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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차미 Apr 28. 2020

축약된 세상에서 이미지 깨부수기–정지훈의 <더 복서>

*이 글은 디지털만화규장각에 게시되었다.

http://dml.komacon.kr/webzine/review/27461


1.


만화에서 캐릭터성이 갖는 중요도는 이루 말할 수 없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근래의 만화 시장에서는 캐릭터에 중점을 두는 분파가 다른 것보다 우세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만화에서는 실사 배우가 나오는 작품보다 상대적으로 이미지를 구현하기가 쉽다. 상상의 제약이 없다는 뜻이다. 이때 그러한 상상은 단순히 사고의 확장(Extension)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다. 만화 매체가 갖는 상상의 힘은 ‘축약’이라는 형태로도 나타난다.

 이를테면 실사 작품에서는 배경을 묘사하는 것에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한다. 그런 배경이 우리 현실과 가깝다는 인상을 주기에 그렇다. 여기서 현실이라 함은 허구의 세상도 포함한다. 그러니까 현실적이라는 말보다는, 개연성이라는 단어나 ‘그럴듯함’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스타워즈>나 <에일리언>이 우리 현실 속 이야기는 아니지만, 배경이 굉장히 그럴듯하기에 우리는 그에 이입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만화에서는 아무런 채색을 하지 않아도 별 무리 없이 독자에게 받아들여진다. 텅 빈 공간에 캐릭터 하나만 세워 두어도 이질감이 없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만화를 근본적으로 ‘우리 세계와는 다른 무언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우리 세계와는 다르기에 세계에 통용되는 개연적 법칙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고, 법칙이 사라진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법칙의 바깥에 자리하던 유동적 형태의 상상(Image)이다.

 따라서 위에서 언급한 만화 매체의 힘 중, ‘축약’이라는 대목을 세계의 안쪽으로 밀려 들어오는 이미지의 형태로 묘사할 수 있다. 실사풍 작화를 비례적으로 축약해 묘사하는 그림 기법인 ‘데포르메(déformer)’에서도 그것을 찾아볼 수 있을 듯하다. 데포르메가 처음부터 축약된 형태로 묘사하는 기법이 아니고, 실사 인체 비례를 고려하면서 적절히 왜곡하는 방식으로 그리는 것이라는 점이 그렇다.

2.


△ 봉준호의 <마더>에서 원빈은 바보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러나 여전히 원빈처럼 보인다. 잘생김이 어디 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실사 매체에서는 서사 속 캐릭터의 성격이 연기자의 외모와 행동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원빈은 원빈이고 송강호는 송강호다. 그들이 연기한 어떤 작품에서도 배우의 이름을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배우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아이덴티티라는 뜻이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이는, 자신의 정체성을 시나리오 상의 캐릭터 안에 맞추는 것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즉 영화나 드라마는 배우가 시나리오속 캐릭터에 이입하는 방식이기에 시나리오 상의 캐릭터성을 백퍼센트 전달할 수 없다. 다만 그걸 백퍼센트에 가깝게 연기해내는 배우만이 있을 뿐이다. 반면 만화 매체에서는 시나리오 그대로의 캐릭터성을 구현해낼 수 있는데, 이 점이 만화가 캐릭터성에 중점을 두게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이것이 영화와 소설과 같은 다른 매체로 이양되기 위한 예비작업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이런 맥락에서의 캐릭터성은 만화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뿐, 다른 매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소설 셜록홈즈 시리즈의 왓슨이라던가 하는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다만 우리는 그것과는 반대로 물음을 던져볼 수 있다. 만화가 유리한 게 아닌, ‘만화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영상 시대에 만화의 캐릭터성이 인기를 끄는 것은, 우리 세계의 여러 요인들을 데포르메 하는 방식으로 구현했다는 점에 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사 그대로는 받아들이기에 너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문제들을 안전하게 축약한다는 것이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게 아닌, 폭탄을 해체하기 위한 예비 단계에 해당한다. 진주조개가 몸 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격리하듯이 말이다.

 이 데포르메는 현실을 바탕으로 하기에 절대로 현실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반대로 보면 그렇게 축약되었기에 안전하게 보이지만 언제나 그 뒤의 현실이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만화가 현실의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이곳에 있다. 같은 맥락으로, 캐릭터성을 주로 내세우는 몇몇 만화들이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되는 것은 재고되어야 한다.

3.


캐릭터성을 내세우는 몇몇 만화가 문제의 근원으로 지적되는 것은, 그들이 차용한 소재가 그들 사회의 민감한 화두를 작게 축약해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학원폭력을 소재로 삼은 작품에서 캐릭터성은 인물 별개의 서사와 세력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폭력을 희화화하고 그에 무뎌지게 한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네이버 웹툰의 <약한 영웅>이나 <스터디그룹> 같은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는 학원폭력의 주요 독자층인 10대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게 바로 그런 폭력 사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독자층은 만화를 보며 폭력에 대한 로망을 갖기보다는, 그런 폭력이 배경으로 하는 현실 사회의 문제에 그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 단적으로 말해 성인 관객들이 조폭 장르 영화를 본다고 해서 조폭 사회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그들은 조폭 캐릭터에서 조폭과 연루된 현실 사회의 몇몇 문제들을 떠올린다.

위에서 말한 만화의 근본이 그런 이미지의 격리에 도움을 준다. 혹은, 이것이야말로 만화라는 매체의 근본이다. 몇몇 독자는 이미지를 횡단하는 능력이 빼어나서 현실과 매체의 간극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도 있는데, 그중에는 이미지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자신을 이미지의 형틀에 쏟아부을 수도 있고, 그에 따라 현실과의 괴리를 빚는 몇몇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으나, 이는 개인 고유의 문제이지 만화라는 매체 자제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이 점이 우리가 만화에 대해 가져야 할, 아직은 완벽히 파훼되지 않은 의심의 시선이다.

4.

 


정지훈의 <더 복서>는 권투라는 형식을 빌려 그런 목소리를 어느 정도 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가 실제로 그런 점을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권투라는 형식을 빌려 링을 설치해둔 이 만화의 소재가 만화에서의 한 개 컷을 복싱에서의 동작 하나에 대응시킨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를테면 복싱을 소재로 한 이 만화에서 인물이 내지르는 동작 하나는 말 한마디에 비견된다. 대화가 주먹과 같은 파괴력을 지니면서, 인물 간에 주고받는 대화를 주먹을 내지르고 피하는 링 위의 권투 경기처럼 보이게 한다. 즉 묵직한 한방은 절호의 일침이 된다.

빼어난 재능으로 학교의 일진 역할을 하는 인물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하는 이 만화는, 완전한 재능을 지닌 인물에게 그를 주저앉게 하는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이야기 안으로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노력하는 재능을 지닌 인물은 노력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굳히지 않는다. 이 세 가지 인물상은 소위 말하는 청년 만화, 혹은 소년 만화로 불리는 장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류이지만, 여기서 정지훈은 그런 인물에게 재능을 부여하지 않고 링 위에 의미를 두고 있다.

 ‘쉐도우 복싱(Shadow Boxing)’이라는 용어가 권투에 있다. 가상의 상대를 설정해 싸움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훈련하는 기법이다. 정지훈이 설정한 세 명의 인물은 자기만의 링 위에서 이상(Ideal)과 쉐도우 복싱을 한다. 하지만 그 이상이 실체화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거친 현실을 마주하는 신체를 통해서다. 먼저, 길거리에서 싸우던 때와는 달리 공식적인 경기에서 복서들은 웃옷을 벗어야 한다. 이렇게 드러난 신체는 베일에 싸인 이미지의 웃옷을 벗겨 내는 것과 같은 맥락을 지닌다. 따라서 이렇게 마련된 무대 위에서 그동안 해오던 쉐도우 복싱은 마침내 그림자를 벗고 현실의 환영으로서 등판한다.

 복서 스카우터 K가 처음으로 스카우트한 완전한 재능의 복서가 무대 위에 설 때, 그 상대로는 ‘루키 킬러’라 불리는 사내가 등장한다. 그리고 구구절절한 뒷사연이 묘사된 후에 주인공 K에게 무참히 박살 난다. (이 만화는 위에서 언급한 세 명의 주인공 체제다.) 어느 소년 만화와도 같은 이야기 전개이지만 이렇게 주먹을 통해서 무참히 박살 나는 개개인의 환상과 이상은, 좀 전까지 진행되던 뒷사연이 남기는 감정의 잔영과 맞물려 옳고 그름의 경계를 박살 낸다. 그리고 이 과정에 ‘쉐도우’라는 이미지로 축약되었던 현실의 문제들은 자신을 묶어왔던 경계로부터 풀려나게 된다.

5.


축약되었다고 볼 수 있는 처진 어깨에서 우러나오는 힘찬 주먹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파쇄해야 할 환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것들은 각자가 마주한 현실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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