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 - one> # 표적 ④
창의테크밸리를 관리, 운영하는 창의센터의 수탁기관인 ‘씽’(SING, Social Innovator Network Group)은 센터를 위탁 받을 당시 설립 4년차의 시민사회단체였다. 노쇠해가는 시민사회운동 진영 내 12명의 어르신들이 발기하여 만든, 당시에는 보기 드문 방식의 신생 단체였다. 정치권력으로 편입되는 인사들이 대거 배출되고 몇몇 이들의 위선적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며 제도권력 견제와 제도 개혁을 주도해오던 시민사회운동 진영에 대한 대중 신뢰 기반이 급격히 붕괴되어 가던 때였다. 시민들의 능동적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전업 활동가 중심의 활동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민사회 내 자구적 평가와 함께 다양성에 기반한 새로운 시민사회운동으로 한창 생태계 분화가 일어날 무렵 ‘씽’은 후발주자격으로 등장한 비영리단체였다. 그러나 ‘씽’은 옛 관습을 버리지 못하고 그 흐름에 역행하듯 등장한 까닭에 설립 후 한참동안 진영 내 꽤 큰 관심을 받았다. 내심 누군가 총대를 매고 진영의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마냥 뭉근한 관심이었다. 마치 쇠락한 골목길에 낡은 건물에 새로 들어선 낯선 레트로 카페처럼 동네주민들이 가게 앞을 기웃대고 고객이 얼마나 드는지 살피는 격이었다.
‘씽’은 이 바닥 사람들에게 한동안 비영리·공익활동을 하는 개인 또는 소규모그룹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비영리단체로 소개되었다. 지역정치인을 키우고 정치적 세력화를 도모하거나 특정 계층의 시민권 투쟁이나 대안적 제도운동과 같은 가치로 결속하기보다는, 개인 욕구 기반의 자발적 비영리활동 또는 개인과 소규모그룹 이라는 룰만 정해둔 유연하고 느슨한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창립 직후 어느 독지가의 후원과 대표의 개인 인맥에 따라 모은 얼마간의 후원금으로 M구 주거지역 내 어느 낡은 건물 2, 3층에 공간을 빌려 카페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씽’이 막 설립될 당시 K는 사무국장이었고 창의밸리의 설치와 운영조직 설립 과정에 참여한 덕으로 이후 창의센터의 초대센터장이 된다. ‘씽’의 대표 김승곤은 시장 Y의 계보를 잇는 시민사회운동계 대표 인사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는 인물로, 별칭 없이 성을 뺀 승곤으로 활동가 사이에서 불려졌다. 한국 시민운동사 절정의 시기,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시민사회단체 중 하나로 꼽히는 민들레재단의 창립멤버로 참여했던 승곤은 2008년 총선 당시 서바이벌 형식으로 차세대 풀뿌리 정치인을 발굴하는 선거기획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그 다음 총선에서 제1 야당인 민주연합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물망에 올랐으나 진영 내부 권력투쟁에서 밀려 최종 명단에는 오르지 못했다.
한편, 2, 3층 합쳐 60평이 조금 넘는 ‘씽’의 공간은 시민단체 활동가 몇몇의 제2의 사무실 즉 코워킹스페이스로 활용되었고 지역주민들에게는 요상한 사람들이 모이는, 가성비 좋은 카페로 각광받았다. 오픈 후 이곳은 한동안 시민사회활동가들로부터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받았고 동네주민들에게는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씽’이 야심차게 시도한 이 공간 사업은 가치와 경영의 지속가능성 측면 모두에서 평타 수준을 유지중이라는 관계자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 활동가와 주민이라는 두 이질적 그룹을 한공간에 모아내는 데는 확실히 실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이 공간이 새롭게 조명받기 시작한 건 전국동시지방선거 국면을 지나면서였다. 선거철 시민사회진영이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후보별 공약 검증은 네거티브 공방 속에 묻혔고 주목할만한 풀뿌리 정치인도 발굴해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지금은 뭘 해도 안 된다는 비관론이 시민사회그룹 내로 금방 스며들었다. 그럴 때 ‘씽’은 선거일 한 달 전 구청장 등 지자체장 후보들에게 공약을 제안하는 이벤트성 프로그램을 2층의 카페에서 6일 동안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지역주민들이 커피를 마시며 동네 불편과 희망사항 등을 이야기하면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이야기를 듣고 정책으로 정리하거나 이미 있는 제도를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매일 같은 시간에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되는 되었고 프로그램 명칭은 정당과 축제라는 의미가 혼용된 ‘Party Party’ 였다.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들은 주민들이 요청사항을 적은 포스트잇을 페이퍼보드에 붙이고 테이블에 둥그렇게 둘러앉은 사람들끼리 최우선 정책 과제를 뽑도록 했으며 테이블별 대표자들이 선정이유를 발표하고 난 후 7개 테이블에서 모아진 정책들을 또다시 큐레이팅해 우선순위로 정해보도록 유도했다. 일상에서 해보지 못한 낯선 경험인 탓인지 참여하는 주민들의 표정도 좋았다.
휴일이 많은 5월에다가 나들이 하기 좋은 화창한 날씨 덕에 카페에는 사람들로 온종일 북적거렸다. 마지막날로 다다를수록 행사에 대한 조금은 과장된 긍정적 평가들이 풀뿌리·지역운동 활동가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이 소문에 기름을 부은 건 방송을 타면서였다. 새로운 뉴스거리를 찾던 어느 지상파 방송사에서 프로그램 진행 장면을 담아 보도했고 엄마 따라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 한 어린이가 그린 그림과 발언이 방송을 타면서 화제가 된 것이었다. 이 아이는 배가 줄에 큰 초승달에 걸려 바다 위에 떠 있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들고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이 집으로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화면 하단 자막에는 이나은 만동초등학교 4학년 이라는 글귀가 적혔고, 그 아래로 S시민단체 주관 공약청원 행사 다양한 주민 참여 이끌어 라는 설명 문구가 따라 붙었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Party Party’는 14개 자치구 풀뿌리·지역운동단체의 총 34개 공간에서 진행되었다. 관련 내용은 주민들이 제안하는 공약집으로 정리돼 구청장 후보들에게 전달되었다. ‘Party Party’의 최초 기획자로 알려진 승곤에게 사례 공유 차원의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는 전반의 과정을 책으로 엮어보자는 출판사의 제안도 있었다. 승곤을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지역 소도시를 지역구로 하는 국회의원도 있었다. 이때쯤부터 승곤은 2년 후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되는 꿈을 구체적으로 꾸었던 것인지도 몰랐다.
‘씽’이 창의테크밸리를 운영하는 시 설치기구의 수탁기관이 될 수 있었던 여러 요인 중 상당수를 사람들은 이 일련의 과정에서 찾았다. ‘씽’은 시민의 일상과 괴리되어 있던 시민사회그룹의 활동 관성을 깨고 시민과 활동가그룹 간 이질의 관계를 엮어내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새로운 소셜 기획 그룹이라는 평가를 오래기간 받았다. 그 국면 정치적 권력 교체와 보궐에 이어 연임에 성공한 젊은 시장은 출근하자마자 급변하고 있는 시민들의 욕구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행정의 관성을 깨야 한다며 새로운 정책 아이디어와 제도 혁신방안을 수립해 가져오라고 시 조직 전체에 하달했다. 두 인물의 이해는 그렇게 맞물렸고 고작 60여평의 공간을 운영해본 파릇파릇한 신생 시민단체가 3만평 부지를 운영하는 시부설기관의 수탁기관이 된 것은 이런 우연의 우연이 겹쳐진 공이 컸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승곤과 시장 Y 간의 친분관계와 이에 따른 특혜시비가 일었고, 설립 4년차 소규모 시민단체라는 수탁기관의 운영 자질과 전문성 논란까지 의혹은 3년간 해소되지도 규명되지도 않은 채 지지부진 이어지다 승곤이 민주연합당의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이름이 오른 뒤 잠잠해지더니 그 해 3월 우여곡절 끝에 결국 ‘씽’이 창의테크밸리의 운영기관인 ‘창의와혁신을위한모든지원센터’의 수탁기관으로 최종 선정된 것이었다. 그리고 2개월 뒤 비례대표 후보 뒷순위였던 승곤은 정당득표율에서 밀리며 결국 두번째 고배를 마셨다.
그렇게 초대센터장이 된 K가 시 관계자들의 의구심과 비협조 속에 부임 6개월 만에 사임을 하고 두 번째 센터장 체제로 들어선 지 다시 6개월이 넘어서고 있었다. 시민사회단체 활동 경력만 이력서에 쓰여 있던 센터장 K와 달리 수도권 소재 대학의 전직 전임교수 출신이라는 이력을 가진 두 번째 센터장 C는 을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자신이 가진 과거의 지위만으로 시 관계자들의 괄시와 홀대를 면할 수 있었다. 당장 센터 운영에도 큰 영향을 미쳤고 랄라도 이를 여실하게 실감 중이었는데, 이는 기안문서의 상부기관인 S시 총괄부서의 승인 속도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이었다.
센터 개소 직후부터 실행할 반년짜리 사업계획안을 세우느라 시의 불승인과 수정요청, 일부승인과 수정요청 등을 반복하며 그야말로 문서 지옥에서 시달리던 센터직원들은 그 해 하반기에는 이듬해 센터 운영 및 사업계획안을 가지고 시와 씨름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은 조직이 랄라는 꼭 10년 이상된 조직마냥 권태로웠다. 센터장 K의 사임의 결정적 이유가 이 과정에 있었다고 센터 직원들 대다수는 생각하고 있었다. 센터장 K가 책임지고 짜오기로 한 전략사업 파트만 뺀 나머지 사업계획안이 올해로 넘어오며 승인 되었기 때문이었다. 말단의 직원을 포함한 센터직원 전체는 목격한 바 없었지만 센터장 K가 이 사업의 사실상 총괄지휘자인 시의 창의혁신국장에게 회의 때마다 매번 추궁만 당하다 사무실로 복귀한다는 걸 분위기로 지레짐작했다.
2017 센터 운영 및 사업계획안이 사업수행의 당해년도 1월이 되어서까지 결론이 나지 않고 표류하자 결국 센터장 K가 사임하는 것으로 사건 하나가 꼭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는데, 그건 리더십 간 갈등이 종식되는 것이기도 했다. 센터직원들은 2016년 내내 시와 수탁기관의 리더십 간 의견의 차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아 에서 어 로 바꾸는 눈속임을 수십 차례 반복하며 문서의 내용이라기보다 형식을 뜯어고치기를 반복했을 뿐이었으니 센터 직원들의 센터장 C의 등장만으로도 그 오욕과 고욕의 시간에서 벗어나는 기분을 느꼈다. 센터장 K의 사임 이후 한 달이 조금 지나 3월부터 출근을 시작한 센터장 C는 상반기 내로 조직을 정비하고 단기 성과를 위한 전략사업을 수립해 하반기부터 본격 실행하겠다고 시 담당부서에 통보했다. 센터장 C의 제안은 단번에 승인되었다. 업무수행을 하면 할수록 무능하다는 프레임 속에 갇힌 기분으로 지난 9개월을 보낸 센터의 직원들은 그제야 숨을 돌리는 기분이었다. 랄라가 느끼기에도 시 담당자들의 목소리도 한층 부드러워진 것 같았다. 높게 우뚝 선 리더십 아래 그늘막에서 안식을 느낀지 얼마 안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터진 것이었다. 공교로웠다.
센터장 C는 비정년트랙의 전임교수로 암묵적 정년 기한을 코 앞에 두고 교수직 사직을 감행하고 이곳으로 넘어왔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퇴직 이후까지 안온한 생활이 보장된 교수직을 포기하고 가시밭길과도 같은 시민사회운동 진영으로 넘어왔다며 민족해방의 선봉에 선 독립투사라도 되는 것 마냥 호들갑을 떨었다. 한편으로는 제도정치로의 진출을 염두해둔 행보라는 추측도 많았다. 밑지는 장사를 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녹록치 않은 자리, 결과에 따라 시민사회진영 전체로 파급력이 큰 중책을 맡은 것이라는데는 대체로 동의했다. 하필이면 그런 그였다.
그러나 랄라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민지였다. 왜 하필. 자기 자신과 센터장 C에 앞서 그녀를 떠올린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왜 하필….
그녀가 이토록 압도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자신에게 심어주었다는 걸 랄라도 그때 처음 알게 된 것이었다. 랄라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자주 긴장감을 느꼈다. 그녀는 어디에나 나서기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고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도 숨김이 없었다. 그녀는 판단이 분명한 사람이었고, 사리분별이 더뎌 자신의 업무에 조금이라도 지장을 미칠 것 같은 타인에게 경시적 태도와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녀의 직속 상사인 P실장에게 보이는 태도가 특히 그랬다. 그럴 때보면 그 둘은 꼭 2인자 자리를 놓고 다투는 천적들 같았다. 그녀를 보며 느끼는 랄라의 긴장감이라는 것은 이 싸움의 끝에 결국 그녀가 이 생태계의 바깥으로 내동댕이쳐져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되는 결론을 내포하는 것이었다.
지난해 사업평가를 주제로 열린 팀장단 회의에서 센터장의 의중을 두고 실장P와 팀장들간에 실랑이가 오간 일이 있었다. 그의 역할은 팀장들이 작성해 낸 사업평가에 대한 센터장의 피드백을 전달하고 당해년도 사업진행 시 이를 반영하게끔 하는 것이었는데, 새로운 사업방향이 정해지기 전까지의 임시방책이었다. 그는 내내 “센터장님 말씀”, “센터장님 지시”라는 말을 문장 앞에 붙이고 있었다. 토달지 말고 무조건 따르라는 의미였겠지만 남의 말을 그대로 따다 붙인 말이라 대체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새로운 사업계획 수립 과정에서 센터장의 언어를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 되도록 구체적인 디렉션을 주려는 민지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경향에 따라 누구는 각자의 해석의 여지가 남겨져있는 실장P가, 어떤 사람은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없는 정확한 디렉션이 있는 민지를 더 선호할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날따라 유독 주눅든 모습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실장P가 못미더워 보인 건 사실이었다. 일의 합목적성이라곤 없는 맹목적 추종만을 요청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문서만 보고 별다른 대꾸없이 실장P에 말을 들었다. 질문을 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어보였다. 그때 삐딱하게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민지가 급기야는 코웃음을 내고 말았고 그건 10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있는 회의실에서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꽤 큰 소리였다. 랄라는 실장P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예상은 빗나갔다. 멈칫하고 말을 잠깐 멈춘 실장P가 입을 앙다물고 코로 숨을 푹 내쉬더니 다음 말을 이어갔다. 민지에게 기울어진 센터장 C의 공덕이 이 공간에서도 가득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랄라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민지가 남성이었다면 어떠했을까를 자주 상상했다. 그녀가 남성이었다면 랄라는 긴장감이 아니라 위압감을 느꼈을 거였다. 그에게 굴복 당했거나 힘에 대항하다 산산이 부서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녀가 그가 아닌 그녀인 점이 퍽 다행으로 여겨지는 한편으론 그녀의 쟁투장에서 그녀가 그가 아닌 점은 매우 안타까웠다. 권력투쟁의 장에선 대체로 여성의 승율이 월등히 낮았다. 랄라는 그녀를 가까이 하지도 지지하지도 응원하지도 않았다. 해야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고 거침없이 자기 주장을 피력하는 똑똑한 여성, 그런 여성들이 미디어에 자주 등장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장삼이사들로 가득한 이 별 볼 일 없는 마을에 그런 여성들은 대게 표적이 되었고, 그런 여성들끼리 몰려다니며 언제든 세력화된 힘을 작동시킬 수 있는 위협적인 세력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그녀에게도 좋았다. 랄라는 그녀가 그저 범상하지 않은 개인으로 보이게 뒀다. 무력의 장이 열대성 저기압을 만나 그 위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그런데. 하필 그녀였다. 하필이면. 탑리더의 신망을 등에 업고 물리적 힘만으로 작동되는 늑대의 시간 안으로 투신한 여성. 누군가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무력의 장 안에서 결국 끝장을 보고야 말 사람.
그녀에게서 센터장의 그늘이 점차 후퇴하고 있었고 드디어 그늘이 완전히 걷히자 그녀의 보잘 것 없는 육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어느 집의 둘째 아들, 셋째 아들들이 눈코입도 없는 얼굴을 하고 그녀의 드러난 욕망을 난도질 하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다. 드디어 그들의 얼굴에서 입이 나타나고 얇은 입술 아래로 숨겨진 이빨이 번쩍하고 빛을 냈다.
커버사진: Unsplash의Possessed Photography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