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PART - one> #신호 ③
랄라의 통화장면을 끝까지 지켜보던 나인은 고개를 돌리다 말고 새삼 파티션 높이마저 참으로 어정쩡하다고 비아냥거렸다. 센터 설립 2년도 안되어 센터장만 세 번 갈리는 동안 가장 민감한 변화라면 파티션의 유무와 소재, 그리고 위치와 높이 정도였다. 리더십 교체만으로 조직 안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 남동풍에서 북서풍으로 바뀔 거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파티션이 무슨 죄인지 새로 들어오는 센터장마다 이것부터 교체하려 드는지 당최 알 길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 센터장의 부임 후 파티션 교체의 변이 여러모로 가장 애매한 성격을 지녔다고 나인은 생각했다.
S시의 끄트머리 G시의 접경지역에 자리한 이 단지는 태풍의 가장 바깥처럼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는 곳이었다. 이곳은 월드컵경기장에 맞먹는 면적 3만평 중단위 규모의 산업단지로, 4년 전 보궐선거에서 시민사회운동가이자 개혁 진영의 단일후보였던 Y가 신승을 하며 9년 만에 정권을 탈환하고 4년 전 시장선거에서 재신임을 받으며 본격 추진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 중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시장 Y의 시정 방향을 꾹꾹 눌러 담아 이곳은 기술의 진보와 나란히 사회문화적 발전을 도모하는 전진기지라는 의미로 ‘창의테크밸리’라는 요란한 이름을 얻었다. 이 창의테크밸리의 공간 전체를 관리 운영하고 입주그룹들의 활동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창의와혁신을위한모든지원센터(창의센터)’는 시장 Y의 연임 2년이 지나 우여곡절 끝에 2016년 6월 공식 오픈한 시 산하 중간지원기관(2)으로 설립 2년이 채 안되어 벌써 두 명의 센터장이 갈린 상태였다.
막 만들어진 조직의 일이란 꼭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같았다. 근로계약서, 사무편람, 회계프로세스 마련 등 경영지원 업무에다가 공간 리모델링과 인테리어, 집기 세팅 등 해도 해도 티가 안나는 살림살이 개비부터 5개년 목표 설정과 운영 전략 수립, 초창기 사업 설계, 테넌트와 입주기업 모집 등 조직의 성패가 달린 전략구상까지 그야말로 맨 땅에서 새로 구축해야 하는 일 투성이었다. 그러므로 달리 생각하면 비교적 도전적인 것들을 유연하게 시도할 수 있는 때이기도 했는데, 그 무렵 초대센터장인 K가 시도한 가장 도전적인 실험으로 나인이 떠올린 것은 사무실의 파티션을 없앤 것 정도였다. 센터장 K는 실별 위계 구조대로 책상을 배치하되 직원 간의 협업과 단지 내로 입주하는 기관(3)들과의 적극적 소통을 위하여 파티션을 없애자고 제안했다. 숨을 곳을 찾아 일하고 싶은 직원들이야 불만족스러운 제안일 테지만 그 시기 그의 시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딱히 없었다. 대게는 센터가 설립되며 처음 만난 사람들이고 합을 맞추기 시작한지도 불과 1~2개월 밖에 되지 않은 그야말로 신생 조직에서 파티션 따위로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을 터였다. 센터장 K와 전 직장에서 한솥밥을 먹던 나인 역시 충의를 가장해 이의를 논하기 어려운 사이가 아니었음에도 대세에 지장 없는 일로 초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다른 직원들과 통하는 점이었다. 그러나 센터장 K는 직원들의 이 같은 협조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불편한 기색을 습관처럼 풍기던 시 담당 국장의 호령에 내내 시달리다 부임한 그 해를 겨우 넘겨 이듬해 1월 말경 자진하여 센터장직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한 달여가 막 지나 지난해 3월초 두 번째 센터장인 C가 센터로 출근을 시작했다. 그는 H대학교 미래융합대학 사회과학계열 국제경제학 전공 교수로, 동아시아 경제론을 전공과목으로 하여 경제 정의 맥락의 국내 경제 정책과 대안 경제 시스템 연구에 특화된 경제전문가로 저명한 인물이다. 그는 센터의 모법인인 ‘씽’(SING, Social Innovator Network Group)에서 경제정책 분야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으며, 나인이 센터로 파견오기 전 모법인(4)인 ‘씽’에서 근무하던 1년이 조금 넘는 기간 내내 그는 학습연구년을 보내고 있었으므로 그녀가 그를 실제로 본 건 그가 센터장직을 수행하기 직전 단지 내 한 사무실에서였다.
센터장 C가 부임 후 시급하게 처리한 일 역시 머리 정수리가 보일 듯 말 듯 하도록 높은 파티션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이는 그의 출근 2일차 속전속결로 처리된 건으로 당연하게도 사무실 직원들의 의견수렴 없이 강행된 일이었다. 나인은 그가 소문대로 라는 것을 단 2일 만에 확인한 것에 단지 놀랐을 뿐이었다. 말을 아끼고 아끼다 참고만 삼으라며 한마디 보태듯 던져주던 주변 사람들의 그에 대한 주된 평가는 혼자 일해야 하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과 직원을 무슨 학생 대하듯 대하는 태도에 대한 것 등이었다. 그가 처음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책상 위 어수선한 상태가 숨김없이 한 눈에 들어오는 휑한 사무실 상태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경영지원실장의 전언이 한동안 공기 중에 떠돌았다. 그리고 그가 사건 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사직하고 모법인의 빠른 의사결정에 따라 44일의 공백 후 현재의 세번째 센터장이 자리를 메운 지 6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창의센터가 시로부터 위탁받아 관리 운영 중인 이 단지에 입주한 1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대표에서 창의센터의 세 번째 센터장이 된 S는 한동안 직원 전원과 면담을 하고 몇몇 입주기관 대표들을 만나 의견을 청취하고 다녔다. 그리고 결심이 선 듯 두어 달 전 그는 전 직원 회의에서 조직개편 없이 현재의 편재를 유지하되 미세하게 역할을 조정하겠다고 조직운영 구상을 밝혔는데, 그가 선택한 눈에 띄는 변화라면 4명씩 한 팀이 되어 각각 다른 직원을 바라보도록 바람개비 형태로 책상을 재배치하는 것과 파티션의 높이 조정이었다. 그는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부서 간 칸막이는 낮추면서도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차선의 방안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때쯤 나인은 조직 분란의 원인이 정말 파티션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했다. 물론 이 착시현상이 그리 오래가진 못했지만.
협업이라는 취지로 단지에 입주해있는 제조업체에게 맡겨 제작된 지금의 파티션은 앉은 자세에서 어깨 높이 정도로 반투명 아크릴판 두 장 사이에 현수막 등 재활용재료들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제작 의뢰 한 달 반 만인 일주일 전쯤 교체, 설치된 이 파티션에 나인은 시선을 자주 빼앗겼다. 안정감 없는 현란한 무늬라는 것도 문제였지만 각종 사무용품 수납, 메모지 부착 등 공간 활용도 불편했으며 심지어 미관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람에 따라 어깨부터 목과 얼굴하관 등의 부위를 기준으로 끊어져 보이는 높이가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감수해야할 문제였다. 모두는 그의 명분에 무언의 동의를 보냈고, 그보다도 지금까지 사무실 운영비로 들어간 물품구매건 중 가장 큰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2) 공공의 정책 사업을 실행하는 기관. 중앙행정기관 또는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 또는 공기관과 민간단체/기관/기업의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며 공동의 산업생태계 형성을 위하여 네트워크, 인재발굴 및 육성, 역량강화, 투자유치 등의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 공공이 설립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형태로 민간의 전문성을 공공이 차용하는 형태의 기관임. 행정과 민간의 중간에서 민간을 지원한다는 의미로 중간지원기관이라고 불림. 관계 정책의 세밀한 현장 지원을 목적으로 지자체에서 설립하고 관련 민간전문그룹이 운영하는 준행정기관이며 민과 관 중간에서 지원한다는 의미로 중간지원기관이라고 통칭함.
(3) 산업단지 내 업무/상업시설 등에 입주한 기업과 단체, 기관을 통칭함.
(4) ‘행정 권한의 위임 및 위탁에 관한 규정’에 따라, 행정 기관의 권한을 위탁받은 다른 행정 기관의 장과 사무를 위탁받은 지방 자치 단체가 아닌 법인이나 단체 또는 그 기관이나 개인 등을 수탁기관이라고 하며 그 수탁기관의 모체가 되는, 업무 위탁받은 법인
커버사진: Unsplash의Hal Gatewood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