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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차미 Mar 14. 2020

꿈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필사적인 유랑기

<교사형>(1968)

영화 <교사형>의 작품 포스터 © 토호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를 택할 것이다. <교사형>은 오시마 나기사가 만든 영화 중에서 가장 우화에 가깝지만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는다. ‘정치적’이라는 말이 ‘적극적’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렇다. 그래서인지 이것이 일본의 이야기이자, 그곳의 1960년대를 조망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이야기에 거리를 두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영화가 다루는 사건과 인물의 모습은 동시대의 풍경이지만, 희곡의 형식으로 추출된 우화는 우리를 풍경 안으로 인도한다. 말하자면 이는, 파리에 가본 적 없는 이가 어떻게 파리의 일원이 될 수 있는지와 같은 물음과는 다르다. 오시마 나기사의 이 연극은 무언가를 전달할 목적으로 설계된 치밀한 정치극이라기보다, 오래된 개그콘서트의 봉숭아학당과 같은 느슨한 연결 체계를 갖고 있다. 


어느 구석에서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게 이런 허술한 체계가 의도하는 바이다. 일본식의 유머인 ‘보케와 츠코미’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 체계에서, 관객은 생각하기를 그만 두게 된다. 생각을 그만두는 이유는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걸 믿을 수 없어서다. 사실 믿을 수 없는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시마 나기사는 어느 초현실주의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기도 하다. 초현실주의자들의 과제가 ‘현실이 보여주지 못한다면 현실의 바깥에서 그걸 시도해보자는 것’이었다면, 오시마 나기사가 수행해야 할 과업은 ‘영화가 현실을 말하는 도구가 아닌, 현실의 바깥이라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보케와 츠코미가 만담이라는 개그의 한 형식이라는 점은 오시마의 영화가 지향하는 바를 잘 말해준다.)


오시마 나기사는 급진적인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명백하다. 정치적인 분류가 아니라 성향적인 면을 따져 보면 그렇다. 하지만 보통 우리가 급진적인 것에 부여하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시마 나기사의 급진성은 현실에서 영화로의 도피가 아닌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주제에 착종되었다. 이러한 점이 초현실주의자들이 영화에 열광한 이유와 언뜻 비슷하게 보이지만, 오시마 나기사에게 현실보다 뛰어난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 초-현실이란 현실을 초과하는 중층위가 아니라 ‘둘러싸인 현실(Surrouned Real)’의 약어였다. 이 둘러싸인 현실이 바로 초현실이라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초현실의 바깥에 자리하는 것, 초현실을 둘러싼 게 바로 영화라고 그는 믿었다. 


다시 말해서 오시마에게 초-현실이라는 것은 기막히게 돌아가는 세상 살이와 다름없었다. 그러니 어쩌면 오시마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어머니의 모성이었을지도 모른다. 기막힌 ‘저것’을 품어주지 않으면 아니 된다고 말이다. 혹은 그 반대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막힌 ‘저것’이 밖으로 풀려나지 않도록 이곳에 봉인해 두어야 한다. 그렇게 보면 오시마에게 영화라는 건 애증의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영화만이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는 과정은 ‘영화를 통해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사상이 아니라 ‘영화를 세상에 어울리도록 교육한다.’에 가깝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교육이라는 단어에 담긴 계몽적 함의를 지워낼 필요는 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오시마는 재일조선인과 같은 문제에 깊은 관심이 있었고, 일본 사회에서 재일의 문제는 유령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이에 대한 오시마의 감정은 계몽이라기보다 동정에 가깝다. 이 표현조차 재일의 문제를 감정적으로 바라보고, 축약해버린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만, 오시마의 생각으로는 삭막한 세상에서 동정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편리한 접근법이었음이 틀림없다. (<일본의 밤과 안개>에서 그와 관련된 언급이 나온다.)


다시 오시마의 동정론으로 돌아가서, <교사형>이 어떤 영화인지를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교사형>은 당시에 여고생 2명을 살해한 재일조선인 고등학생의 이야기에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영화다. 이 사건은 사건의 참혹함에도 불구하고 재일조선인의 범행이라는 이유로 일본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큰 화두가 되었었다. 1) 그가 자라온 사회적 환경을 고려해야 하고, 2) 이례적으로 빠르게 진행된 재판-사형까지의 과정이 ‘재일’이라는 점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사람을 죽인 살해 행위는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에 이들의 모습에 어떤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들이 이 시간에 보내는 의심도 나름의 근거는 있기에 두 세계의 완충작용으로 탄생한 <교사형>은 작품 속의 분위기처럼 교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재일조선인 R은 강간 살인죄로 기소되어 사형장에 선다. 밧줄이 목에 걸리고 수십 분이 지나 죽음이 확정되었을 무렵, 시신을 살펴보던 의사는 깜짝 놀라고 만다. 목에 걸린 밧줄이 뇌를 동여매 사망에 이르게 하기 충분한 시간이었음에도 R은 살아있었던 것이다. 덧붙여서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지금 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까맣게 잊어버린 상태다. 모두가 기막혀하는 이 상황에서 교도관은 사형집행이나 다시 하자며 운을 띄운다. 하지만 의사와 군종이 개입한 가운데,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인권국가 일본’에서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이가 범죄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시된다.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그가 범죄를 저질렀음을 확인할 수 없으며, 그를 처벌하려면 그가 R이라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방법은 딱 하나뿐이다. R 스스로 R임을 인정하고, 그가 저지른 것이 범죄라는 걸 깨닫게 해야만 비로소 사형에 대한 정합성이 성립한다. 


이 영화는 극중극이라는 형식에 연극의 무대를 올려둠으로써 서사를 자연스럽게 조각낸다. 여기서 조각낸다는 표현은 파편화한다는 게 아니라 1막, 2막과 같은 분절의 의미로 사용했다. 하지만 연극을 영화로 만든 것처럼 분절이 명확하지는 않다. 사형장의 구성원들이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나레이터와 연기자를 맡는 와중에, 영화 밖에 자리해야 할 나레이터는 영화의 구성원이 되어 그곳에 자기만의 영화를 설치한다. 이 영화는 어느 순간 배경이 바뀐다는 점에서 스크린 밖의 영화와 닮아 있으나, 이것이 말 그대로 영화라는 점을 관객에게 설명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 이러한 형식이 극중극이라는 단어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들이 연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자체가 연기를 하는 이 상황은 현실을 꿈 안으로 끌고 와 자의적으로 변형하는 프로이트식의 꿈의 무대와 닮아있다. 


영화가 영화를 연기한다는 극중극의 형식이 꿈의 무대라고 말할 수 있다면 자연스레 초-현실이 떠오를 것이다. 둘러싸인 현실은 물로 둘러싸여 갈라파고스로 변해버린 일본이라는 국가로의 생각과 연결된다. 혹자는 섬이라는 표상을 두고 “물을 통해 세상과 연결된 장소”(칼 융은 물이 집단 무의식의 이미지화라고 말한 바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만, 이를 위의 제언에 포함시킨다면 ‘영화라는 무대는 무의식을 통해 영화라는 현실로 연결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섬에 대한 고립주의적 노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영화란 현실의 일부로서 그곳에 방문하는 것으로 자유를 찾는 휴양지가 아니다. 영화란 무대이며 그곳에 있는 우리가 제대로 된 현실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이 물에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물론 여기서 갈라파고스 국가라는 표현은 영화의 논의를 벗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오시마 나기사의 표현으로, 일본’제국’과 대동아공영권을 꿈꾸었던 이들에게 ‘우물 안 개구리’ 낙인을 찍는 것은 팽창욕을 저지하는 것에 중요했다. 영화가 나온 1968년에도 이미 수십 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일본제국에 대하여, 오시마 나기사는 그들이 유령의 형태로 살아있다고 진단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려 떠도는 유령인 망령의 형태를 R의 이름으로 소환하고, 이 망령을 처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를 둘러싼 여러 인물이야말로 오시마가 진정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었다. 이 시절에는 사회 곳곳에서 요직에 앉아있는 이들이 일본제국 시기의 교육을 받았었기에, 제도적으로는 몰라도 개개인으로까지는 아직 이별이라 할 수 없는 사례가 지속되고 있었고, 청산이라고까지 할 것은 없지만 사회적 인식과 현실적 입지가 합치하지 않는 이 현상에 대해 오시마는 주목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재일조선인 문제다. 황국신민으로서 내지인이 되려는 외지인들의 이동은 일본의 패전과 함께 좌절되었다. 그들은 일본에 육체를 두었지만 영혼은 그러지 못했고, 한국과 일본 사이의 어느 곳에 좌천된 영혼은 이승과 저승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과도 같았다. 말하자면 입국거부, <교사형>에서도 R을 두고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의 입국을 거부당했다.”고 말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때 R을 대하는 인물의 태도는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R을 사형시켜야 한다는 사법이고, 다른 하나는 R을 구원해야 한다는 종교이다. 이는 단순히 이분법으로 나뉠만한 게 아니지만, 아무쪼록 온건과 급진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을 등에 업고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천국이 꿈꾸는 공상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시네마라는 천국으로 지칭될 수 있다면, R의 영혼이 현세에 머무르는 이유는 무엇인가. R은 죽음을 겪었다가 되살아난 게 아니라 처음부터 죽은 적이 없었다. 바꾸어 말해 R은 영화가 된 적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현실에 머무르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R은 천국으로의 입국을 거부당한 후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이때 R이 돌아온 곳이 현실인지 꿈인지는 불분명한 사실로 남겨진다. R의 영혼이 천국에 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겠지만, 영화는 R과 같은 이도 천국에 갈 수 있음을 명백하게 고지하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는 ‘R’과 같은 재일조선인에게도 일본인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이와 같은 사건을 쉬쉬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영화에 대한 일종의 선언을 하는 행위이다. 


이 대목에서 영화의 제목인 ‘교사형’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 나오는 형벌은 교수형이지만 영화의 제목은 교사형으로 쓰여 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오타가 아니라 ‘교사’라는 단어에 대한 오역의 이중주를 응용한 것이다. 영어 제목은 Death by Hanging인데, 직역하면 목 매달림에 의한 죽음으로 교수형이라는 뜻이 되므로 이는 오직 원문으로만 읽을 때 드러난다. 따라서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일본인)이 볼 때 이 영화의 의미는 더 잘 다가온다. 다음으로 넘어가서, 교사(絞死)란 목을 졸려 죽이는 질식의 행위를 뜻한다. 이 맥락에서 교사형이라는 단어는 타인에 의해 목이 졸리는 게 형벌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교사형을 내리는 교사인도 있을 것이며, 이것이 ‘형벌’이기에 그는 ‘교사범’은 아닐 테다. 그런데 작품의 내용이 말하듯, 엄격한 법률이라도 피고인의 상태에 따라 그 해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데 교사인과 교사범을 가르는 기준을 어찌 단정할 수 있을까. 


오시마의 문제 제기는 우리가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한다. 현실의 어떤 문제를 말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면 그 유권해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다. 영화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현실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오시마는 말한다. 꿈이라는 천국으로 입국을 거부당한 R이 기억을 잃고, 자아를 잃고, 그렇기에 법률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영화로 입국을 거부당한 사실들은 기억을 잃고, 자아를 잃고, 그렇기에 사실기준을 적용할 잣대가 모호해진다.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사실이 더는 사실이 아니게 된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는 이상한 말이다. 혹은 말도 안 되는 말이다. 이 영화가 고유의 이상함을 간직함으로써 관객에게 전달하는 교훈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까지 서술하며 거쳐온 과정들을 보면 오시마의 이 영화가 많은 의미작용을 거쳐 가는지 알 수 있다. 재일조선인과 일본제국 사이의 관계는 <잊혀진 황군>(1963)과 같은 다큐멘터리에서, 제국 아래 조선인의 삶을 일본 이후의 한국에서 찾아보려는 <윤복이의 일기>(1965)를 거치고 나면, 1968년에는 <교사형>이라는 재일조선인과 제국 이후의 현대 일본에 관한 언급으로 이어진다. (<감각의 제국>은 야만에 대한 오시마식의 우회이다.) 이러한 형식 자체가 오시마의 영화적 목표였고, 그에게 영화란 정치적인 의견을 표출하기 위한 스토리텔링 도구가 아니라 형식 자체가 정치로 작동하는 드라이브 스루(Drive-Thru)였다. 드라이브 스루가 판매하는 것은 상품이지만 여기에는 ‘자동차와 같은 탈것’이 전제되어 있듯이, 무언가를 위한 편리조차 어떠한 해석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점이 오시마에게 ‘재일조선인 여고생 살해 사건’에 대한 관심을 불렀으리라 생각된다. 부끄럽지만, 이 사건을 지칭하는 위의 문장에서도 ‘재일조선인’이라는 수식어는 왜?라는 의문이 든다. ‘재일조선인 여고생 살해 사건’이라는 문장에는 이미 ‘재일조선인’이라는 주체가 주어로 지정되어 있고, 그에 대한 해석이 어떤 권리를 지정 및 착복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오시마는 이 작품에서 사형수의 이름을 R이라는 익명이면서도 상징적인 것으로 남겨두었다. 혹자는 <교사형>에서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적 형식에 대한 정치라는 동력에 집중할 수도 있을 테지만, 현실도 초현실도 아닌 사이버 스페이스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경계의 문제가 더 구미를 끄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교사형>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던져주는 문제의식은 재일조선인이라던가 일본의 사법체계에 대한 풍자라던가 하는 게 아니다. 작품 안에서 R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시도되는 공무원들의 연극은, 처음에는 현실을 바탕으로 진행되지만 기억의 심층부로 들어갈수록 기억 안에 현실의 이미지가 자리하게 된다. 마치 곤 사토시의 <천년여우>처럼, 인터뷰어가 인터뷰 대상자의 삶 안에 자리하는 모양새에서 우리는 영화에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우리 삶의 일부로 편입하는 비평적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만들어진 영화에 우리 자신을 투영한다는 것은 영화 비평이라는 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다시 말해서, 만들어진 개인에 사회적 통념을 투영한다는 것은 유권 해석이라는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교사형>을 오시마의 영화적 자아로 해석한다면 이 영화는 현실과 꿈의 경계에서 어떻게든 꿈으로 돌아가려는 이들의 필사적인 유랑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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