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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차미 May 10. 2023

대안조차 없고, 소속되지 않는 가족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2023)


수명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서로 다른 수명을 지닌 종족 간의 사랑 이야기는 대개 비극으로 끝난다. 천년을 사는 종족과 백 년을 사는 종족 간에 동행이라는 말은 어느 한쪽에 맞춰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백년을 사는 인간이 죽고 나면 나머지 수백 년은 죽은 시간이 되어 버린다. 영화를 보는 일도 얼추 비슷하다. 영화는 2시간짜리 삶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남은 삶을 죽인다. 이제 관객은 남겨진 이가 되고 떠나가야 하는 쪽은 오히려 관객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에서 자리를 먼저 뜨지 않으면 삶은 재개될 수 없으므로, 영화는 관객을 두고서 다른 ‘삶’과 재혼하기를 종용한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백을 최소화하는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는 말처럼 영화에 대한 열렬한 지지는 계속해서 사랑을 하는 과정에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공백’은 단순히 이야기의 끊김만을 의미하는 것만이 아니라 관객이 아닌 시기, 즉 이야기의 주체가 아닌 시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영화 보기는 어떠한 시리즈 만들기의 과정이며, 이는 곧 어떤 대목을 연속시킬 것인지의 문제와도 같다. 


특정 대목을 대물림하고 반복하는 일에 관해서 우리는 일종의 자손 만들기에 빗댈 수 있지 않을까. 자손은 부모와 유전적인 특성을 공유하면서도 둘 사이에 어떠한 공백이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연속된다. 바꾸어 말하면 ‘시리즈 만들기’란 누구와 결혼할 것인지의 문제이면서 어떤 가족을 꾸릴 것인지의 문제와도 같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표방하는 가치가 그렇다. 3편으로 완결된 이 시리즈는 원작의 줄기를 빌려 오면서도 가족 서사를 자신의 고유함으로 내세우는데, 이 소재는 영화에서 보기 흔한 소재임을 감안하더라도 논해질 가치가 있다. 마블 영화가 <엔드 게임> 이후로 쇠락세를 겪는 와중에도 <가오갤>만큼은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는 정말 단순하게도 이 영화가 스튜디오 시스템 밖에 있었다는 점 때문으로, 일정한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도입된 스튜디오 시스템의 바깥에 이들 영화는 자리했다. 감독이 계속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공백기가 생길 여력은 없었다. 이런 이야기를 마블 프렌차이즈를 까기 위해 꺼내든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스튜디오는 가족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스튜디오 시스템의 실패와 가족의 형성을 연결지으면 그 자리엔 오즈 야스지로가 있다. 스튜디오의 쇠락과 함께 사라진 가족영화 카테고리에서 우리는 단순한 영화의 실패만이 아니라 가족의 해체를 본다. 마블 영화의 쇠락이 보여주는 건 그러한 맥락에서의 가족 해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족이 점점 커지다 보면 집 밖으로 나가는 사람도 있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있는데, 이쯤 되면 분가하는 게 더 편하다. 하지만 확실히 <엔드 게임> 이후의 마블 영화는 한정된 공간에서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 했고 좁아터진 집에서 영웅들은 다시는 이전처럼 모일 수 없었다. 영화라는 24평 집을 떠나 펜트하우스로 이주하던가 하는 일이 없는 이상, 그래서 이들은 OTT와 같은 시리즈로 분가했고 여기서 영화는 이제 구심점으로의 역할을 잃는다. 마블의 무대는 세계관 그 자체가 되었고 빗대자면 지구를 떠나 우주로 영역을 넓힌 <가오갤>과도 같았다. 이야기의 무대를 우주로 넓힌 <가오갤> 시리즈가 근래 마블 영화에서 아이러니한 건 그 때문이다. 


<가오갤>은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과정에서 주인공인 로켓의 서사를 꺼냈다. 1편의 시작이 스타로드와 로켓의 만남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영화의 결말은 일종의 수미상관처럼 보인다. 집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하는 스타로드가 집으로 돌아오는 반면 어느 순간 등장해온 로켓에겐 돌아갈 구석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 가오갤 프렌차이즈는 1편과 2편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 실질적인 스타로드 원툴이었기 때문이다. 1편이 스타로드가 집을 떠나는 이야기라면 2편은 진짜 부모를 찾아가는 일이며, 둘 사이에 자리하는 여친 가모라는 가족 만들기 서사에 실패한 스타로드를 다시금 부랑자로 만든다. 스타로드에겐 가정을 꾸리는 것, 즉 혈연이 부정되며 이는 생물학적 아버지인 에고와 연애관계였던 가모라 모두에게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이제 스타로드에겐 집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허락되지 않으며, 대안적 가족인 라바저스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모두 진정한 의미에서 집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스타로드의 서사는 속인주의의 일종에 가깝고, 어딜 가든 그는 지구인이면서 아버지와 아들일 수밖에 없다.


가오갤의 3편은 1편과 2편에서 <어벤져스>의 메인 서사와 연결되어 해결된 것들을 뒤로 하면서 스타로드가 아닌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스타로드를 제외하면 그들이 태어난 곳은 모두 오래전에 사라져버렸거나, 또는 불분명해졌다는 점에 있다. 이 과정에서 인물이 해야 할 일은 그게 정말로 사라졌다는 점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또 공언 받는 일이다. <엔드게임>의 타노스가 전과의 결정적인 차이로 가모라를 잃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서사에 관한 이해는 아주 쉽다. 타노스가 가모라를 직접 살해해 소울 스톤을 얻는 과정이 비혈연적 가족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스타로드에겐 그것이 욘두의 죽음이었다는 걸 떠올리자. 스타로드가 지구로 돌아가는 건 과거를 마주하는 일이 아니라 가족들을 긍정하는 과정과도 같다. 스타로드는 지구로 돌아감으로써 가족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확인하고 또 그렇기에 가족을 꾸릴 가능성을 얻는다. 반면 로켓의 서사에서 가족의 위치는 어떠한 대안조차도 없으며 그는 늘 현재에 덩그러니 놓여진다. 


출생의 비밀이나 영웅의 기원 같은 시시한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스튜디오 안에서 기능적으로는 제 역할을 끝낸 2편에서 시리즈는 마무리되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의 후일담을 다룬 3편에서 스타로드가 만난 과거의 가모라와 로켓의 과거는 물려받은 유산을 청산함과 동시에 이야기를 끊고 가는 하나의 분기점이 되어주고 있다. 바꾸어 말해 이제 마블 영화에는 더는 가족적인 테두리가 없으며 오히려 태어난 곳에서 죽는 일이야말로 더욱 이상적인 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야기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어떤 관계가 다른 것과 중첩되는 과정에서 점점 자신의 원래 부모는 찾기 힘들어진다. 말하자면 <가오갤>의 3편은 소속감을 잃어가는 영화들 사이에서 그것을 무엇으로 부를지와 같은 고유명을 그리워하는 듯 보인다. 계속 존재하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라 어떻게 존재하는지가 하나의 의제가 된 상황에서, 다른 매체와 이야기들의 사이로만 존재하는 서사는 그 어떤 분파에도 소속되지 않는 가족을 만들지 못한다. 단 하나뿐인 가족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오갤>의 3편은 가족의 종말과도 같다. 로켓이 총에 맞아 숨을 헐떡이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케 하는 노웨어 이주 사태로 끝난다. 그리고 이 이주가 마무리되면 스타로드는 로켓에게 단장직을 물려주고 지구로 떠난다. 여기서 죽은 신의 유해라는 노웨어가 ‘어디에도 없는(no where)’ 철자처럼 보이는 건 재미난 우연이다. 짐 자무시가 <천국보다 낯선>을 찍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영화로 지칭했을 때, <가오갤>에서 가족은 어디에도 없지만 반대로 영화인 그곳이야말로 가족이기도 하다. 요컨대 영화를 두고서 2시간짜리 삶이라 부른다면 마찬가지로 영화는 2시간짜리 가족일 수 있을 테다. 그러니 우리는 영화를 보면서 짧게나마 가족에 대한 환상을 얻지만 어쨌거나 이들 영화는 우리 현실보다 단명할 테다. 그래서 우리는 스타로드처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라는 영화를 얻지만 어쨌거나 우리가 태어난 곳인 현실로 돌아가야만 한다. 반대로 로켓의 과거는 거세되어있기에, 그는 황야의 총잡이처럼 영화에만 남아야 한다. 이 둘은 수명이 다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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