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모름이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고 느끼던 어느 날, 엉엉 울면서 남편에게 “차라리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아이만 바라보면서 살았더라면 그게 더 나았을까”라고 쏟아냈다.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시끄럽기보다는 조용한 쪽을 택하고, 말을 길게 하기보다는, 생각을 길게 하기를 좋아한다. 방학 동안 매주 금요일을 아이와 함께 가고 싶은 곳을 실컷 가보는 날로 정했지만, 한 달이 지나고 우리는 “오늘은 좀 쉴까?”라며 합의했다. 그렇게 온종일 집에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만족했다. 그러고는 또 다른 곳을 기웃거렸다. 한번 호기심이 발동하면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 때문에 피곤할 때도 있지만, 낯선 것을 대할 때면 두려움 보다는 설렘 쪽에 무게가 더 실린다. 다시 공부를 시작하며 올해는 ‘공부만 하자!’라고 다짐했지만, 기회가 보일 때마다 여기저기에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학교 동아리를 두 개나 가입했다.
어릴 적,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나를 평가하는 단어는 ‘조용함’ 또는 ‘소극적’이었다. 당시에는 그 단어의 뜻을 몰라 그저 칭찬인 줄만 알았다. 어른들은 나를 보면 어른스럽다고, 아이가 어쩜 이렇게 조용하냐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더욱 그런 아이로 보이기 위해, 잘 참는 아이가 되었다. 궁금해도 참고,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잘 참았다. 세상에서 참는 게 제일 쉬운 아이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애초에 ‘호기심’이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렇게 미성년의 시기를 지나 성년이 된 나는 집 근처 대학을 졸업하고, 집 근처 영어 학원 데스크에서 상담 일을 시작했다. 어느 날, 중학교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호주로 유학을 간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 당시만 해도 나는 유학은 공부를 하러 가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친구에게 영어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유학을 가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영어도 영어지만, 일을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러 가는 거라고 했다. 그때 ‘워킹홀리데이’에 대해 처음 알았다.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새로운 곳을 향해 떠나는 친구가 대단해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잔잔한 일상을 계속 살아갔다. 그러다가 영어 학원의 상담 일을 그만 두고, 집 근처 공장에 취직했다. 꽤 큰 공장이었다. 시간에 맞춰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을 했고, 기본급과 이런저런 수당에 격달로 나오는 보너스를 합치면 제법 안정적인 수입으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온한 일상을 보내다가도, 종종 친구가 호주에서 소식을 전해올 때면 마음 한구석이 술렁였다. 나 역시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걸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결국 공장에 다닌 지 일 년째 되던 해, 나는 사직서를 내고 서울로 상경했다. 홀로 서울에서 고시원 생활을 하면서 학원을 다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 취업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자신의 꿈을 일찍 찾은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내 처지를 탓하기도 하고, 지금 해봤자 소용없을 것 같은 무력감에 우울해지곤 한다. 특히 요즘같이 주식과 AI가 화두가 되는 대화 속에는 잘 끼지 못한다. 그 대화들의 마지막은 대부분 ‘열심히 돈 벌어봤자’, ‘열심히 배워봤자’, ‘열심히 해봤자’ 등의 회의적인 말들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점점 세상에서 경험에 대한 가치가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나는 아직도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데. 지난해에 시작한 교육자원봉사를 마무리하면서 분과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봉사한 사람을 뽑았는데 내가 일등을 했다. 그래서 올해는 신규 양성이 없는 대신 타 분과에서 진행하는 신규 양성 교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고 했다. 처음에는 학교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넘기려 했다. 하지만 결국 연수를 듣겠다고 이름을 적어 넣었다. 타 분과는 어떻게 봉사를 하는지 궁금했다. 하루 세 시간, 나흘간의 교육이 부담스러웠지만 또다시 내 안의 호기심이 발동하고 말았다.
모르는 건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아는 것이 되었을 때의 기쁨은 두려움의 크기에 비례한다.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에서 “인생은 단순히 더하고 빼는 문제가 아니다. 상실의, 혹은 실패의 축적과 곱셈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문장을 빌려와 말하자면, 내게 두려움이란 삶의 곱셈과도 같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며 삶을 이전보다 풍성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는 모름의 길 앞에서 늘 가던 길을 선택하곤 했지만, 이제는 그 길을 헤집고 지나갈 용기가 조금은 생겼다. 조용하고, 소심하던 내가 이렇게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요즘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경험이었다. 그 경험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이제 아이에게도 모르는 세계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는 용기를 건넨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는 요즘 자신이 예민해진 것 같다며 작은 일에도 화가 난다고 했다. 아이의 걱정을 들어주다가 아마도 그건 ‘모름이’를 만났기 때문이라며, 당연한 일이라고 위로했다. 엄마 역시 하루하루가 긴장되고 두렵지만, 그럼에도 해야 할 일들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이 과정을 버티고 나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이제 그만 징징거리기로 했다. 모름의 시간을 기꺼이 버텨내자고 다짐했다. 차츰차츰 알아가면서 사는 삶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토닥토닥하면서.
+ 이야기 나눈 그림책
그때 그게 거기 있었어, 샤를로트 파랑 글·그림, 최혜진 옮김,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