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이었다

소설 <PART - one> #아는여자 ①

by 수빈조

그날은 한창 봄이 만개 중인, 봄의 한복판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 아래로 포근하게 내려앉은 봄 향기가 코앞에서 살랑거렸다. 사람들은 곡선의 몸짓을 하며 유동했다. 건물 바깥으로 흘러나온 사람들은 단지 내 야외마당 곳곳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절정의 계절을 만끽했다. 반려견과 산책을 하고 캠핑 의자에 나른하게 앉아 낮잠을 청하거나 넓은 잔디마당에 드러누워 책을 읽는가하면 경주하듯 트랙을 돌고 계단에 걸터앉아 동료와 노닥거리고, 봉투 하나를 겨드랑이에 끼고 분주히 걷고, 닭장 안을 기웃대고, 동동 발을 구르고 서서 팔을 뻗어 닭의 머리 위로 모이를 뿌리는 등 그날의 사람들은 단지 곳곳을 유영하며 꽃이 만발한 계절의 호사를 누렸다. 꼭 하나의 마을을 옮겨온 것 같았다. 행정시설이 옮겨간 자리 낡은 건물들의 내부만 살짝 고쳐 사용하고 있는 탓에 늘상 음산한 분위기가 났던 단지 안은 어느 덧 꽤 활력 넘치는 작은 동네 골목 같은 무드가 났다.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벌써 에어콘을 돌리기 시작한 사무실이 있다는 풍문이 센터 사무실로 흘러들어왔다. 작년 한 해 연간 최고 전기사용량을 갱신했던 사무실이었으니 그럴 법도 했다. 한낮 동안엔 초여름처럼 더운 날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절을 쫓아다녔다.


나인이 민지가 오전 중 전송하기로 한 이날의 안부 메시지가 조금 늦어지고 있다고 알아챈 건 10시 40분이 지나서였다. 사무실 중간에 난 복도 너머 창을 등지고 앉은 랄라가 창 밖 풍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나인은 다음으로 자신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앉아 있어야할 자리에 민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을 재확인했다. 나인은 잠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굴리며 사무실을 휙휙 티 나지 않게 돌아봤다. 민지의 병가 3일째가 되는 이날 아침에도 나인은 그녀가 오전반차를 쓰고 오후엔 출근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민지는 당일 아침에서야 반차를 내는 일이 왕왕 있었다. 전날 늦은 시간까지 일정을 소화했거나 늦잠을 자는 통에 반차 신청을 내는 그렇고 그런 이유로 알게 모르게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일반 기업 같았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었다. 그런 보통의 때였다면 나인은 민지에게 “출근 안하니?”와 같은 문자메시지를 보내두었을 것이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생존신고 안하니?” 와 같은 채근성 문자메시지라도 보내야 하나 나인은 잠시 마음을 쓰다가 미뤄둔 시 보고용 문서 작성을 핑계로 마음을 접은 상태였다. 이날 오후 센터장과 함께 시 보고회에 들어가는 경영지원실장에게 11시까지 문서를 보내두어야 했다. 문서를 보낸 후에도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들어와 있지 않으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안부문자를 보낼 생각이었다.


한참 보고서 작성에 속도를 내고 있던 나인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온 시간은 오전 11시 무렵이었다. 업무 관련 전화일지 몰랐지만 급한 용무로 올만한 건수가 없었으므로 나인은 진동하고 있는 핸드폰 옆면의 볼륨 버튼 하나를 눌러 껐다. 이미 보고서의 마감시한이 속절없이 지나고 있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또 다시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인은 생리대를 넣어두는 파우치 위에서 무력하게 진동하는 전화기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렇게 얄팍하게 진동하던 두번째 전화벨이 오래지 않아 멈추고 잠깐의 적막 속에 다시 같은 번호로 전화벨이 울린 건 그러고 2~3분 여 쯤이 지나서였다. 나인은 그제야 핸드폰을 들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상대는 민지의 엄마였다.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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