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사람이 받아들인 죽음
많은 죽음이 저를 지나간 해였어요.
결혼을 몇 달 앞두고 신혼집을 보기 위해 오른 버스에서 연쇄 추돌사고를 경험했고, 가까운 지인의 아버님께서 투병으로 그리고 사고로 돌아가셨어요. 티비에선 드물게 일어나는 재난 사고를 보았습니다.
평소엔 잘 꺼내 입지 않던 검은 셔츠를 옷장에 걸기 무섭게 다시 꺼내야 했던 해를 보내니, 생과 사는 종이 한 장 차이임을 느끼게 됩니다.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를 갑자기 보내드리게 된 친구가 괜찮냐는 덧없는 물음에 이렇게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정말 갑작스럽긴 한데, 설 연휴 직후라 그래도 아버지 가기 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요.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친구의 말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는 해외 출장이 잦았아요. 해볼 법한 걱정부터 하기 어려운 걱정까지 모두 다 끌어안는 성격이었던 저는, 아빠의 비행 편이 뜨는 시간부터 무사히 도착했다는 문자를 받을 때까지 한 여름에도 불안이 만들어낸 한기에 몸을 덜덜 떨고 했답니다.
그럴때 전문가가 추천하는 진짜 비행기 사고가 날 확률을 셈하기보다 아빠와 즐겁게 나눈 대화와 추억이 더 강한 안정제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주에 같이 미신 커피가 참 향긋했지.
아빠의 자부심을 나는 알고 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이에요.
한 장 너머 있을지 모를 저의 끝을 수용할 수 있는 이유들을 떠올려봅니다.
굳이 올라가 본 동네 뒷산에서 발견한 개나리, 아끼는 사람들과 나눈 서로의 어제와 오늘. 잘하진 못해도 즐기게 된 피아노 연주.
길지도, 이름 석자는커녕 성씨조차 남기지 못했지만 자주 행복했고 함께 웃고 울었으니 괜찮다고. 스스로 알아줄 수 있는 마음 정도는 길러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