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 - one> #신호 ④
“어째 닭보다 못한 것 같아”
나인은 막 끝을 낸 문장에서 생략한 ‘사람이’라는 주어와, 사람과 닭이란 각각의 주어를 수식하는 ‘죽음’이라는 서술어 중 무엇을 더 의도적으로 생략한 것인지 입 밖에 말을 다 내뱉고 나서야 생각해보고 있었다. 통화를 마친 랄라에게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나와 1층 화단 옆 지하 기계실 입구에 서서 급하게 도둑담배를 피워대는 그녀의 어수선한 마음은 안중 없이 공기 중에 흩어지는 담배연기를 나인은 무심히 올려다보았다. 바람 한 자락이 없는, 자비 없이 쨍쨍한 어느 여름날의 오후였다.
랄라는 조금 전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자신의 표정이 어떠했을지 신경이 쓰였다. 무반응으로 응대하고자 의식적으로 애쓰면서도 그 노력이 무색하게 랄라는 눈 아래 경직된 얼굴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걸 느꼈고, 반사적으로 일그러진 웃음으로 화답했음을 스스로도 알 수 있었다. 백년도 더 된 일처럼 세상 모두가 까무룩 잊어버린 일을 발생 80여 일만에 결국 나인이 꺼내들고 있었다. 랄라는 고개를 돌려 유독 깊이 들여마신 담배연기를 오랫동안 내뿜었다. 그리고 하필 생략된 말만 골라 골똘해지는 것이다.
죽음. 랄라는 입으로 단어를 작게 뻐끔거렸다. 담배연기와 함께 미세하게 소리도 내뱉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진공 속에 갇혀있던 것만 같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몸 속 어딘가 불편하게 따끔거리던 이물감의 원인을 찾게 된 것 같았다. 숨이 편하게 후 하고 내쉬어졌다. 소화가 되는 것처럼 목구멍으로 가스가 섞여 올라왔다. 사건이 코앞까지 가까워져 보였다. 꼭 죽음이 주변에 널려있는 것 같았다. 별 일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랄라는, 희망적이지 않은 전망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 섞인 마음이 되어버린 연유가 이 막간의 흡연 때문인지 그저 없던 일이던 그 일이 불현듯 있던 일로 확인된 이 상황 때문인지 그래도 조금 헷갈렸다.
랄라는 과거를 죄다 잊어버릴 것처럼 얼마 전 목도한 끔직한 장면 하나를 머릿속에 자학적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무엇을 잊고 싶은지 알 수 없도록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어 복잡한 생각들을 거둬내려 애를 쓸수록 그 끔찍한 장면이 더욱 크게 떠올랐다. 무엇으로든 덮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거세질수록 적나라하고 끔찍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가득 덮쳤다.
로드킬이었다. 작은 머리, 다원형으로 길게 둥근 몸통, 구부러진 꼬리 모양까지 작은 동물의 몸 전체가 콘크리트 바닥에 납작하게 눌린 모양으로 재현되어 있었다. 붉은 선혈이 몸통을 밟고 지나간 방향으로 콘크리트 바닥위에 얇게 번졌다. 랄라는 남겨진 핏자국을 보며 수어시간 전쯤 벌어진 사고로 예감했다. 내외부랄 것 없이 같은 층위로 바닥에 짓이겨진 이 도시 짐승의 중앙 부위에 집중적으로 꼬여든 파리떼가 사체를 처리하다 말고 인기척에 놀라 흩어졌다 돌아왔다. 랄라는 문자를 보내는데 정신이 팔려 하마터면 그 작은 사체를 밟을 뻔 했다. 핸드폰을 잡느라 둥글게 만들어진 두 팔의 공간 사이로 심상찮은 물체가 시야에 들어오자 랄라는 순발력있게 걸음의 보폭을 줄여 발을 딛었다. 그렇게 간신히 사체를 오욕하는 길은 면했지만 샌들을 신은 덕에 훤히 드러난, 조악하게 발린 짙붉은 색의 매니큐어를 바른 맨 발가락들과 유기된 사체가 하나의 시야 안으로 들어오는 건 피할 길이 없었다. 엄지발가락 바로 위쪽으로 검붉은 사체가 납작하게 콘크리트 바닥에 눌러 붙어있었다. 완전하게 상황을 벗어날 때까지 눈을 감을 수도 전방 사물에서 시선을 뗄수도 없는 상태로 다른 발을 안전한 땅으로 옮겨 딛고서며 랄라는 꼭 사체 위에서 춤을 추듯 깡총 뛰어야 했다. 그리고 뒤돌아보지 않고 걸으며 떠오르는 장면들을 잊으려고 몇날 며칠을 시달렸는데, 그러면서도 랄라는 그 다음날도 그 다다음날에도 굳이 그 길로만 걸었다. 멀리 사체의 흔적이 보일 때부터 그쪽으로 눈을 떼지 않고 심지어는 사고현장을 지나칠 때는 곁눈질로 사체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다음날에는 꼬여든 파리떼의 밀도가 눈에 띄게 줄어있었고 그 다음날에는 혈흔 자국이 옅어져 검죽죽해졌으며 그 다다음날에는 쥐의 사체라고 알아보기 힘들어졌고 그 다다다음날에는 콘크리트에 붙은 넓은 회색의 오물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 다음날에 갔을 땐 누가 치웠는지 바닥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다다음날에서야 랄라는 다른 길로 걷기 시작했다.
며칠 구름 한 점 없이 선명한 날들이 이어졌다. 서먹하게 허허거리는 사람들의 눈과 거짓된 안녕을 말하는 입과 평안을 가장한 말들과 빈자리를 에두르는 불편한 몸짓 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보였다. 이 계절 랄라는 자신이 자주 싫어졌다.
커버사진: Unsplash의Pascal Meier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