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세 번째 시민옹호활동가 교육이 있던 날, 어쩌면 이 날은 제일 기대했던 수업이기도 하다.
정독 도서관에서 《목발과 오븐》북토크가 있던 날 강연 중에 작가님의 한 마디가 나를 이 수업에 이끌었다.
살면서 장애인 친구 한 명 없다면 반성하셔야 돼요.
지난번에 들었던 북토크는 가벼운 분위기의 강연이었다면 이번에는 시민옹호활동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한 수업이었다.
점점 증가할 수밖에 없는 장애 인구를 사회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양한 정책들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혹은 나의 가족이 장애인이 됐을 때 지역 사회 안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지역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은 '친구'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보다 타인과 소통의 장벽이 낮기 때문에 친구를 만드는 데 제약이 덜 하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 한 장애인은 혼자 있는 시간이 많고, 복지관 혹은 활동지원가와 같은 선생님 외의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이 우리와 가까워질 수 없는 것은 그런 소통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장애인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구조와 환경의 문제다.
누군가 희생하고 양보할 문제가 아니라 둘 다 쉽게 갈 수 있다.
소통을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시간과 비용, 에너지다. 이것이 있어야 경험을 쌓을 수 있다. 시민옹호활동가는 이것을 사용해서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내가 비장애인 친구와 하는 경험을 장애인과 나누고 그 사람들에게 다양한 비장애인을 알아갈 수 있는 경험을 하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비장애인의 '희생'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서로를 다양한 존재로 받아들이는 '친구'가 필요하다.
주저하는 게 문제를 만든다!
물론,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마음이 앞서다 보면 자칫 좋은 경험을 쌓기 전에 차별의 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 장애의 사회적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우리에게는 본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 말, 행동, 눈빛에서 나오는 본능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들과 긍정적 경험을 쌓기 위해서는 장애인과의 활동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태도를 갖춰야 한다. 무리해서 자극적인 경험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소소한 경험으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활동적인 것보다는 정적인 활동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나는 그들과 어떤 경험을 쌓을 수 있을지 고민이 앞선다. 비장애인 친구들과도 무언가를 함께 공유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데, 내가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을까? 좋은 친구가 될 자신은 없지만, 꼭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말라는 그 말에서 용기를 내어 보려 한다.
수업이 끝나고 작가님에게 사인을 받았다.
"선생님, 저 사인해 주세요. 이 책 다 읽었어요."
어디에 사인을 받을까 고민하다가 작가님의 모습이 사진으로 담은 페이지에 사인을 받았다. 그 페이지를 찾기 위해 책장을 넘기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사인을 받고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한 뒤, "언젠가, 어디에서 또 만나요."라고 나도 모르게 말해 버렸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나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부끄러웠지만, 김형수 선생님은 또 만났으면 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