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신이 알겠죠

소설 <PART - one> #표적 ①

by 수빈조

“누구누구 알고 있어요?”


랄라는 처음 대화를 나눠보다시피 하는 율무에게 처음 건넨 말이 고작 이 말이라는 사실이 꽤나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물론 지금까지의 대화내용이란 것이 이 비극을 근본적으로 초래하고 있긴 했지만 그러했다. 긴히 부탁드릴 일이 있다는 율무의 뒤를 따라나설 때만 해도 예상치 못했던 전개였다. 이력의 대부분이 여성운동단체 활동인 랄라는 다종다기한 삶의 경로를 거쳐 온 다른 센터직원들 사이에서 이주여성 지원단체에서 활동하다 센터로 이직한 율무에게 표 나지 않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력의 대부분이 여성운동단체 활동인 랄라는 다종다기한 삶의 경로를 거쳐 온 센터직원들 사이에서 이주여성 지원단체에서 활동하다 센터로 이직한 율무에게 표 나지 않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음에도 그에 반비례하게 그녀와 거리를 두고 지냈는데, 괜스레 예전 활동을 들먹여가며 알은 체 하는 것이 비위에 맞지 않는 것이었고, 그 외에 다른 관심사로 말을 건네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해서였다.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말을 잘 건네는 편인 나인에 비해 랄라는 낯가림도 심했다. 스스로는 그것을 촌스러워 그런다고 사람들에게 곧잘 말하곤 했다.자신의 팀에 속한 팀원도 아닌 그녀가 비슷한 이력을 가진 선배에게 하는 긴한 부탁이란 것이 무엇일지 랄라는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을 느끼며 율무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단지 안 가장 내밀한 곳, A동 센터사무실 같은 층 다른 측면 가장 외진 장소에 위치한 여성휴게실의 아랫목에서 율무와 마주하고 있었다.


랄라는 모법인에서부터 알고 지낸 나인을 제외하고 센터의 창립멤버와 같은 지금의 직원들을 알게 된 지 길게는 1년 2개월여 짧게는 6개월 정도 되었을 뿐이었다. 그 중에는 율무의 경우와 같이 대화조차 제대로 나눠보지 못한 사람도 예닐곱쯤 되었다. 행정수도 이전에 따라 S시에 정주하던 공기관들이 이전을 마친 후 비어진 땅의 활용에 관해 꽤 긴 시간 표류하다 끝내 이곳에 ‘창의테크밸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건 불과 3년 전쯤이었다. 이 ‘창의테크밸리’를 관리 운영하는 센터는 지난해 6월 공식 오픈하였고, 그 해 1월에서야 민간의 창의적 방식을 빌리겠다는 의미의 창의테크밸리 행정사무 민간위탁이라는 시의 결정이 있었다. 그러니까 센터를 S시 직영이 아닌 전문 기업이나 단체에게 위탁하여 운영하겠다는 시의 결정이 있은 후 센터 오픈까지 불과 6개월의 시간이 걸린 것이었다. 수탁기관 선정 절차와 조직 세팅, 사업계획 수립, 개소 행사 준비까지 그야말로 후다닥 해치우듯 진행된 일이었다. 시는 위탁 결정이 난 후 밀린 숙제라도 하듯 위탁 절차가 진행되기 전부터 센터의 수탁기관으로 최종 선정된, 당시 시민사회운동 진영 내 신성과 같았던 시민사회단체였던 ‘씽’(Social Innovator Network Group)의 사무국장이었고 위탁 계약 절차가 마무리된 후 센터의 초대센터장이 된 K를 불러 ‘창의테크밸리’의 중장기 운영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설계했다. 단지의 주요 기능은 ‘불확실한 미래 새로운 사회를 상상하는 미래혁신 생태계 조성’이었고, 단지를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하도록 되어 있는 센터는 새로운 산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하는 스타트업, 각종 지원기관, 소셜벤처, 시민사회단체 등 소셜섹터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설치되었다. 센터의 풀 명칭은 ‘창의와혁신을위한모든지원센터’였고 그보다는 ‘창의센터’로 더 많이 불려졌다.


그 무렵 ‘씽’에서 미들급 활동가로 역할을 하던 나인과 랄라가 K의 업무 백업을 하며, 센터 수탁을 위한 제안서 작업에 참여했었다. 당시 같은 단체 활동가였던, 훗날 K가 센터장을 사임할 때 동반 사직한 2명의 실장도 이 시절을 함께 했었다. 센터는 설립 이후 내내 삐그덕거렸다. 작은 나사하나가 빠진 것인지 중요한 부품 하나가 고장 난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없는 채, 궤도 진입을 위한 고출력을 내둥 요구받고 있었다. 내부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외연은 날로 넓어졌다. 랄라는 가끔 이 곳이 마법처럼 아무런 외부동력이 없이 홀로 팽창하는 것만 같은 기분에 어리둥절해졌다. 누구의 의지에 의한 것도 아니었고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지도 알이 외연은 계속 넓어지고 팽창되었다. 센터 설립 1년 차 청소, 기계, 보안 등의 시설관리 인력을 제외하고 센터장 포함 14명이던 사무직 인력이 그다음 해엔 32명으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직원들의 이력도 각양각색이었다. 네 번에 걸쳐 난 구인공고에는 120명 정도가 지원했다. 낚시용품 온라인판매회사에서 MD로 일했던 사람,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다 사업을 접고 올라온 사람, 작은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다 직업을 바꾼 사람 등 지원자들의 이력은 그야말로 다채로웠다. 이들 중 일부가 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센터로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삼분의 일은 랄라나 나인과 같이 시민사회운동 또는 넓게는 소셜섹터에서의 활동 구력이 있는 사람들로 채워졌고 모두는 물과 기름처럼 겉돌았다.


시민사회운동진영도 당사자 운동에서 구체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와 솔루션 중심의 운동으로 확장되고 있는 와중에 자신과 유사한 활동 경력이 있는 율무가 랄라의 눈에 포획되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랄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녀의 긴한 청을 듣는 동안 ‘왜 하필’이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떠올렸다. 첫 번은 왜 하필 나에게였고 두 번째는 왜 하필 그 인가였으며 세 번째는 왜 하필 민지 인가였다. 구설은 사건의 본질보다 그 외피들을 먹고 자라므로 랄라는 듣는 내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동시에 자신의 이 불온한 생각을 율무에게 들키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단속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조심에 조심을 더해 처음 나간 말이 어디까지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앞 뒤 설명을 잘라먹고 나간 말이었고 전적으로 문제해결을 위한 말이었지만 정나미는 없어 보였다.


“제 말은, 정황이 명료하게 정리되게 하려면 이쪽저쪽으로 말이 번지고 보태지는 상황이 없는 게 좋으니까.. 오해는 말아요”

“네. 오해 없이 들었어요. 민지와 저, 모모만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자신이 알겠죠”


왜 하필. 랄라는 다시 한번 절망했다. 사건은 우리들의 통제 밖으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갈 것이 너무나 자명해 보였다.



커버사진: UnsplashJoshua Hibbert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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