이 사람들 이상하게 만드는 그런 데잖아요”
민지의 안색을 살피던 랄라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랄라는 그래도 민지가 자신의 정성을 알아줄 것이라는 약간의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인은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는 랄라의 얼굴이 조금 꺼벙해보였고 그런 그녀가 안쓰러웠다. 오래 관계를 맺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언제나 적당한 거리를 두는 편인 랄라는 몇몇 사람들에게는 피하고 싶은 상대였다. 조직 내 껄그러운 이슈를 기필코 공론으로 만드는 역할을 대게 그녀가 했고, 선배들과의 언쟁을 피하지 않는 똑똑하고 강단 있는 중간관리자였다. 그녀와 대거리하는 것이 본인에게 득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중 현명한 편에 속하는 축은 위장술 따위 없는 집요하고 악랄한 저격수라도 만난 것처럼 그녀를 피해 다니며 드세고 골치 아픈 후배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후배들에게도 그녀는 곁을 잘 내주지 않고 원칙을 중시하는 무서운 선배였다. 요령껏 일하고 싶은 후배들은 그녀가 단도리만 있고 유도리가 없다고들 흉을 보고 다녔다. 반면 되려 그녀와의 관계가 어렵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는데 나인이 그런 경우에 속했다. 그런 축의 사람들은 앞뒤가 다르지 않고 뒤끝 없는 사람이라고 그녀를 평가했다. 그들은 정이 많고 생각보다 허술한, 그녀의 이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네. 한번 가볼게요”
접혀있던 방향으로 메모지를 천천히 되접던 민지가 고개를 들어 랄라의 눈을 맞추며 말했다. 언제가부터 티나게 두 사람의 주변을 맴돌던 그녀의, 왜인지 모르게 서늘하고 느린 리액션이었다. 나인은 그순간 랄라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갔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애쓰고 있는 랄라를 보며 여느 때 같지 않게 민지가 미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그녀의 수식 없는 승낙이 그녀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되려 벌주려는 것처럼 보였던 까닭에 나인은 도리어 말이 없어졌다. 다그치거나 꾸중하듯 말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마냥 달래주기도 왠지 싫었다.
“사람들 다 아프고 그래. 자기 자신만 그런 거라고 생각지 말어. 그럼 네가 너무 외로워져”
고민 끝에 한마디를 겨우 하고서 나인은 한마디만 할 걸 아니 아예 말을 말 걸 그랬다는 생각을 두 차례에 걸쳐했다. 그때부터였을지도 몰랐다. 나인이 민지의 감정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기 시작했던 때, 아니 그녀의 감정을 살피는 기능 하나가 둔감해지기 시작했던 때가. 그 뒤로도 민지는 때때로 두 사람에게 티 나게 토라지고 금방 경계를 풀고 찾아와 간이라도 빼줄 사람처럼 굴었다. 그녀가 뾰로통해 보일 때면 한번은 랄라가 가서 말을 걸었고 한번은 나인이 가서 말을 걸었다. 그렇게 기분이 풀어진 민지는 주인만 바라보는 강아지처럼 금방 돌아와 숨이 가쁘게 의미없는 말들을 쏟아냈다. 그런 민지를 랄라는 그러려니 했고 나인은 자주 얄밉게 여겼고 그러다 미운 감정이 솟아오르면 당황하며 후회했다.
“너 자신을 하대하지마. 너를 귀히 여겨야 남도 귀하게 여기게 되는거야”
“니 코가 석자야. 남 걱정하지마. 뒷담화 그거 다 에너지고 정성이다”
나인은 꼭 그렇게 한마디라도 더 해야 이제 직성이 풀렸다. 나인은 민지에게 말을 붙여놓고 나면 이것이 상대를 위한 것이었는지 그저 자기 위안이었던 것인지 헷갈렸다. 그냥 너는 그게 문제야 같을 때가 많았고 그러고 나면 나인은 민지에게서 돌아서며 바로 후회를 했다. 랄라는 그 무렵 그런 둘을 볼 때마다 조마조마했고 셋이 있는 상황은 애써 피했다. 다행스럽게도 상반기 정책연구 공모 사업의 결과가 나온 뒤라 업무량이 많았고 랄라는 힘들지 않게 바쁜 척 하기 어렵지 않았다. 랄라는 자신의 팀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홀로 점심을 먹거나 후미진 곳을 찾아 홀로 담배를 태우는 시간을 자주 보냈다. 랄라는 오래간만에 속도를 내며 진행되는 일에 신이 났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예산계획을 잡고 시와 협의하고 심의를 받느라 늘 그렇듯 1,2월은 공회전 하는 시간을 보낸 터다. 그러다 가끔 나인과 업무협조 차원으로 의견을 나눌 때 건네 듣는 민지 소식이 선선하게 들렸다. 물론 내용은 심각할 때가 많았다.
“몇 주라도 병가를 내보라고 하는 게 어때요? 내가 한번 경영지원실 문의해볼까요?”
랄라가 내놓은 특단의 대책을 나인이 민지에게 전한 뒤 그녀는 제법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인은 오히려 그녀의 독립생활이 살얼음을 걷는 듯 불안했고 그럴수록 민지는 꽤 대범해졌다. 특히 나인에게 더욱 그랬다.
“사람들은 내가 죽어야 알거야. 걔 참 억울했구나 이렇게”
나인은 언젠가부터 그녀에게 조언 같은 말을 더이상 하지 못했다. 대신 민지의 말들이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사람들이 억울한 자신의 심정을 알아주길 바라고 하는 말인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했다.
나인은 수화기 너머에서 끅끅 무언가를 열과 성을 다해 눌러담던 친구 엄마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민지와 때때로 랄라까지 함께인 이 세 장면을 연달아 떠올렸다. 사이사이 새콤달콤했던 기억은 지워지고 딱 그 세 가지만 덩그러니 남았다. 사건의 발생 순서, 말의 뉘앙스, 표정의 변화, 앞뒤 말들의 맥락은 나인의 감정에 따라 각색될 뿐. 조각난 기억은 채찍 같았고 잔혹했다. 나인은 얼굴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단 한마디도 튀어나오지 못했다.
끅끅끅끅 수화기 너머 신음소리가 작아질수록 나인은 그 소리에 집착하고 있었다. 나인은 무릎을 꿇고 몸을 벽에 기댄 채 겨우 삶을 지탱하고 있는 민지의 엄마를 상상했다. 신음소리가 곧 더 멀어지며 쿵쿵거리는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고 그 소리가 조금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나인은 그녀가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있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나인은 그녀가 부여잡고 있는 삶의 소리, 불규칙적이지만 반복되고 있는 그 미세한 소리들에 의지했다. 그녀의 소리를 들으면 이상하게 용기가 났다. 온 몸에 촉수를 세우고 다음의 신호를, 그 다음을 기다렸다. 그리고 얼마 후 둔탁한 소리 끝에 터져나온 응어리를 꺼이꺼이 쏟아내고 있는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인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들고 있던 핸드폰을 놓친 듯 가까운 굉음소리에 섞여 들리던 그녀의 울음소리가 어느 덧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녀의 목맨 소리가 머릿속에 가득차며 그녀의 흔들리는 어깨가 눈에 들어와 보였다. 나인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려다 말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계속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다그치면서.
“어머니… 어머니…”
무력하고 나른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나인은 두 번에 걸쳐 그녀를 호명했다.
“혹시 민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가요?”
그녀에게 가닿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인은 담담히 물었다. 전혀 짐작할 수조차 없는 일을 묻는 것처럼.
커버사진: Unsplash의Zulmaury Saavedra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