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중간 관리자

소설 <PART - one> - # 표적 ③

by 수빈조

랄라는 왜 하필 나일까 라는 자문에는 금방 답이 나왔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며 겪었을 갖가지 경우들로 단련되고 무장되었을거라 기대되는 사람, 해당 건에 있어 피아 구분이 확실한 사람, 신뢰할 수 있는 관계자본으로 별도의 신원보증이 필요없는 사람, 여성단체 활동 이력을 가진 여성 중간 관리자, 그 사람이 바로 랄라였다. 랄라는 이런 면으로 도드라졌다.


그래서 랄라는 여성후배들에게 자주 소환되는 사람이었다. 랄라는 현명하고 똑똑하게 대응하지 못한 것, 행동거지를 더 단속 하지 못한 것 등으로 자책하는 후배에게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을 상대할 때는 누구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기 어렵다며 자책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주는, 든든한 동성선배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위로만 하는 선배도 아니었다. 찝쩍대는 남성직원 떼어내기, 상대적으로 연령이 낮은 여성직원에게 “러블리한”, “호의적인 웃음을 띤”과 같은 서비스적 태도를 요청하는 고객을 찾아가 센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다시 정확하게 설명해주기, 밥 먹자 술 먹자 요청하는 입주그룹 대표에게 팀장인 자신이 갈터이니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시면 자기에게 하라고 말하기, 아니 그보다 업무시간에 이야기하시면 안 되냐고 되묻기, 거기에 더해 술자리에서 일어나는 가벼운 스킨십과 잘못된 언행은 징계사유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기 등 해결한 사건의 사례도 숱했다. 누군가를 누군가에게서 떼어내야 한다거나 팩트에 기반한 그러나 상대방이 듣기에 불편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경우 램프의 지니처럼 랄라가 등장했다. 어느 덧 랄라는 등장만으로도 주의를 환기시키는 사람이었다.


한번은 회의 후 저녁식사를 하고 다 같이 헤어진 줄 알았는데 그 다음의 자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일행 중 랄라만 모르고 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러니까 그 두 번째 자리에 일행 중 랄라만 유일하게 쏙 빠진 것이었다. 술자리를 주도했던 팀장 한 명이 변명이랍시고 한 소리가 랄라를 더욱 기막히게 했다. 그 말은 “랄라 팀장은 이런 거 싫어하니까”였다. 남 생각 해주는 척 하는 그 무례하고 단절된 말도 끔찍했지만 ‘이런 거’라고 뭉뚱그려진 그 말이 랄라는 더 싫었다. ‘그냥 퇴근 후 뒷풀이에서까지 누구 눈치 보며 술 마시고 싶지 않아서요 라고 해 이 바보야’를 속으로 되뇌며 “이런 게 뭔데요?”라고 되받아치고 난 후 부터는 남성직원들과는 저녁식사도 잘 안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랄라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불편한 사람인 것에 별다른 불만이 없었다.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는 곳에는 응당 필요한 사람이었고 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역할을 맡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사회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급진적인 여성단체에서 장장 7년의 세월을 보냈으니 성미가 그랬고 팔자려니 했다. 랄라는 그보다 이 조직에서 몇 없는 여성중간관리자에 속하는 나인이 누구에게나 편하고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기를 즐기며 문제해결자로써의 역할을 나눠하지 않는 것이 때때로 불만이었다. 그러므로 왜 하필 나일까 라는 물음은 적확하지 않았다. 그보다 나인이 아니고 왜 하필 또 나만 인가에 더 가까웠다. 그만큼 사안이 중하고 컸다.


나인과 랄라 모두 센터 합류 이전부터 센터장 C와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학자이면서 동시에 시민사회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던 C를 나인과 랄라 모두 자문위원으로 모시고 일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나인의 경우 센터로 파견오기 전 ‘씽’에서 근무했던 기간과 C의 연수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그를 글로만 접해왔을 터이지만, 사람에 대한 편식이 없고 까탈스럽지 않은 성미 덕에 자신보다 한참 윗줄의 어른들에게도 툭툭 편하게 말을 잘 건네는 편이어서 특히 남성리더들에게 소위 챙김 받는 비영리단체의 실무자였고 거기다 센터 모법인의 현재 이사진과도 비교적 가깝게 지내오고 있었다. 율무는 나인의 이런 점 때문에 선뜻 도움을 요청하지 못 했을 테지만, 랄라는 이번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나인이 꼭 함께 해야 한다고 율무에게 말할 생각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문제의 당사자가 하필 센터장 C 였기 때문이었다.



커버사진: UnsplashGustavo Zambelli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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