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노랑이일까? 파랑이일까?"
나는 노랑이일까? 파랑이일까? 그림책 《사자가 문 밖에 있다》를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노랑이인 것 같아 조금 서글퍼졌다. 나는 매사에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입고 싶은 옷이 있어도, 먹고 싶은 게 있어도,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꾹 참았다. 어른들은 “애가 일찍 철들었네”라고 칭찬했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과 늘 사고만 치는 언니, 그리고 내 밑의 두 동생들을 보면서 나라도 부모님이 덜 가는 ‘착한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렇게 욕구를 누르다 보니 점차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많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 할 수 있는 것들만 골라서 하자고 생각했다. 어떤 일을 실행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다. 그 고민은 대부분이 현실적인 조건에 관한 것들이다. 예를 들면 시간, 장소, 비용 따위의 것들. 하지만 조금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있다. 나는 잠시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책을 읽는 게 좋았고, 글씨를 예쁘게 쓰는 걸 좋아했고, 받아쓰기를 보면 늘 백 점을 받았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국어는 초등학교와 달랐다. 단순히 읽고, 쓰기가 아닌 그 안에는 다양한 문법이 존재했고, 긴 지문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많은 문제를 풀어야 했다. 어려운 걸 피하고 싶었다. 어차피 해도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누가 말리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꿈을 접었다. 좀 더 편한 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파랑이였으면 했다. 뭐든 경험하고 실패도 해보면서 더 단단하게 성장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가 다섯 살 때 처음으로 유치원에 갔을 무렵, 담임 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어머니, ○○이가 놀지를 않아요.”라고 말했다. 등원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오히려 내가 선생님을 달랬다. “선생님, 걱정하지 마세요. 며칠 지나면 뛰어다닐 거예요.” 다음날 선생님에게 괜한 걱정을 했다고 전화가 왔다. 그런 아이의 볼 때면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채근할 수 없었다. 가장 답답한 사람은 아이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하고 싶은 일 앞에서 늘 소심했던 나처럼. 아이가 수학 문제를 풀다가 조금이라도 어려우면 “아! 모르겠어! 어떻게 하는 거야?”하고 망설임도 없이 내게 물어본다. 몇 번은 바로 가르쳐 주기도 했지만, 바쁠 때면 “한 권의 문제집에 어떻게 네가 다 아는 문제만 나오겠어. 모르는 문제도 풀어보려고 노력하는 게 진짜 공부야.”라며 짜증을 내곤 했다. 문득 내가 한 이 말을 어린 시절의 나에게도 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도 정작 해내지 못했으면서, 아이에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이와 매주 토요일에 수영장에 간다. 그렇게 수영을 다닌 지 아이는 3년, 나는 2년이 넘었다. 주 1회 수영을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그래서는 절대 수영 안 늘어요.”라고 말한다. 안 그래도 할 때마다 힘든데,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더 하기 싫어지곤 했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지금 오리발을 낀다. 물론 자세는 엉망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딱 이만큼 하고 싶으니까. 평일 수영을 할 여유도 없고, 사설 학원에 다니면서 수영 실력을 키울 욕심도 없다. 딱 이만큼 즐기며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다. 무언가를 할 때면 ‘어차피 그걸 한다고 잘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도망칠 구멍을 찾았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그 사람처럼 잘하지 못할 바에는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누구나 처음부터 잘하지 못한다. 원하는 걸 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 노력에는 절대적 시간을 들여야 한다. 살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은 국어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포기했을 때처럼,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해 한 번 더 노력해 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힘들어할 때면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조용히 응원한다. 문밖에 사자는 언제나 존재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노랑이이지만, 그래도 조금은 자신만의 방법을 깨달은 노랑이로 성장했다. 이런 나에게도 가장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오래 걸리더라도, 그 과정을 즐기며 꾸준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 누가 뭐라고 해도 일주일에 한 번 수영하는 것에 대해 당당해지기로 했다.
+ 이야기 나눈 그림책
문 밖에 사자가 있다, 윤아해 글, 조원희 그림, 뜨인돌어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