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소리

소설 <PART - one> # 신호 ①

by 수빈조

두두두두----두두두두


짧은 파동의 외마디 음.

일정한 간격의 의도된 정적.

균질한 저음의 무딘 소리.

진동하며 퍼진다기보다 공기 중에 섞여 무게를 더하는 물질.

마치 그것은 기호에 가까운 메시지.

누가 신호를 보내오는 것일까.

놓치지 말아야 해.




해석불가한 기호들이 그림처럼 머리 속에 나열되다가 눈 앞이 난데없이 밝아지더니 먹빛의 둥근 물체들이 둥둥 떠다니는 기묘한 풍경이 랄라의 희뿌연 시야 안으로 들어와 펼쳐졌다. 피사체와 망막 간의 초점거리를 맞추느라 몇 차례의 비율 조정이 끝나고서야 물체의 경계면들이 선명하게 도드라졌다. 그때 자기장의 작용에 따라 외떨어진 지구인들의 머리통 예닐곱이, 그러니까 난삽하게 들어선 파티션 위로 드문드문 솟은 무기명의 머리들이 광폭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자신을 뺀 그 나머지의 일상이 눈 앞에 빠짐없이 시현되고 있음에도 랄라는 여전히 꿈 속을 헤메이는 것처럼, 의식의 저 너머에서 중요한 단서라도 찾아낼 것처럼 기억을 더듬거렸다. 그러나 어느새 현실로 돌아와있다는 자각과 함께 일상 소음이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매끈하지 않은 콘크리트 포장 도로의 경사면을 힘에 부치도록 오르는 빈 트럭 하나가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곳에서 달그락거리며 붕하고 튀어올랐다. 그보다 앞으로 계단실에서 사람들의 말소리와 누군가의 슬리퍼 바닥이 콘크리트 바닥을 요란하게 차고오르는 소리가 파동의 끄트머리쯤에서 랄라에게 와닿았다. 랄라의 등 뒤 창 밖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웃음 소리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실제 소리에 가깝게 들렸다. 소리의 레이어들 가운데 사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딸깍 마우스 눌리는 소리, 빈기침 소리, 삐그덕하고 사무용의자의 등받이가 기우는 소리 등과 같이 랄라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작게 움직이며 내는 소리들이었다.


그러고보니 월요일이었다. 분주함을 가장한 사람들의 몸짓은 꽤나 소란스러웠다. 월요일은 어느 날보다 이상하게 더 부산했다. 랄라의 눈에 노트북 화면 속 깜빡이는 커서와 키보드 위 역동적으로 멈춰서 굳어있는 자신의 두 손등이 보였다. 열중하고 있었구나. 그순간 랄라는 자신이 이곳으로부터 되도록 가장 먼 곳으로 도망쳐 꽤 근사한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간혹 지우개로 대충 쓱쓱 지운 것처럼 눈 앞이 까마득하게 아득해질 때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 정면의 하얀 벽에 붙어있는 둥근 벽시계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대략 2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불과 20분이 지났을 뿐인데 랄라는 한동안 다른 차원에 있다가 되돌아온 것처럼 주변이 생경했다. 이렇게 돌아오고 보면 그 어느 때보다 경계가 선명하게 보였다. 누군가의 죽음과 나에게만은 비껴가는 비극 인양 금세 표백된 일상이 있었고 그 일상을 누구 못지 않게 충실히 살아내고 있는 ‘내’가 있다. 랄라는 얼굴에 찬물을 확 끼얹은 것 같았다. 현실세계로 복귀하는 타임홀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대다가 사무실 안팎 뒤섞인 일상소음이 훅하고 머릿속을 헤집는 순간 다시 이 날카로운 현실의 경계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기분이 되었다. 이제 다시 개성을 지우고 군중 속으로 구별없이 섞여버려야 했다. 자연스럽게. ‘다시 빠져들 수 있을까’ 랄라는 키보드 위 멈춰있던 두 손을 기도하듯 모아 쥐고 머리를 숙이며 두 눈을 감았다.


두두두두


그 때 다시 그 신호가 들려왔다.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재빠르게 고개를 돌렸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발광된 키폰의 LCD 창이었다. 키폰에서 두두두두 하고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세상 어디에도 존재할 것 같지 않은 기계음의 벨소리. 이 망할 놈의 벨소리를 바꿔보려 여러 차례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였다. 차선책으로 볼륨을 제일 작은 단계로 조절해두었는데 오히려 랄라의 신경을 더욱 거슬리게 했다. 랄라의 책상 위 키폰에서까지 전화벨이 울리는 것으로 보아 사무실의 다른 이 두 어명쯤이 이미 통화중인 모양이었다. 전화는 사무실 누구라도 받게 되어 있었다. 키폰 알림표시등이 요란하게 번짝거렸다. 랄라는 다섯 번째 신호음이 끝날 때서야 수화기를 들었다. 그 사이 수취인 불명의 이 전화를 사무실의 누구도 돌려받지 않은 까닭이었다. 파티션을 넘어 다른 이에게까지 가닿지 못할 만큼 작은 벨소리였다.


“네. 창의센터 정책실 입니다”



사진: UnsplashMarek Okon

소설 <PART>는 one, two, three 등 총 3부로 구성될 예정이며 위 글은 그 중 1부(one)에 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