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 - one> #표적 ⑤
나인은 자신이 얼마간 이러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부재의 시간이 해체와 와해를 거쳐 소멸에 이르는 시간으로 겹쳐 흐르며, 소멸이란 꽤 자연스러운 풍화작용 같은 것이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순간 모든 소리가 싱그러웠다. 나인의 머리 위로 아기 손바닥만한 작은 잎들이 온하늘을 다 덮도록 펼쳐졌다. 고로쇠나무에서 물이 차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살랑 하고 바람이 불면 나뭇잎들이 화답하듯 촤라락하고 책장 넘기는 소리를 냈다.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했다. 요들송은 새들의 노래였다. 일군의 사람들이 까르르 하고 소리내 웃으며 멀어졌다. 다정하고 평화로웠다. 얼마 전 포장을 마친 시커먼 콘크리트 바닥 위로 주먹만한 바퀴 4개가 도로록도로록 하고 방정맞게 굴러갔다. 고로쇠나무에서 떨어져나온 손톱 만큼 작은 황록색 잎들이 우수수 공기를 갈랐다. 나인은 나무 벤치를 등에 대고 쪼그려 앉은 채로 단단하게 다져진 흙바닥 위 손짓하듯 흔들거리는 검은 그림자와 빛을 뚫어지도록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쭉 같은 자세였다. 고로쇠나무에서 떨어진 잔꽃잎들이 온 흙바닥을 덮고 반짝거렸다. 살아있구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살아서 움직이고 있구나. 삶과 죽음의 경계는 이 요란한 삶의 반응들을 마주할 때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었다. 시간을 단면으로 잘게 쪼갠 찰나의 순간 딱 손이 뻗치는 곳 만큼만 주위를 둘러봤다면 그리고 결국 이렇게 생동하는 것들과 마주치고야 말았다면 그녀는 하루를 더 살 수 있었을까. 모든 것이 움트는 계절 깊이 숨을 내쉬고 살짝 눈을 떠 삶을 뽐내는 이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몸이 떨리도록 시기했더라면 얼마 간이라도 더 살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 없는 가정으로 생각이 미쳤다. 부단히도 이어지고 있는 생의 한가운데 나인은 꼭 길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움찔하고 코웃음이 나왔다.
“나인. 무슨 일이에요?”
나인은 소리가 나는 쪽을 따라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초점은 그보다 느리게 보는 곳으로 돌아왔다. 자신과 같은 자세로 쪼그려 앉은 랄라의 단정한 얼굴이 보였다. 감당못할 일 없다는 굳건한 얼굴, 무엇에도 동요될 것 같지 않은 2018년 5월 랄라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언제부터 이렇게 앉아있었던 걸까. 나인은 민지의 부고를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문자로 받아본 적 있지만 직접 문자를 보내본 적도 없었다. 아무도 부고를 알리고 애도하는 법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은 것 같았다. 눈 앞이 깜깜했다. 배운 적이 없어서였다. 왜 아무도 이 중요한 의례를 알려주지 않았지. 막막함해졌다. 쿵쿵하고 심장이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 거리고 얄팍한 숨의 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이 아득한 순간 눈 앞에 있는 사람이 랄라여서 다행이었다. 그녀에게 제일 먼저 말을 꺼낼 수 있다. 나인은 목구멍에 힘을 주었다. 눌린 목에서 말이 새어나왔다.
“어머니가 같이 가길 원하셔”
“응?”
나인의 어깨 위 랄라의 손이 꿈틀거렸다. 랄라는 나인의 어깨를 심폐소생을 하듯 움켜줬다 폈다를 반복했다.
“민지 어머니.
경찰서에 같이 가주길 원하셔.
알고 싶으신가봐.
딸이 어떻게 지내왔는지”
나인은 한문장씩 전혀 다른 사건을 이야기하듯 끊어 말했다. 랄라는 더 묻지 않았다. 나인은 민지의 직장동료로 그녀의 타살 아님을 근거하기 위한 진술을 의뢰받으며 꼭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나인은 이 와중에 이 의뢰받은 일을 어떻게 성실하게 수행할지에 대한 것과 더불어 더 많이는 그녀의 어머니를 어떤 얼굴로 대면해야할지를 내내 생각했다. 온전히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일은 언제쯤이나 할 것이냐고 스스로 채근하며 또 이 경우 없는 짓거리를 계속 하면서였다. 그녀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로 장기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고 다수의 사람들이 밀집되어 생활하는 업무공간의 특성상 꽤 밀도 높고 가혹한 가해성 평가들에 시달렸으며 이는 그녀에게 운집한 거대한 군중으로부터의 집단 따돌림과도 같은 상황이었을 거라고 이 가엾고 불쌍한 여인을 마지막으로 가능한 공권력의 힘을 빌어 구원해달라고 말하고 싶은 헛된 욕망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애정하는 동료들이 있었고 그들의 공개적 지지와 응원의 목소리들이 점차 늘어나 있었으며 그녀를 돕고자 하는 여성지원단체 및 기타 여러 그룹의 연대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었다는, 그렇고 그런 희망찬 서사로 기록되었으면 하는 싶은 갸륵한 마음이 각기 다른 방향에서 충돌했다.
항변 불가의 상황에 놓인 이의 지난 행적과 그 귀결에 대한 공식적이자 최종의 기록물이 자신의 서술대로 작성되어질 것이었다. 나인은 처음 느껴보는 짜릿한 기분에 전율했고 동시에 온몸이 저릿한 공포를 느꼈다.
커버사진: Unsplash의Taylor Smith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