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 - one> #아는여자 ②
나인은 민지의 엄마를 딱 한 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민지의 엄마가 민지를 만나러 차를 몰고 회사로 찾아왔을 때였다. 단지 담장 안 건물들 주변 여기저기로 마련된 옥외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기다릴테니 천천히 일을 다 보고 내려오라는 엄마의 배려넘치는 요청에도 민지는 짜증스런 투로 극구 말리고 들었다. 대신 단지 정문 앞 도로변에 차가 잠깐 정차할 틈에 자신이 얼른 탈터이니 엄마의 도착시간을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민지는 엄마에게조차 관계의 면을 허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슬아슬한 경계면 위에 상대를 세워두고 자신과 상대 양쪽 모두의 불안과 조급을 자처하는 타입같았다. 민지는 퇴근 후 나인과 자신의 자취방 근처 대형 쇼핑몰에서 간단히 요기 하고 언제나 그렇듯 이 사람 저 사람 뒷공론이나 하며 속풀이를 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자 “엄마가 갑자기 온다네. 엄마는 왜 언제나 자기 마음대로인지 모르겠어”라며 구시렁거렸다.
그녀는 자신이 잘 못 하는 일, 그러니까 누군가에게 거절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거나 혹은 받아야할 때면 자신이 엄마의 살뜰한 보살핌과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때때로 방패막이 삼곤 했다. “넌 엄마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니”라는 나인의 응수에 민지는 새초롬한 얼굴로 입을 삐죽거렸다. 그러면 민지는 실제 엄마가 자신에게 얼마나 가혹했는지에 대해서 공들여 설명하곤 했다. 가령 비오는 날 단 한번도 학교로 자신을 데리러 온 적이 없다거나 남녀공학인 중학교를 다니던 때 마니또인 남자친구가 보내온 편지를 찢어버린 일이나 여고시절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친구들과 치고 박고 싸운 일로 학교에 불려온 엄마가 선처는커녕 교칙에 맞게 처리해달라고 선생님께 당부한 일 등이었다. 모두 자신의 모난 면들을 애써 설명하려는 말들이었다. 나인은 그때도 “비가 오면 얼마나 온다고 그냥 한번 그런 일 가지고 단 한번도 없었던 일처럼 오버해 말한다”고 기억의 왜곡에 대해 꼬집거나 “다른 엄마들은 딸들을 공주님 모시듯 키운 줄 아니. 우리 엄마도 우산 한번도 안 들고 나왔어”라고 당신의 경험이 평이한 수준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고 대꾸해주곤 했다. 자신의 모난 성미마저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라는, 누군가 따위에게 이해받을 필요 없다는 뼈있는 대꾸였다.
나인의 눈에 민지는 자기 방어 차원으로 단련한 자신의 못난 모서리 부분들이 주변의 좋은 사람들마저도 다치게 할까 자주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세계는 온통 위험요소로 가득한 곳 같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외부의 작은 도전에도 금방 내상을 입는 무르고 여린 사람인 편으로 보였는데, 그렇다고 그녀가 자기만의 세계에 머리를 꽁꽁 싸매고 들어앉아 있기만 한 것처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안전장치 하나 없이 꽤나 도전적인 모습으로 외부세계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거나 첨벙하고 그 세계로 뛰어들어볼 때도 제법 있어보였다. 물론 그녀의 이런 외부세계에 대한 경험이란 것이 오욕과 굴욕, 자괴와 회의 속에서도 오랜 시간 진득하니 관계를 맺어보는 것은 아니었고 일회적인 이벤트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하여 가능한 도전일지도 몰랐다.
나인도 그녀와 같이 뾰족한 경계 위에 서 있을 때가 때때로 있었다. 그건 피신하듯 그곳에 서 있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의 개성을 지운 채 패잔병과 같은 모습으로 외부세계의 질서에 맞춰 착실히 살아 내고 있다고 느껴질 때 도망치듯 그곳에 서 있는 것이었다.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저 안쪽을 바라보면 투박한 자신의 본 모습이 보기 좋게 깎여있는 것도 같았고 한편 세상이 한결 수월한 공간처럼 보였다. 그렇게 마음이 여유로워져서는 나인은 타협 없이 경계 위에 서있는 민지에게 꽤 관대해졌다. 나인은 자주 그녀에게 “저 세계 별 거 아니야”라거나 “네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 너 그다지 유별나지도 않아”라고 말을 해주곤 했다. 그러므로 나인은 민지가 자신을 꽤 의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고 속으로는 벌벌 떨면서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척 할 때도 자주 있었다. 자신도 공동체 밖으로 내몰리는 처지라는 걸 숨긴 채.
“뭐 우리 별 거 안 하려고 했잖아. 별 거였다 하더라도 엄마가 왔으면 가야지”
나인은 우리 사이의 일상적 거절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나직하게 말했다. 그리고 부자연스러운 몸짓을 그대로 노출하고 서둘러 퇴근하는 민지를 굳이 뒤따라 나섰다. 지하철을 이용해 통근을 하는 나인이 평소와 다른 방향으로 향하는 자신을 주저 없이 따라나서자 민지는 더욱 촐싹거리며 맥락 없이 말을 꺼내고 말끝을 자주 흐렸다. 그렇게 정문까지 민지를 따라나선 나인은 서둘러 차에 올라타는 민지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민지의 엄마를 대면했다.
“엄마. 뒤에 차 기다린다. 얼른 출발해. 나인 내일봐요”
“안녕하세요 어머니. 저는 나인이라고 해요”
원치 않던 시간이었던지 처음 대면하는 두 사람 사이를 이을 말 한마디 없이 안절부절 하며 서둘러 출발하라고 재촉하는 민지를 가운데 두고 허리를 굽히고 선 나인이 민지의 얼굴 건너 그녀와 꼭 닮은 초로의 여성을 똑바로 응시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민지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경황없이 이렇게 보네요. 우리 민지 잘 부탁해요”
“엄마가 내 부탁을 왜 해!”
“네 조심히 운전하세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 누구의 얼굴도 쳐다보지 않은 채 다급하게 안전벨트를 매며 서둘러 말하는 민지를 아랑곳 않고 꼭 이것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두 사람은 각자 몸과 목을 숙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동태를 살피며 눈으로 인사를 나눴다. 출발을 재촉하는 민지를 곁눈질로 흘겨보던 나인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뵈어요 라는 인사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것이 민지 엄마와의 첫 대면이었다.
그러고 얼마 후 기회를 엿보던 민지가 탕비실에서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받아내는 나인에게 다가와 엄마가 나인과 먹으라고 반찬을 해주셨다며 자신의 자취방으로 곧 초대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엄마의 고향이 바닷가라 생선조림과 지리탕을 끝내주게 하신다며 다음엔 그것들도 선보이겠다고 덧붙였다. 엄마에 대한 긍정이 낯선 듯 그녀가 말하는 투가 투박하고 얼얼했다. 후다닥 말을 끝낸 민지가 나인의 눈치를 살폈다.
“엄마가 해주신다면 당연히 가서 맛있게 먹어야지. 근데 너 왜 엄마한테 그러냐. 너 그거 그냥 세상 탓할 가장 만만한 대상 찾는거야. 그거 너 여성혐오야 너”
“아니 뭐 여성혐오까지 가…”
나인은 블랙커피 봉지를 두개를 뜯어 900㎖ 대용량 텀블러에 붓고는 스탠 재질의 스틱으로 휘휘 저으며 말했다. 꽤나 대범한 모션이었다. 그걸 보던 민지가 꽁무니를 빼고 뒤돌아 탕비실을 서둘러 빠져나갔다. 민지가 강할 땐 나인이 져줬고 나인이 강하게 나올 땐 민지가 저만치 물러났다.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민지의 뒷모습에 대고 “야 너 그거 아주 나쁜 버릇이다 너”라고 한소리를 더하고서야 나인은 커피를 젓는 것을 멈췄다. 그리고 곧 성사될 것 같던 재회는 세 사람 모두의 바람을 비켜갔다.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