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지고지순 연예인 커플? 유가령과 양조위
유가령은 양조위와 사귀기 전부터 시원시원하면서도 고혹적인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65년생인 그녀는 연예계 데뷔 2년 후인 86년에 홍콩의 유명한 재벌2세이자 수 조원의 자산가인 허진형(줄리안 후이)과 만나 약혼하게 된다. 이 때 소개한 사람은 배우 오군여. 『첨밀밀』을 연출한 진가신 감독의 부인으로, 『예스마담』 『도성』 『녹정기』 등 주요 시리즈에 코믹 연기 중심으로 숱하게 출연한 홍콩 영화계의 대모 중 하나다. 유가령은 88년 허진형과 헤어지고 양조위를 만나게 되는데, 허진형은 이후에 미스홍콩 출신, 『타락천사』에서 킬러 여명의 파트너 과장으로 앞머리를 과하게 내리고 여명 집의 쓰레기를 뒤지던 이가흔과 두 번째로 결혼하게 된다. 양조위는 1986년 TV 시리즈 『의천도룡기』에 출연하면서 핵귀요미 장무기로 전중화권을 사로잡으면서 유명해졌다. 우리나라 중드 팬들이 꼽는 80년대 최고의 드라마는 『의천도룡기』요, 90년대는 『황제의 딸』이다. 꼽고 보니 우리나라 중드 팬들이 꼽은 건지 그냥 내가 꼽은 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떻든 양조위의 대표작이 『의천도룡기』요, 『의천도룡기』 하면 양조위인 것은 분명하다. 1924년 중국 저장성에서 태어나 문학성과 대중성을 지닌 무협소설 15편을 집필함으로써, 허무맹랑하게 여겨지던 무협문학의 급을 끌어올리고 전세계 1억 부 이상의 판매고, 3억 명 이상의 독자층을 자랑하는 홍콩의 작가 김용은 우리나라에서 『영웅문』 시리즈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영웅문 1부는 곽정과 황용을 주인공으로 한 『사조영웅전』, 2부는 양과와 소용녀를 주인공으로 한 『신조협려』, 3부는 장무기와 조민을 주인공으로 한 『의천도룡기』인데, 사람에 따라 취향에 따라 좋아하는 시즌이 다르지만 무협의 바이블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중화권 배우 중 영웅문의 각 역할을 맡아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장국영도 물론 『신조협려』의 양과 역을 했었고, 이연걸도 『의천도룡기』의 장무기 역을 했었으며, 『중경삼림』의 히로인 왕정문(69년생)이 동갑내기 중국 록가수 두유(69년생)와 이혼하고 11살 연하 사정봉(80년생)과 사귀다 『파이란』의 장백지(80년생)에게 빼앗긴 후 결혼한 이아붕(71년생) 역시 『의천도룡기』의 장무기 역을 했었다. 우리나라는 '장희빈' 역을 해본 배우, '이순신' 역을 해본 배우를 손꼽을 수는 있겠지만, 픽션의 인물들을 영화와 드라마로 이렇게 많이 연기하는 것은 김용과 홍콩배우들의 매우 독특한 점이다. 셰익스피어의 명성을 고려할 때 '줄리엣' 역을 소화해본 배우라면 전세계적으로 많겠으나, 작가의 생전, 단 몇십 년 사이에 같은 작품, 같은 주인공 역을 숱한 배우들이 다양하게 연기하는 일은 참 이색적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유덕화, 곽부성이 주연한 1991년작 극장판 『신조협려』는 무협소설 영웅문의 『신조협려』와는 전혀 다른 그냥 아무말대잔치, 제목만 『신조협려』이므로, 헷갈리지는 않아야 한다.
어디서 단락을 나누어야 할지 모르겠으므로 일단 여기서 한 번 나누어야겠다. 양조위는 1986년 『의천도룡기』의 장무기 역으로 귀욤귀욤하게 등장하며 작품의 상대역으로 중드 팬들에게 청순+당돌한 이미지로 각인된 여미한과 사귀었다. 대한민국 4,50대 남성으로 왕년에 무협지, 무협드라마 팬 좀 해봤다는 분들 중에는 이상형을 여미한으로 꼽는 분이 있을 것이다. 양조위는 여미한과 2년을 사귀다 첫사랑 증화천에게 돌아갔다 다시 유가령과 사귀게 되면서, 양조위와 유가령 모두 과거사를 정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신인이었던 여미한이 『의천도룡기』에서 귀엽게 토라지는 사랑 가득 조민 역을 제대로 연기한 것이, 만나자마자 바로 상대 장무기 역 양조위에게 반하면서 실제와 드라마가 혼합된 효과라는 설도 설득력이 있다. 유가령은 양조위를 사귀게 되면서 『아비정전』에서 아비 장국영에 대해 보인 모습처럼이나 독점욕을 과시했다고 하는데, 외모에서 드러나는 유가령의 당당함은 홍콩 최고의 마피아 '삼합회'의 영화 출연을 거부한 데서도 나타난 것 같다. 1989년부터 사귀기 시작한 유가령과 양조위는 1990년 『아비정전』 촬영 당시, 유가령이 이 이유로 삼합회에 납치, 몇 시간 동안 감금되는 사건이 있었으나 양조위가 변함없는 애정을 보인 데서 굳어진다. 유덕화와 같은 경우도 조폭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당하고 B급 영화에 출연한 일이 있었으며, 당시 가해자들이 여자친구에 대해 인지하고 있음을 언급한 관계로 20년간 연인을 숨긴 일이 있다고 한다. 1편을 우려먹는 말할 수 없이 유치한 아류작 양산, 스타성이 엄청난 배우들의 생각없는 겹치기 출연, 코믹-느와르만 번갈아 오간 성의없는 소재의 고갈, 양질의 컨텐츠나 기술력 개발 연구 완전 부재 등도 홍콩영화 전성기를 지키지 못한 이유였지만, 이 이유들과 연계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어두운 세력의 영향력이었다. 매염방에 이어 희생양이 될 뻔했던 유가령이었지만 사건 당시뿐 아니라 양조위의 꿋꿋한 소신과 조치로 두 사람 관계를 지킨 것은 물론, 주변에도 긍정적인 용기를 주지 않았나 싶다. 당시 유가령은 성폭행을 당했다는 소문과 더불어,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에도 일부 황색 주간지에 적나라한 나체 사진이 보도되는 등 피해를 입었으나, 2008년 양조위와 부탄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지금까지도 SNS를 통해 행복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다.
이 글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 것인가? 왕가위의 대표적인 페르소나 양조위와, 『아비정전』에서 당찬 모습을 보여준 중화권 대표 미녀 배우 유가령, 두 연예인 커플은 『동사서독』과 『2046』에도 함께 출연했다.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주역이다. 관련하여 홍콩영화계의 복잡한 관계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