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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차미 Sep 18. 2022

아프지 않았지만, 그저 지쳤을 뿐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사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여왕에 대한 여론은 그리 좋지만도 않다.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즉위한 여왕의 죽음은 ‘전후체제’의 불완전한 매듭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1952년에 즉위해 2022년에 사망한 여왕의 70년은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이와 유사하게 고다르의 삶은 가히 영화의 세기에 비견될 수 있다. 1930년에 태어나 1950년대에 입문한 그는 70여 년을 영화에 살았다. 사람들이 장 뤽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을 “영화의 세기에 태어난 세기의 영화”라고 불렀듯이, 고다르는 영화의 세기에 태어난 세기의 인간이었다. 정답을 피해 만든 영화인 <네멋대로 해라>가 비평적으로 성공을 거두면서, 자연스레 고다르에 붙여진 호칭이 그러했다.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영화에 의해 만들어진 사람도 있어야 한다. 그건 바로 정직하게 [재현]하지 않는 것, 고다르는 할 수 있는 것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의미에서의 <네멋대로>였다. 


모든 답을 아는 이만이 모든 것을 틀릴 수 있다는 말, 말하자면 고다르의 ‘틀림’은 만점자만이 할 수 있는 ‘네멋대로’로 이해되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언론을 통해 전해진 고다르의 마지막 순간은 그러한 맥락으로 이해되었던 것 같다. 세기의 인간 장 뤽 고다르는 스위스의 홀루에서 조력자살했다. 고다르의 임종을 지킨 안마리 미비유는 “아프지 않았지만, 그저 지쳤을 뿐”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런 비화를 들은 대중은 “고다르가 마지막에도 네멋대로 했다”며 사소한 잡담을 나눴다. 조력자살에 대한 논쟁이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고다르의 자살은 정답을 한참 벗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해 이는 안락사와 조력자살의 정의가 부분적으로 유사한 상황에 귀인한다. 타인의 의지를 행사하는 안락사와 주체의 의지를 강조하는 조력자살이라는 용어 가운데 고다르의 해당 발언이 놓였다. 무엇이 행복의 가치인지를 논하는 이 문제들에 정답은 없었고, 그렇게 고다르는 끝까지 제멋대로 해버렸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한 사망으로 알려졌던 소식에 ‘조력자살’이라는 전후 사정이 따라붙으면서, 이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고다르 별세가 처음 알려졌을 때, 언론은 추도 분위기가 강했다. 반면 조력자살이라는 비화가 알려졌을 때, 언론은 추도를 강조하면서 조력자살의 타당성을 논했다. 즉 조력자살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대했고, 어쩌면 이는 공식적으로 자살 소식을 보도하면 안 되는 언론윤리강령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몇몇 국가에서만 시행하는 특수함에 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고다르가 스위스로 가면서까지 자살을 하고 싶어했던 맥락적 특수함을 지워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 한국에서 고다르의 사망 소식은 일종의 비보처럼 전해지는 듯하다. 허나 고다르의 죽음이 의미하는 건, 그가 정답을 알고 있기에 오히려 정답을 택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쳤다’는 뉘앙스에 관해 재고할 필요가 있다. 곽영빈의 지적처럼 [épuisé]라는 불어 원문은 들뢰즈가 베케트의 극을 두고서 사용했던 맥락인 ‘소진’을 뜻하기도 하니 말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피로가 주관적인 차원에서 모든 가능성을 소거한다면, ‘소진’이란 객관적인 차원에서 모든 가능성을 소거한다. 그리고 정답이라는 말은 객관적인 차원에서나 성립한다. 따라서 고다르가 남긴 마지막 유언은 자신이 소진되었다는 것, 정답이 될 가능성이 아예 사라졌다는 말인데, “네멋대로”의 맥락으로 본다면 이는 역시 그가 정답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왜냐하면 들뢰즈에 따르면 소진이란 더는 가능하지 않은 상태로, 이는 불가능성이 아니라 그러한 가능성의 내부화를 뜻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해 소진에서 ‘가능하지 않은 것’이란 이미 모든 가능성이기에, 그것 자체가 잠재성이기에 불가능성이 되는 역설이다. 즉 고다르의 조력자살 소식은 고다르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보인다. 


고다르가 정답을 알았다면, 고다르가 알지 못했던 것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상상에 덧붙여 해볼 만한 생각은 고다르의 조력자살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이다. 첫 번째는 이제야 비로소 한 세기가 지났다는 감각이다. ‘세기’가 백 년을 뜻하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가 체감하는 영화의 세기는 고전영화를 뜻하는 1930년대부터였다. 고다르의 죽음이 상징하는 건 바로 그런 영화의 세기가 이제 막을 내렸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우리가 체감하는 역사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현대였다. 여왕의 죽음은 전후의 현대가 끝나고 다시금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린다. 새로운 냉전이 시작될 기미가 보이는 이 시점은 어쩌면 역사의 백 년 전으로 후퇴하는 것 같기도 하다. 헌데 영화라고 해서 그렇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한 세기가 끝난 자리에서 영화는 모든 것이 새롭던 시절로 돌아간다. 그리고 이 무대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영화가 될 수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영화의 영토가 확장을 거듭하던 시절이다. 


미국의 역사가 영토 확장의 역사라는 점이 익히 알려졌다. 그러다가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이면 미국의 영토는 어느 정도 지금의 외형을 갖추게 된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나라가 세계대전 이후에 현재의 영토를 확립했다. 가장 최근으로 온다면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 합병 같은 사례를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이러한 사례들이 말해주는 건 영토란 절대적이지 않고 유동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이런 사례가 영화의 영토를 구획하는 일에 비견될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국가의 확장은 침략의 행위와 궤를 같이 하지만 영화의 확장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즉 영화는 제국이 아니었다. 영화 매체의 외연적 확장은 다른 매체로의 전회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근간이 된 다른 매체들에 진 빚을 갚아가는 과정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빚은 되갚아질 수 있었을까. 정답이 없음을 말한다는 건, 정답이 없는 문제에 헌신한다는 건 필연적인 파산의 운명을 마주한다는 것과도 같다. 


영화는 많은 면에서 빚을 졌고, 그 후폭풍으로 모라토리움에 이르렀다. 일말의 회생 가능성도 없는 바로 이 상태가 영화의 소진이었던 것이다. 객관적으로 영화를 증명할 방법이 없어졌다는 점에서 오늘날 영화는 거진 “자신을 영화라고 칭하는 미치광이”처럼 보이며, 이 맥락에서 영화의 확장은 오히려 그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잃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자기 증명의 가능성은 영화의 탄생 시점에서 가장 유효했고, 영화의 지난 세기는 (고다르의 표현을 빌린다면) “아프진 않지만, 지쳐가는 도중”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예컨대 고다르의 죽음이 한 세기를 끝내는 지점이 되어야 한다면, 혹은 그가 그렇게 주장하고자 했다면, 그 이유는 이미 우리가 지닌 것들에 대한 가능성을 겉으로 내보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소진이라는 법칙이 필연일 경우 이것을 운명으로 바꾸기 위해선 사건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 고다르의 조력자살은 그러한 가능성을 선택한 것일 수도 있다. 


미셸 마페졸리는 [포스트모던]한 우리가 영원한 현재를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때 영원이란 ‘포스트’의 나머지가 제시되지 않는다는 점을 뜻한다. 마치 영화가 가능성을 잃어가는 것처럼, 영원이라는 말은 아프지는 않지만 지쳐가는 도중이라는 점에서 종국에는 나머지 가능성들의 조력을 허용치 않는다. 따라서 이 영원이라는 말을 “더는 확장할 곳이 없게 될 정도로의 만연”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영원이라는 말이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건 이 대목을 지적하는 것이다. 무언가가 [죽는다]는 것이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되는 건 소진의 맥락에서 삼킨 가능성을 겉으로 내보이는 것, 기다림의 형태로 역전시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그리고 운명의 특징 중 하나는 정답이 없는 것을 정답이 있게 한다는 점임을 염두에 두자. 이게 바로 고다르가 선택한 ‘조력’의 의미이자, 왜 고다르의 자살이 한 시대의 마무리가 아니라 새로운 기다림으로 이해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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